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단의 옆모습. 오늘이 정진 117일째이네요.)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는 정진단.
지난번의 컨디션 난조를 떠올리며 오늘은 알찬 한시간을 보내겠다 마음먹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느새 등줄기에 흐르는 땀. 바람도 불지 않아서 오늘 정진은 땀이 많이 나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앞의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진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 왜 이렇게 시원하지? 바람 때문인가 보다 하고 주위를 봤는데 선풍기가 돌고 있지만 창문들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위를 보니 에어컨이 있더군요. 전에도 달려있는 것을 봤지만 그 녀석의 능력을 오늘에서야 체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시원하더군요. 어렸을 때 너무 더우면 일부러 은행이나 백화점에 깜짝피서 갔던 추억이 떠오르며 더운 날엔 여기 와서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
그러다 문득 저것도 전력낭비일텐데 정진하는 동안 끌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내 뒤로 정진하시는 분들이 더워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과 정진단의 방침을 모르는데 내 독단으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냥 시원함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감사의 3배를 마치고 침묵명상을 위해 좌선자세로 앉아서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하려 하는데 선풍기의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게 내 얼굴을 스치던지, 마음을 비워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북극의 눈 덮인 설원과 빙산과 북극곰이 어슬렁거리며 등장하면서 시원한 빙하바람이 예쁜 눈송이와 함께 마음 안팎으로 불어오더군요. 아.. 좋다.. 시원~~~ 하다.ㅋ
앗 이런! 내가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한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1분, 2분, 3분..... 역시 몸이 아프지 않으니 마음도 잘 안정되고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과 감각이 바로 이 순간 현재에 머물면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이럴수가!!!
정말 오랜만에 명상이 잘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머릿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인드라망 법회시간에 도법스님 앞에서 기타 치면서 부른 첫 번째 곡인 ‘어쩌다 마주친 그대’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꽤 오랜 시간을, 몇 분 동안 그러고 있었나 봐요. ㅋ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 까~~. 아!~.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바~~보, 바~보~, 나는 바보인가봐~~~.’ ...마지막 구절까지 잘도 좌선자세로 부른 뒤 혼자서 자조의 목소리로 ‘그래 맞아... 나는 바보야... 정말 나는 바보인가봐... 허허헛...’하고 중얼중얼거리는 생각에 정신줄은 어느새 정진단을 벗어나 어제 법회의 시간과 공간으로 가 있었습니다. -_-;;
그러다 문득 ‘어 내가 뭐하고 있지’라고 참 빨리도! 알아차리면서 다시 멀리멀리 날아갔던 정신줄을 다시 현재의 정진단으로 끌어왔습니다. 그리고서 시계를 보니 이미 10분이 다 되어가더군요. ㅎㅎ;
정진발원문을 낭독한 후 도법스님의 생명평화100대 절명상CD를 재생하고서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상 때 아차아차하며 정신을 챙긴 후라 그런지,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창문이 다 닫혀있고 시원해서 그런지 예전에 정진단에서 절 할 때 보다 스님의 한구절 한구절이 귀에 착착 들어오더군요.
몇몇 구절의 말씀들에 어제 인드라망법회 때 하신 스님의 말씀들과 참석하신 분들의 질문내용이 연관되어 떠오르면서 그분들의 고민과 아픈 마음을 가슴에 느끼면서 또한 스님의 바른 가르침을 새기려 마음을 모으며 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의 한 구절인 ‘그릇된 소견머리와 버르장머리를 고칠 때 비로소.....’라는 말씀이 들려올 때 갑자기 눈 앞에 도법스님이 죽비를 들고 나타나셔서 내 어깨를 탁 내려치시는 모습이 그려지더라구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니 집중력이 쫘악 올라가면서 다음 순서의 절을 이어갔습니다. ㅋㅋ
아마도 어제 법회의 좌충우돌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오늘 정진 내내 정신줄이 왔다갔다 했나봅니다. ㅎㅎ
그래도 진지하고 정성스런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쓰면서 100배 절명상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100배를 마치고 다시 발원문 낭독 후 명상의 시간.
문득 정목스님의 108배 내용이 궁금해서 잠깐이나마 들어보자고 CD를 재생했습니다.
스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몇몇 구절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더군요.
집에서 하는 아침시간의 108배 때 한번 따라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계를 보면서 중간에 CD를 멈추고 자리를 정리한 후 잠가놓은 문을 열고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린 후 정진단을 나왔습니다.
저녁을 챙겨먹을 시간이 되어서 조계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인 ‘승소’의 식권을 사러 매점에 갔습니다.
그러다 다음주부터 참여할 실상사의 ‘재가불자 여름학림’과 ‘가족캠프’의 참석일정이 생각나서 조석예불 준비도 할 겸 하는 마음에 무비스님의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을 식권과 함께 구입하고 승소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열무국수를 먹고서 귀가.
집에 오는 길에 새로 생겼다는 카페에 들려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단호박빙수’를 먹으면서 ‘법공양’이라는 불교월간지를 읽었습니다.
불교에 귀의할 무렵부터 구독하고 있는 작은 소책자인데 6월호에는 송광사 방장이신 ‘보성큰스님’의 글이 첫머리에 있었습니다.
그 중 와 닿는(모든 내용이 와 닿지만) 글귀가 있어서 핸드폰에 옮겨 적은 것을 여기에 다시 옮기고 추가하면서 오늘의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실상사에서 좋은 공부한 후에 다시 8월 법회와 정진단에서 뵙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고 성불하십시오~~~~ ^^
- 불교신행연구원의 법공양 6월호 중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살라고 하셨는가 - 보성큰스님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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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나’도 잘 모르고 내가 있는 자리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행복’을 가꾸고 그 행복을 이루어 낼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지금의 ‘나’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잘 점검할 줄 모르면 참된 행복은 나에게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야망이 있다한들, 그 야망은 나를 힘들게만 할 뿐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루하루를 헛되지 않게,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을 잘 다듬으며 살아야 가능합니다. 오늘을 알뜰하게 다듬는 노력이 있어야만 내일을 바람직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제대로 다듬는 노력이 없으면 한평생이 막막해집니다.
물론 살다가 보면 방향을 잃고 표류할 때가 가끔씩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 탓입니까? 내 탓입니다. ‘나’를 버리고 누가 있습니까?
또 방향을 잃고 표류할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갈 길을 잃어버린 ‘나’를 꾸짖고, 정신을 차려 길을 찾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남을 탓하고 주변을 원망합니다. 살아온 환경을 원망하고 여기저기에 핑계를 대면서, 이런 저런 생각만 굴리다가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더 큰 불행의 수렁 속에 빠져듭니다.
내 탓인데 주저앉아 있으면 어떡합니까? 위기를 벗어날 생각은 않고 근심걱정에 빠져만 있으면 누가 구해줍니까? 이러한 때가 찾아들면 스스로 용기를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기운이 생겨나고 지금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근심걱정은 늘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업보중생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근심걱정에 잠기고 불안 속에 빠져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어지간한 근심걱정은 모두 내려놓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바를 잘 실천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일상의 의식을 바꾸어 나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비우고, 나에게 찾아든 근심걱정 등을 자꾸자꾸 내려놓고자 하십시오. 의식이 깨어나고 의식이 바뀌어야 삶에 변화가 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가 무엇입니까? ‘나’ 곧 나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깨우치는 종교입니다. 부처님은 그 길을 보이신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사람들에게 전하신 분입니다. 그 길을 다듬어 모든 사람들이 갈 수 있게 하신 분입니다. 인간 정신의 황무지에서 탐욕을 갈아엎고 성냄을 잠재우고 어리석음을 뽑아내어, 씨 뿌릴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하신 분입니다.
물론 이 황폐한 대지를 경작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비와 햇볕과 거름도 필요하고 제초작업도 해주어야 합니다. 인간 정신의 경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보면서, 불필요한 근심걱정을 내려놓고 나를 향상시키는, 선하고도 바람직한 일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해나가야 합니다.
결코 나에게 맞고 좋은 것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싫든 좋든 오늘을 기꺼이 맞이하여,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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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반야의 실천입니다. 깊이 있게 반야를 실천하여 바라밀에 이르는 ‘행심반야바라밀’의 삶입니다.
반야의 실천. 지혜롭게 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을 알뜰하게, 간절하게, 성실하게, 깊이 있게 가꾸면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대로 노력해보겠다’는 의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나를 밝은 쪽으로 가꾸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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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의 책들)
(단호박빙수. 혼자 먹기에 양이 너무 많아서 보자마자 누군가가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ㅎㅎ)
(빙수 먹으며 읽고 있던 월간 법공양 6월호와 결국 쉬었다 먹어야겠다며 숟가락을 내려놓게 만든 덩치 큰 빙수님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