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지&농사일기 / 2018. 2. 26 월 / 올 해 농사 시작
14-15시 | 회의 _ 3월 일정 공유, 앞으로 할 일 논의 |
15시 | 인월에 깻묵 파쇄기 찾아 옴 |
16-17시 | 논과 밭 둘러 봄 & 마음 나누기 |
오늘은 농장 첫 출근 날이다. 공식적인 출근은 3월부터로 하자고 했지만 조금 일찍 만나서 앞으로 할 일도 이야기하고 논과 밭도 둘러보았다. 커피를 먹어서인지 이제부터 농사 시작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태준샘도 두근두근 하다고 했다. 농장팀 모두 약간 긴장한 것 같았다.
농사는 때가 무척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그 해 농사는 망한다. 한 번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여 때맞추어, 제때 제때 일을 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너무 덜덜 떨지는 말아야 겠다. 긴장하면 잘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연을 한 몸인 듯 예민하게 느끼고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잘 돌보고 가꾸고 기를 수 있다. 바지런하되 힘은 빼야겠다.
의제샘, 태준샘과 함께 논과 밭을 걸으며 한 해 동안 내 몸인 듯 돌볼 땅들을 살펴보았다. 여기 논의 논둑은 바깥쪽으로 옮겨 벼를 조금이라도 더 심자고 했다. 이 논은 삐뚤한 면을 포크레인 작업으로 직사각형 예쁜 모양으로 다시 만들자는 이야기도 했다. 여기는 잡초가 너무 많으니 불을 질러 버리자…. 등등, ^^
걷다가 허리를 숙여 바닥을 보니 벌써 쑥이 올라와 있었다. 아, 이젠 정말 봄이구나. 쑥을 뜯어 코에 대 보니 향긋한 쑥 향이 났다.
태준샘과 깻묵파쇄기 수리한 것 찾으러 인월에 갔다가 고무신도 한 켤레 사왔다. 털신을 벗고 고무신으로 바꿔 신었다. 고무신을 신고 논밭을 걸어 다녔더니 흙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발이 시커매졌다. 이제 깨끗한 발과 옷, 단정한 머리, 하얀 얼굴은 돌아오는 겨울까지 안녕이다. 농번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돌아치며 일을 할 것을 생각하니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쌤들과 자연 속에서 피곤하지만 즐거울 것이다.
저녁 밥 때가 되어 헤어지면서는 마음나누기를 했다. 나는 쌤들께 조금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했다. 사이가 나빠질까봐 이야기하는 것이 약간 망설여졌지만 하루이틀 볼 사이가 아니므로 가능하면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쌤들보다 나이도, 농사경험도 적은 꼬꼬마가 버르장머리 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이 죄송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것보다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겠어서 그렇게 했다. 두 분 샘들께서 워낙 훌륭하셔서 꼬꼬마인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셨다. 우리는 농사를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이자 도반으로써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이 미니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행하며 작물, 나, 서로의 관계를 아름답게 키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