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지&농사일기 / 2018. 3. 17 토 / 여기에 있다.

▸ 고추모종 돌보기

※ 오늘은 태준샘이 농장을 지킴.

나는 대학 행사(졸업식&입학식)로 쉼.

의제샘은 대학 행사에 참석(농장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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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 봄이 있다.

생명평화대학 졸업식&입학식에 함께 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대학에 오셨다. 행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냉이캐기가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사람들과 함께 냉이밭(^^)에 갔다. 도시 분들이 많아 냉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나도 냉이와 지칭개를 구분하는데 몇 년 걸린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는 딱 보면 거의 구분할 수 있다 자신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뽑아 와서 보여주며 ‘이거 냉이 맞냐’고 계속 물어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땅에 있을 때는 알겠는데 뿌리 뽑힌 풀은 그게 그거처럼 보였다. 눈으로 봐서 잘 모르겠을 때는 냉이향으로 구분하는데 긴장하니까 코도 마비되었는지 아무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봄풀은 아무거나 먹어도 다 몸에 좋대요” 했다.

사람들은 냉이캐기를 꽤 즐거워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캐서 먹기 아깝다’며, 냉이캐기를 ‘고생’이라 표현했지만 캐는 즐거움에 푹 빠지신 듯 했다. 마치 땅에 떨어져 있는 보물을 캐듯 신나 보였다. 한 분은 마트에서 파는 것만 봤지 땅에 있는 냉이는 처음 봤다고 하셨다.

시장가서 몇 천원만 주면 손에 흙 한 톨 안 묻히고 더 크고 더 깨끗하게 손질된 냉이를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고생해서 손을 더럽혀가며 한끼 반찬거리나 될까 말까한 쬐끄만 냉이를 캐고 있는 걸까? 재밌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은 어린시절 소꿉놀이하듯 그 일에 몰입하고 재미있어했다. 사실 모든 일은 놀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삶 전체가 놀이일지 모르겠다. 어떤 시인에겐 삶이 소풍이었듯이.

2, 여기에 몸이 있다.

오늘은 농장을 쉬었지만 출근하는 날은 몸을 움직여 일하는 날이 많다. 아직 익숙해지기 전이라 몸이 뻐근할 때가 있다. 자려고 누우면 피곤이 온 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통과 거기 붙어있는 근육, 핏줄과 그 속을 흐르고 있는 피로물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이 느낌이 좋다. 몸을 움직여 정직하게 하루를 살았다는 느낌, 피로감을 통해 전해지는 살아있다는 느낌. 생명의 그 생생함. 그리고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찌뿌둥함은 나에게 육체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은 몸을 가지고 살면서도 몸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 것 같다. 너무 가까워서 잊고 지내는 가족처럼. 그 몸이 나 여기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책갈피 속에 끼워놓은 돈을 발견한 기분이다.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있는지 몰랐던 것을 발견한 느낌, 뭔가 횡재한 느낌.

삶이라는 건 관념이 아니라 단단한 대지 위해서 육체와 그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찮게 여기며 잊고 지냈던 그 물질들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 농사를 지으며 몸이 땅처럼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