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지&농사일기 / 2018. 4. 17. 맑음. 일교차 큼. 미세먼지 있음 / 농부 코스프레

10.5-17시: 청년창업농교육(전남대/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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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년창업농사업을 실행하기 위한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사업비 쓰는 방법 및 관련 제도, 유의사항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교육은 광주에 있는 전남대에서 있었다. 평소 일할 때 옷 거의 그대로 입고 갔다. 오늘은 밭에서 일을 안 하니까 치마바지룰 입었는데 그것만 달랐다. 고무신에 밀짚모자까지 장착하고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 길을 나섰다. 차 안에서 잠도 자고 책도 봐야지~. 히히.

광주에 내렸더니 아! 여긴 도시였다. 교통체증도 있고 사람도 많았다. 지구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구나- 새삼 느꼈다. 그리고 모두 도시 옷차림이었다. 우리 동네에선 교복과도 같은 밀짚모자와 고무신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조금 부끄러워졌다. 밀짚모자는 커서 가방에 넣을 수도 없었다.ㅠㅠ 할 수 없이 벗어서 가방처럼 등에 둘렀다. 햇빛은 햇빛대로 맞으며.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자신이 또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게 부끄러운 거지, 옷차림이 뭐라고. 나중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려 하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드는 또 다른 부끄러운 마음…. 나는 농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을에서는 농사짓는다는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농부가 되고 싶었다. 몸으로 일해서 먹고 사는 정직한 농부 그룹에 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농불까. 농사짓는다는 말을 할 때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실은 나는 농부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농부가 아니라는 걸.

농장에 오면 태준샘과 의제샘은 곧장 하우스로 향한다. 고추모종과 기타 씨앗들이 잘 있는지 살피시는 거다. 추운 날은 추울까봐, 더운 날은 더울까봐 마음 졸이며 하우스를 화장실보다 더 자주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관심이 없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챙기는 걸 잊어버린다. 그리고 솔직히 귀찮다.

“전 관심이 잘 안가요. 물을 하루에 세 번 주라고 시키시면 그렇게 할 게요. 그런데 애정을 가지고 돌보지는 못하겠어요.”

의제샘은 처음이라 그렇다고 했는데 글쎄… 나중에는 이 작물들을 사랑하게 될까?

나는 아직 농부가 아니다. 고무신과 밀짚모자를 무대의상으로 입고 농부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뿐.

나는 내가 인간이나 동물, 식물, 뭐가 됐든 살아있는 것들에 무관심하고 차가운 것이 항상 부끄러웠다. 전엔 그 마음을 악마화하며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남을 미워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게 좀 나아진 점이라면 나아간 거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