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2013.06.17 09:26:31 윤남진 | budgate@hanmail.net 

조계사 일주문 옆에 '생명평화 천일 정진단'이란 것이 있다. 한 평쯤 되는 기도공간이다. ‘자성과 쇄신 결사’를 실천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만들어 놓은 아담한 공간이다.

정진단은 2012년 3월 28일부터 2014년 12월 22일까지 1천 일 간 24시간을 1시간 단위로 돌아가며 자발적인 기도정진을 진행한다는 일정표를 가지고 불을 밝혔다. 기사에 의하면 2012년 4월 2일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몸소 정진단에서 한 시간 기도정진을 했다. 당연히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 본부장인 도법스님이 첫 불을 밝히고 정진에 참여했다.

결사본부 홈페이지에 의하면, ‘1000일 정진은 모든 생명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결사이고, 한 사람이 한 시간씩 매일 24시간을 1000일간 이어가는 릴레이 기도이며, 당신의 시간 한 조각, 마음 한 조각이 생명평화 결사를 이루게’ 하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와 귀중한 의미를 담은 실천이다.

이밖에도 내가 알기로 정진단이 일주문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데는 ‘세상과 불교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특별한 의미도 담고 있다. 불교가 세상으로 들어가고 세상이 불교로 들어오는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다. 거기서 불자들은 세상에 대한 불교의 책임을 사유음미하고, 세상 사람들은 불교 안에서 마음의 위안과 치유를 경험하는 그런 구실을 하는 공간인 것이다.

나도 시간이 나고, ‘거기에 정진단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날 때면 종종 결사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자가 빈 시간이 있으면 한 두 시간 108배 기도명상과 참선수행을 하곤 했다. 우울하거나 심란할 때, 머리가 청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그랬다. 기도를 할 때마다, 역시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신의 우울과 산란을 치유하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복잡한 대웅전보다 가끔 경적소리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참 기도하기에 좋고 귀중한 공간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은 정진단에서 기도를 해보라고 여러 번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빵점에 가깝다. 내가 권유한 사람 중에는 결사본부나 도법스님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그런 선입견으로 인해 정진단을 회피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법스님과 결사본부에 대해 상당한 친밀감을 가지고 무엇이라도 도움 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조차도 정진단을 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더불어 자성과 쇄신 결사를 제안한 주체인 총무원 구성원들에게서도 정진단을 비우지 않겠다는 어떤 열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 판단이 틀렸기를 바란다.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가 2년을 맞았다고 한다. 결사본부장의 임기도 종료되어 새로 시작해야 한다. 결사본부의 공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2년 전보다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공을 사주든 과를 문제 삼든 간에 어떤 활력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내부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더 자주 기사화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정진단의 기도 동참 실적도 형편없다. 인터넷 신청난을 보면 꾸준히 2~3시간 이상 기도정진을 하고 있는 고정 멤버 외에 다양한 사람의 참여가 실로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사본부장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하는 결사모임 '붓다로 살자'가 창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나는 이 모임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먼저 정진단을 비워두지 않고 이어가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법스님과 결사의 뜻이 좋고 그것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거기서 제창한 실천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진정성과 신뢰를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총무원장과 결사본부장 스님이 본을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고요히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혹은 종단과 불자와 세상에 대해 간절한 성찰의 욕구를 느낄 때에 가급적 정진단을 이용하는 것도 구성원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던져줄 것이다. 아니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야한다. 그리고 교역직을 포함한 종무원들이 격주에 한 시간 정도는 정진단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아무리 일이 많다고 하더라도 근무시간을 포함해서 2주일에 한 시간 정도의 시간도 내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지 않겠는가.

끝으로 명심할 것이 있다. 자성과 쇄신 결사를 발기한 주체는 총무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총무원이다. 정진단을 만들고 천일기도 운동을 제안하고 시작한 곳은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하는 결사본부다. 제안 주체들이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적어도 정진단의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핑계 댈 것이 없다. 그 무슨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가 가로막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문제도 아니다. 전적으로 의지 문제이고 성의 문제다.

정진단의 일정을 왜 백일이나 1년이 아닌 1천일로 정했겠는가. 결사가 단기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적어도 3년 이상은 지속되어야 하는, 장기적으로 뚝심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할 문제라고 보았기에 그러지 않았겠는가. 이런 일 하나를 잘 갈무리하지 못하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결국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하는 ‘붓다로 살자’라는 새로운 결사모임조차도 무언가 잘 되지 않으니까 다른 일 또 다른 일을 찾아 벌이는 퍼포먼스로 취급되어 냉소 받을 우려도 없지 않다. 하자고 한 일,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자. 붓다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