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지&농사일기 / 2018. 3. 12. 월. 화창 / 생명이 특별한 이유
▸ 고추모종 돌보기
▸ 3차 농장운영위원 회의
▸ 묵은 밭 둘러보기(작년 감자밭 등)
▸ 목공소에 들러 톱밥 얻기로 함
▸ 감자밭에 퇴비 뿌리기(참나무 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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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의 기쁨과 괴로움
오늘은 낮엔 의제샘, 태준샘과 함께 밭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묵은 밭을 걸으며 밭의 상태도 살피고, 어떻게 정리할지, 무엇을 심을지 이야기했다. 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이게 냉이다, 아니다, 곰보배추가 몸에 좋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오후엔 감자밭에 퇴비를 뿌렸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걸어 다녔는데 흙이 보드랍고 폭신폭신했다. 농장은 오후가 되면 늘 같은 방향으로 바람이 분다. 흙을 밟고 서서 그 바람을 맞으며 샘들과 오른쪽, 왼쪽으로 퇴비를 뿌리는데 마음이 탁 트인 듯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바깥 자극에 의한 감각적 즐거움이라기보다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충만감 같달까.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좀 힘들었을 때 왜 이렇게 힘든가 생각도 해보고, 사람들이 재밌다는 것들도 해보고, 행복에 관한 책도 찾아 읽고, 상담도 받아보았다. 아주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그때뿐인 것 같고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는 것 같았다. 상처에 약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잠깐 진정시키려 반창고 붙이는 느낌? 그런데 밭에 서있는 게 뭐라고 이렇게 편안함을 주는 걸까.
밭에서 일을 하려면 사람과 땅과 바람과 거름과 벌레와 햇빛 등등과 함께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뭔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함께 하고 있는 기분….
주1회 어르신 한글수업을 하는데 할머니들께서 글을 배우고 싶어 하시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수업을 할 때는 공부에 대한 할머니들의 열의가 이해되지 않았다. 돈과 지식을 모으듯 능력을 더 쌓고 모으려는 것일까-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자가 가득한 비석?을 마주하고서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용이 궁금한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으니 너무 답답했다.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데 깊은 강이 앞에 있는 듯,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갑갑했다.
할머니들은 세상에 온통 글이 넘쳐나는데 글자를 모르니 소통이 안 될 때가 많았을 것이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공부에 대한 열의는 세상과, 다른 존재와 만나고 싶은 열망이었다. 모든 존재들은 더 많은 존재와 만나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존재의 본성이 본래 그러하므로 자기 생긴대로? 가려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믹스커피 한 잔을 원샷했다. 좀 전에는 커피였는데 지금은 내가 되었다. 조금 더 지나면 피와 살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일부가 오줌이 되어 다시 나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계속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나 아닌 것이 내가 되었다가 다시 나 아닌 것이 되는 과정의 무한 반복…. 이게 모든 존재들의 존재방식인 것이다. 다른 것과 만나지 않는 존재는 없다. 존재의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은 더 많은 것들을 만나려고 하는 것 아닐까. 본능보다 더 깊은 욕구로써 그러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붓다는 대상과의 만남 자체가 苦라고 했단다. 만남은 기쁨이고 안정감, 편안함, 충만감이라 생각했는데 고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생명이 특별한 이유
얼마 전 하우스 문 여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고추모종 3000주를 쪄죽일 뻔 했다. 생명이 소생하는 이 봄에 많은 생명을 죽일 뻔 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런데 생명은 왜 죽이면 안 되고 귀하게 여기고 살리려 애써야하는 걸까?
이 질문이 꽤 오래도록 마음에 있었다. 모든 것들은 자세히 보면 분자, 원자 등등의 집합일 뿐이다. 이렇게 모이면 돌이 되고 저렇게 모이면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돌과 사람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 선/악, 미/추의 가치를 매기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하듯이 인간중심적인 생각일 뿐 아닌가-했다. 우리가 세뇌당한 그 가치를 벗어버리면 사실 그거나 저거나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운동, 공동체를 위한 활동, 사람을 위한 많은 일들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단지 생명을 살려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야 한다, 사람이 소중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들이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고 동어반복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고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인간을 비롯해서)생명을 가진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고통에 대한 감각이 있고 없고-라는 거다. 살아있는 것들은 고통은 느낀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때론 삶이나 생명이 차라리 없어졌음 좋겠다는 들 정도로 크기도 한 것 같다. 그 고통을 겪을 때와 덜었을 때의 삶은 천국과 지옥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인 듯하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공간에 발 딛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한다면 살아있는 것들의 고통을 더는 것만큼 크고 중요한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