농사일지&농사일기 / 2018. 3. 30. 금. 약간 흐림 / 답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길이 있지만 가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 고추모종/토종고추씨 돌보기

▸ 정화샘께 회계 배우고 관련양식 받음(여농 방문)

▸ 농장 회의(한 달 돌아보기, 내다보기)

▹ 아침 6.5-7.5시 대학 텃밭 운력.

▹ 목욕탕. 흙을 계속 만지고 밟으니 손과 발이 건조하고 거칠어지더니 갈라진다. 말씀드리고 오전시간을 잠깐 빼서 동네 목욕탕 다녀옴. 시간이 빠듯해 머리도 못 감고 손발만 불려서 각질제거하고 왔다..

▹ 16.5-17.5시 어린이법회 회의. 청원스임과 새로운 두 샘과 함께 이번 주 법회 준비.

▹ 저녁엔 어르신 한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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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반 대학 아침운력을 시작으로 이 날 하루는 유난히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 와중에 정해져 있는 약속을 취소하는 전화를 받았다. 없는 짬 내어 급히 약속을 바꾸고 나니 바꾼 시간에 농장회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약속을 바꾼 사람에 대한 원망, 어렵게 시간 맞춘 회의를 빠져야 하는 것에 대한 곤란함 등등이 밀려오면서 화가 났다.

머리로는 선/악, 미/추가 모두 가치를 부여해서 그런 게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일 또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다, 컵이 여기 있다 저기로 옮겨 간 것처럼. 그러니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지만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자-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화가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를 무시했다는 생각,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 내가 겪을 수고와 어려움은 안중에 없다는 생각.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멈추려 해도 순간 뿐, 잠깐만 정신줄 놓으면 생각은 저절로 부정적인 생각을 생산하고 반복하고 강화시켜갔다. 이 생각들을 잘 들여다보면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결국 괴로움을 낳는 것 같았다. 거기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았다. 왜곡된 시각으로 사건을 보지 않아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로는 그게 될 것 같은데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화를 풀고 싶지 않고 내가 곤란했던 만큼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렇게 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걸 안다. 관계가 어색해질 것이고 더 심하면 멀어지고 단절될 수도 있다. 나는 괜찮은 해결책을 알면서도 서로를 해치는 방식을 문제를 다룬 초라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는 거다. 그러면 자기비하와 자책이 이어지겠지. 또한 문제 역시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에 고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증폭될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음이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 동안 공부한 것이 별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을 알아도 그 답을 살 수가 없다. 길이 있지만 가지 못하면 그 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것처럼 답이 있지만 마치 답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낼 수 없는 너무 어려운 답이 저 높이 이상처럼 매달려 있다.

다시 일을 수행으로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하게 마주하겠지. 그 일들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떠내듯이 내 行을 닦아나가는 것이 일을 수행으로 하는 것 아닐까. 지금 당장은 안 되더라도 되는지 안 되는지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좀 더 쉬운 길을 찾아보고 싶다. 또한 그 길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여기 길이 있다고. 조금 더 쉬운 길이 있다고. 그 길을 농장에서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