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들어서고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만 그 동안 일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숨 돌릴 새 없이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고, 분노나 저항감도 커진 것 같습니다. 소통이 막히는데서 오는 날 선 마음들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 산골의 촌부(村夫)에게까지  느껴져 옵니다.

보통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더 덥게 느껴지는 여름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요?

저 자신도 대선과 총선이 끝나고 나서 소회를 밝힌 바 있습니다만,  국민의 선택, 국민의 바램이 새 정권에게 맡긴 과제들이 잘 풀려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정부와 국민,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간에 소통의 부족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고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잘 못 되고 있는 것일까요?

반성한다고 말하면서도, 또 일시적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슬며시 본래의 타성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이 우리들의 현주소, 우리의 실태라고 체념해 버리기에는 우리가 쌓아온 그 동안의 노력들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드는군요.

경제는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끝없는 경제적 욕구의 만족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이 환상을 키우는 것에 주로 의존하는 것은 자칫하면 탐욕(貪慾)만을 키워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늪으로 우리 모두를 끌고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제를 경시하자거나, 물질적 욕구를 억제하자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물질적 욕구와 이기적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숭고(崇高)본능(本能)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동정하고, 사랑하는 것,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정신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또한  인간의 진정한 면모입니다.

이것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커지면, 즉 욕구의 질이 바뀌게 되면 자연스럽게 물질적 풍요가 진정한 행복의 조건으로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된 이념(理念)과 실태(實態)가 조화되어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실태를 바탕으로 출발하지만 그 지향은 삶의 질 아니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 뚜렷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진정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바탕이 부족한 실용주의도, 과거의 현실과 맞지 않은 공허한 이데올로기(이것을 이념이라고 부르기도 한 것 같습니다)도 하나의 극단(極端)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극단들을 경험해야 할까요?

그것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면 이제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 빨리 벗어나야겠지요.

그래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지금의 어려움을 귀중한 교훈으로 해서 한 단계 더 쑤욱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겠지요.

새 정부의 정책이 본래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진 자들의 탐욕(貪慾)을 키우고, 못가진자들의 분노와 증오를 키우는 쪽으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면 이것은 퇴행(退行)이며 비극(悲劇)입니다.

이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희망은 사실 성숙한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이 사회의 혜택을 받아 남보다 더 가지게 된 사람들 가운데 그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기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환원(還元)은 기부나 증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양보하고, 자본가가 노동자에 양보하고,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양보하고, 상공업이 농업에 양보하고, 도시가 농촌에 양보하고, 다수당이 소수당에게 양보하는 것 등이 다 진정한 환원(還元)입니다.

그런가하면 자기는 비록 못 가진 자에게 속할지 모르지만 우리들과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 이 사회의 영원한 존속을 위해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진짜 어머니의 심정으로 미래를 책임지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손해가 가는 일이라도 나라 전체의 이익이나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대승적 입장에서 감내하고, 묵인하며 때로는 지지까지 할 수 있는 성숙한 진보 세력이야말로 미래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국민의 성숙함이 정치에 반영되고 정책으로 나타나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부, 능력, 명예)을 모두의 행복을 위해 풀어놓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과 자기는 비록 지금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미래에 대해 무한책임(無限責任)을 달게 지려고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이념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연대하는 ‘희망의 연대’를 그려봅니다.

-----------------------------------------------------------------

-----------------------------------------------------------------

그 양끝을 두들겨 끝까지 진리를 탐구하겠습니다.

(08년 7월)

논어 강독을 했던 것을 정리하다 보니 공자께서 연찬(硏鑽)에 대해 이렇게 잘 말씀하실 수 있을까 하고 새삼  감탄이 되어 소개합니다.

요즘 여러 가지로 음미할 만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노라. 그러나 알고저 하는 사람이 나에게 물어 오면 그가 누구라도, 머리가 비어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들추어 내어 끝까지 찾아보겠노라.”

(子曰 吾 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 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강독>

윗글은 진리탐구에 대한 공자님의 태도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구절이다.

우선 ‘모른다’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말씀만의 겸허함이 아니다. 깊은 속 마음에서부터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한 것이고 진리를 향해 똑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속으로는 ‘안다’고 생각하면서 말로만 하는 가짜 겸허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하고 멈춰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모른다’는 데서 출발하여 ‘무엇이 진리일까?’하고 끝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아고기양단이갈언(我叩其兩端而竭焉)은 진리 탐구에 대한 공자님의 태도를 압축하여 표현하신 것이다. ‘그 양단(兩端)을 두들긴다’는 말씀에서 선입관이나 주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철저하게 진리를 구명(究明)해 가는 성현의 모습을 뵙는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은 단정(斷定)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것이 틀림 없다’라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이번엔 ‘저것이 틀림 없다’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틀림없다고 믿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에 실망하거나 좌절했을 때 이번에는 180도 다른 선택을 또 ‘확신’을 가지고 한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공자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그 양단을 두들긴다’는 것은 끝까지 ‘진리란 무엇일까?’하고 찾아가는 태도이다. 대체로 극단과 단정 속에는 진리가 숨 쉴 수 없다.

물질과 마음, 좌와 우, 인위적 문명과 생태주의, 자유와 평등, 남성 우월주의와 여성 해방 등 우리 시대의 수 많은 테마들에 대해 ‘그 양단을 두들겨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끝까지 찾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이 급변하는 세상에 언제까지나 찾아가고만 있을 수 있는가?  어떻든 신속하게 결정해서 실행에 옮겨야 할 일들이 많은데 공자의 말씀처럼 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성급한 사람에게는 공자의 말씀이 비현실적인 잠고대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자의 말씀을 잘 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 때 그 때 시기를 놓지지 않고 수 많은 선택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이것이 틀림 없어’하고 단정(斷定)의 바탕 위에서 하는 것과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틀려 있을 수도 있어’하고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가 추진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은 지금까지의 ‘아집’에 바탕을 둔 실행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다원화된 민주주의 시대에는 어떤 선택과 실행이 더 시대에 맞을까?

‘지금으로서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것을 선택하고 그 실행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면 언제나 더 좋은 선택과 그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원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태도가 아닐까. 말로는 상생협력을 이야기해도 마음 속 깊이 극단과 단정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다.

그 양단을 두들긴다는 것은 비단 사상이나 이론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행까지를 포함해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갈(竭)도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양단을 두들겨서 서로 찾아가고 서로 깨우쳐주는’ 과정이 아닐까? 이런 정경에서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공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대화>

- 공자님 같이 만인이 스승으로 생각하는 분이 ‘아는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다니!

- 그래서 만인의 스승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 ‘비부(鄙夫)가 물어 오면 ～ ～’ 하는 부분은 깊은 감동을 줘요. 비록 空空如也라도 끝까지 함께 찾아서 말해 보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스스로가 배우고 알아가고 싶은 정열이 없으면 이런 심정이 되기 어렵겠지요.

- 사람들은 무언가를 틀림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실망하면 정 반대의 믿음을 선택하지요.

-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어떤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가 같이 지내보고 실망한 나머지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네. 내가 속았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 저도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요.

- ‘정말 좋은 사람이야’나 ‘정말 나쁜 사람이야’나 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요.

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내 쪽에서 지지고 볶은 것이 아닐지.

- 요즘 new right나 new left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이제는 과거의 좌우를 다 두들겨서 그 진정한 진보랄까 하는 것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 정신이 아닐까요.

- 좌우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면도 있고, 지금의 사람들의 실정이 그런 면이 있으니까 굳이 뉴라이트나 뉴레프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요.

다만 NEW에 대해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NEW의 특성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공자님의 말씀과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자기의 주장을 절대적이라고 단정하여 맹신하지 않고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실천한다’는 정도의 여백이 있는 상태로 되는 것이 아닐까요.

- 그렇게 될 때 상대가 마음에 들어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