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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나들이 단상 |
| 글쓴이 : 한두골
날짜 : 08-09-17 15:45
조회 : 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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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서울에서 연휴를 보내고 오늘 낮에 춘양에 도착.(아~농사꾼은 휴가일정을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어 좋다!)
읍내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동네 아저씨를 만나 소주 한잔 얻어마시고 춘양의 맛집 '코끼리분식'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은 뒤 우체국에 들러 잠깐 끄적인다.
거의 한,두달에 한번 꼴로 서울에 올라가는데, 갈 때마다 첫날은 낯선 느낌을 받는다.
턱없이 높은 건물들과 어지러운 네온사인, 늘어선 자동차들과 익명의 인파들이 답답하다.
젊은이들의 머리 모양새와 옷차림은 더욱 세련되어 보이는데, 그들의 영혼도 겉모습만큼이나 아름답고 자유로운지 의심스럽고 도시의 화려한 건축과 구조물 사이사이 술취한 노숙인 아저씨들과 종이줍는 노인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슬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두번째로 내가 주관하는 집안의 추석 차례. 당숙네들은 오지 않고 작은집 식구들과 조촐하게 지냈다. 숙부와의 대화는 역시나 무미건조한데, 사촌동생들에게까지 '불화'를 대물림하기 싫어 나는 '오바'해서 웃고 떠들어댄다.
어머니는 제수 준비를 하는 내내 '며느리'타령을 하시고, 나는 언제나처럼 농담으로 받아치는데 한해 한해 더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저녁 때는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광주 지하철에서 일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함께 해서 자리가 더 시끌벅적해졌다. 친구들은 내가 시골에 내려가더니 더 건강해진것 같다고 했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한 사람에게 제대로 집중이 안 되고 객담만 늘어놓게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실연한 친구를 위로해주다가 옛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조금 저렸다.
추석 다음날, 어머니와 동생들, 매제, 조카와 함께 성묘를 다녀왔다. 귀신도 튀어나올 것 같은 엄청난 더위. 할아버지 산소 주변 나무들을 가지치기하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땀흘리며 음복을 나누었다. 아버지가 끝내 못 보시고 떠난, 이제 두 살된 조카는 산소 주변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논다. 여동생은 또 배가 불러 있다. 어머니는 작년처럼 울지 는 않으셨으나 조금 목이 메인 소리로 "우리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아들들이나 얼른 장가가게 해줘요."하신다. 그 때는 어머니께 농담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르뽀쓰는 선배를 만나 미술관을 관람했다. 선배의 아들인 새빈이와 우리 윗집에 사는 명지도 함께 만났다. 선배네가 조금 늦게 와서 명지와 먼저 덕수궁 내부를 둘러보고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석조전 건물로 들어가 그림을 구경했다.
덕수궁은 전통과 근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고종황제가 주로 머물렀다던 이 궁은 한옥양식 건물 이외에도 영국과 러시아의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명지는 궁궐을 처음 본다면서 탄성을 지르며 아주 신기해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들...아, 짧은 지식으로 이 호기심 많은 청소년의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ㅎㅎ
미술관에서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라는 이름으로 중남미 지역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명지와 나는 한 그림 앞에서 약 5분 정도씩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으며 감상했는데 이 아이는 집중해서 봤고 그림의 의미과 표현의 특성을 제대로 짚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배고픔과 다리 아픔은 견디기 힘들었던지, "아,그림에서 바나나 보니까 바나나 먹고싶다" "어? 이 그림은 초코렛으로 그린 것 같네요? 아, 배고파. 초코렛 먹고싶다"하다가 "에구, 다리야"하면서 주저앉아버렸다.
새빈이도 자기 엄마를 마구 졸라 결국 그림을 충분히 못 본 채 나와 덕수궁 돌담길 옆 일본식 돈까스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술관에 식사 공간과 휴식 공간이 충분치 않은 점은 문제다. 아니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 올 수 있게 하든가.
밥 먹은 뒤에 덕수궁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참을 더 수다떨었다. 91세 되신 할머니가 동석해서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보겠지요?"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미소짓는다.
"다음 생에서 또 볼 수 있겠지요" 라고 내가 답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신다.
할머니는 우리가 말 상대해주어 고마우셨던지 저만큼 가서 다시 돌아보며 손을 흔드셨다. 남은 하루 또 외로우실테지. 의자를 뒤로 젖혀 하늘을 보니 참 파랗기도 하다.
한번 왔다가 떠나는 사람 살이인데, 나는 참 말이 많기도 하다. 낮술 탓인가? 하하
이제 또 봉은사 장터 때까지 '농사꾼되기'에 충실해야지.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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