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그리고 아름다움

                                                         서정홍/경남귀농학교장

  농민회 전국본부 정기환 총장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이번에 쿠바에 한 번 다녀오면 어떨까요? 쿠바의 유기농업을 보고 배워서 우리나라도 농약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오늘 코앞에 닥친 일도 많은데, 꼭 쿠바까지 가서 배워야 합니까? 내가 안 가도 되면 다른 사람 보내면 좋겠습니다.”

  “형님이 실무자들 가운데 나이도 많으니 먼저 다녀오세요. 친환경농업단체연합회에서 11박 12일 동안 ‘쿠바 유기농업 연수’ 가기로 결정 났으니, 꼭 다녀오셔서 우리나라도 대안을 마련해야지요.”

  “합천 들녘에서 ‘밀사리문화한마당’ 행사도 있고, ‘생태귀농학교’도 열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 배우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지, 큰맘 먹고 가자. 가서 보고 듣고 배우자. 이 세상에서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는 나라는 ‘쿠바’밖에 없다고 하지 않던가. 더구나 우리나라는 수백 가지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온 산과 들판이 몸살을 앓다가 지금은 ‘숨이 막 넘어갈 지경’까지 왔지 않은가. 아이들이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으면서 마음 놓고 뛰어 놀고, 누구나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살아왔지 않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멀리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도 있지만 ‘쿠바’에 간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서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괜스레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농민회 일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겨레의 목숨을 이어주는 농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늘 대답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혹시 그 대답을 나는 쿠바에서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듣지 못한다 해도 '희망의 불빛' 한줄기라도 찾아서 돌아온다면 그것 또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제쳐두고 큰맘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마치 세상이 멈추기라도 하듯이 거미줄처럼 꽉 짜놓은 일정들을 이리저리 조절하면서 나 스스로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영원히 없어져 버려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텐데…….

정기환 총장이 “형님, 이번에 쿠바에 한 번 다녀오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을 때,  지난해 ‘생태귀농학교’를 열면서 읽은 <21세기의 모델 쿠바의 유기농업> 맨 뒷장에 있는 호세 마르티의 시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나는 야자나무 우거진

그 땅에서 온 성실한 사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나 노래하리

가슴 아픈 이 시를

그 땅의 가난한 이들과

내 운명을 함께 하리라

대양이 아무리 넓어도

내 고향 골짜기 시냇물이

나는 더 기쁘고 즐겁다

  ‘쿠바의 사도’라고 불리는 호세 마르티가 쓴 이 시는, 시대를 넘어 쿠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아라’고 말한 호세 마르티는 쿠바가 낳은 진짜 시인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시는 영원히 남아서 쿠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시는 마음의 음악’이라고 하지요.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사람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는 시야말로 참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지 않습니다. 한 번 펜을 잡으면 평생 밭을 갈지 않습니다. 밭을 가는 일은 가난하고 못 배운 농부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죽을 때까지 손톱 밑에 흙을 넣지 않고 사는 것이 집안의 자랑이고, 희망입니다.

  그런데 ‘쿠바의 사도’인 호세 마르티는 ‘아침에 펜을 잡으면 오후에는 밭을 갈아라’고 했습니다. 쿠바는 호세 마르티 시인의 말대로 농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농사를 가장 으뜸으로 여기고 모든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여 온 나라가 부러워할 만큼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집을 나서면서

  내가 사회주의 국가 쿠바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닌 줄 잘 압니다. 메마른 이 땅에서 유기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 선배들과 농부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쿠바에는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체 게바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체 게바라 얼굴을 웃옷에 새겨서 입고 다니거나 사진과 우표들을 모으기도 하고, ‘혁명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체 게바라 평전’을 읽기도 합니다. 따라 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일이지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넓게 가지면 우리나라에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싸우다가 쓰러져간 숱한 혁명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처럼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들풀처럼 아무 이름도 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농촌 들녘, 노동현장 들)를 지키며 살아온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내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것이니, 나는 그 분들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는 ‘작은 사람’입니다.  

  누가, 외국에 무엇을 배우러 간다고 할 때마다(더구나 농사일을) 나는 속으로 ‘이런,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데,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가나?’ 하면서 빈정거렸습니다. 그런데 내가 농사일을 배우기 위해서 쿠바로 가게 되었으니 할말이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정말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외국에 가서라도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변명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속옷 두 벌, 양말 두 켤레, 면도기, 죽염, 이 닦을 볶은 소금, 칫솔, 모자, 공책, 볼펜, 여권 따위를 아들 녀석이 쓰던 책가방 속에 꽉꽉 눌러 넣었습니다. 농민회 식구들이 쿠바에 가서 먹으라고 주는 우리밀 고추장과 막장 몇 병조차 넣을 자리가 없을 만큼 비좁았지만, 쿠바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나눠줄 수건은 꼭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다시 차곡차곡 넣기로 했습니다. 워낙 작은 가방이라 수건 몇 개 넣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웃집 신혼여행 가방이라도 빌릴 걸’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눌러 넣었습니다.

  바쁘게 서둘다 보니 빠뜨린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쿠바까지 가는데 사진기는 있어야지’ 싶어서 사진기를 빌리느라 아침부터 온 식구들이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면서 가장 편하게 빌릴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사는 처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제, 형부 쿠바 가는데 사진기가 필요할 것 같으니, 사진기 있으면 빌려 줄래요?”

  “형부, 여태 살면서 사진기 하나 장만 안 하고 뭐 했어요?”

  “집집마다 사진기 있는데, 가끔 빌려 쓰면 되지, 돈주고 사긴 왜 사요. 사진기 없다고 밥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누가 밥 못 먹는다고 했어요? 자기 것이 하나 있어야 편하다는 거지.”

  “내 것 없어도 편해요. 고장 나면 수리해 줄 테니 아무 말 말고 빌려주기나 해요.”

  “알았어요. 회사 창립기념일에 받은 3만 원짜리 사진기가 있는데, 낡고 오래 되긴 했지만 사진은 깨끗하게 잘 나와요.”

  “사진만 잘 나오면 되지, 아무리 낡고 오래 되어도 좋아요. 조금 있다가 그 집 앞을 지나갈 테니 들고 나와요.”

  그나마 사진기를 구해 놓고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유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싶더군요. 혹시 빠진 게 없는지 이것저것 살펴보고는 가방을 메고 나섰습니다.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선물 잊지 말고 꼭 사 오세요.”

  몇 번이고 인사를 하는 아들 녀석과

   “꼭 필요할 때 쓰세요.”

  하면서 때 묻은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내 손에 쥐어주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왠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노동운동이니 농민운동이니 하면서 15년 남짓 생활비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 남편한테 용돈까지 챙겨주니…….

  오늘도 공장에 나가서 독한 납 연기를 맡으면서 전자제품 조립을 해야만 하는 아내, 혼인하고 이십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아내, 그렇게 열심히 살고도 아직 작은 집 한 채 없이 셋방살이하는 아내, 그래도 큰 불평 없이 살아가는 아내지만, 아내를 두고 쿠바로 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잘 다녀와야지, 백성들이 낸 귀한 세금과 농민들이 흘린 땀방울까지 보태서 쿠바에 가는데, 많이 보고 듣고 배우고 깨달아서 실천해야지. 이 길이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 것이니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서 알차게 보내야지.’ 스스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쿠바로 가기 위해 창원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미리 마련한 우리밀 건빵 몇 개와 물 한 잔으로 때웠습니다. 다섯 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희망’이란 때로는 ‘밥’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쿠바로 가는 길

  몇 년 전부터 쿠바에 가기 위해 우리나라 친환경농업단체연합회에서 계획을 세웠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지원을 하여 결국 올해 그 뜻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빼고 나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인천⇒ 일본 동경 ⇒ 미국 샌프란시스코 ⇒ 멕시코시티 ⇒ 쿠바 하바나 공항까지 네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쿠바에 닿았습니다.

  기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내가 꼬박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쿠바까지 간 가장 큰 까닭은 쿠바는 나라 전체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뒤부터 들어온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우리나라 논밭들은 대부분 깊은 병을 앓고 있는 지금, 쿠바의 유기농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큰 빛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쿠바로 가는 길은 결코 멀지만은 않았습니다. 병든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데 쿠바보다 수 백 배 더 먼 곳이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쉬운 말로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고 넓어지니까요. 길을 나서는 것을 여행이라고 합니다. 나라 안 여행이나 나라 밖 여행이나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일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뒤돌아보고,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그래서 서로 존중하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진리를 배우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욕심을 비워내기에는 여행만큼 좋은 길이 없으니까요.

  함께 가는 사람들

  쿠바로 가기 전부터 내 마음이 들뜬 까닭은 함께 가는 분들의 ‘이름’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바른 농사’를 짓기 위해서 가난과 불편을 무릅쓰고 온갖 고난을 다 받으며 살아오신 오재길 정농회 초대회장님과 정농회 회원인 강종필 농부님,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고삼농협 조현선 조합장님, 아직도 젊고 뜨거운 가슴으로 ‘한살림운동’을 펼치는 이상국 선배님, 아주 오래 전부터 병들어 가는 우리나라 흙을 살리기 위해서 애써온 ‘흙살림연구소’ 이태근 소장님, 대학 졸업하고 20년 남짓 젊은 시절을 몽땅 농민운동에 바치고 있는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강성중 사무국장님, 우리나라 친환경농업단체연합회를 이끌어가는 정상묵 회장님 그리고 전은주 간사님, 환경농업가족실천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권광식 선생님, 농협중앙회 지역환경농업 팀장이고 전국귀농운동본부 강사로 열심히 살아가는 송한철 선생님, 도시에서 우리 농촌과 환경을 살리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를 쓰는 여성민우회 김인숙 이사님, 독재와 싸우다가 최루탄이 머리에 박혀 죽다가 다시 살아난 흙살림제주도연합회 전우홍 선생님, 팔당생명살림 박종서 이사님과 이윤재 농부님, 농민신문 박종명 기자님과 농수축산신문 길경민 차장님, 젊은 시절(?)입사지원서에 예수님과 체 게바라를 존경한다고 썼다가 퇴짜맞은 것 같다는 전국귀농운동본부 고참 이진천 아우님, 21세기영농조합법인 성천근 이사님, 무너져가는 우리 농촌을 살리고 싶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바치고 있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님, 그 ‘이름’들만 들어도 나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나 같은 ‘촌놈’이 이런 귀한 분들을 만나서 함께 여행(연수)을 할 수 있다니…….

  나는 틈만 나면 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쿠바에서 배워야 할 것도 있겠지만, 우선 우리나라에서 한평생 농사를 짓거나 농촌을 살리기 위해 애쓴 분들에게도 배울 게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귀찮다고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찾아가서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기적의 땅, 생명의 땅, 쿠바

  쿠바는 카브리해에 떠있는 섬입니다. 국토 면적은 일본의 3분의1 크기며, 아열대성 해양기후로 연간 평균기온이 섭씨 25.5도나 되는 더운 나라입니다. 인구 1100만 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라지만,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쿠바는 수백 년 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 아래 고통을 받다가 1959년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 미국의 경제봉쇄로 40년 남짓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미국대륙에서 2백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아스피린 하나 들여오지 못했다고 함) 1980년대 후반부터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소련의 정치․경제․사회 혼란이 쿠바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다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입에 의존했던 연간 100만 톤의 화학비료, 200만 톤의 사료작물, 2만 톤의 농약과 기계부품 들을 한꺼번에 공급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온 백성들이 이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쿠바는 비상사태 선언인 ‘특별시기’라는 이름으로 식량자급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아서 지금까지 유기농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쿠바에서는 농촌에서만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 건물(학교, 병원, 관공서, 주택…)과 건물 사이, 빈 터마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갖가지 유기농법으로 기른 채소와 과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농약과 방부제,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더러운 수입 농산물 때문에 마음 놓고 밥상조차 차릴 수 없는 ‘대한민국’에 견주면 제 나라 먹을 양식을 거의 자급하는, 그것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거의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쿠바는 축복 받은 나라였습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5%밖에 안 되고, 그것도 쌀을 빼고 나면 5%밖에 안 된다고 하니 우리 민족은 ‘거지민족’입니다. 손발이 멀쩡한데 남의 나라에 손을 벌려서 얻어먹고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진짜 ‘거지민족’이지요. 

  21세기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식량전쟁’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은 지금, 쿠바는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고, 그것도 어디에서나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서 살아가고 있으니 기적 가운데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농약이 없는 나라, 기적의 땅, 모든 생명이 건강하게 숨쉬는 땅, 쿠바는 이 시대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돈 한푼 받지 않고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는 나라, 죽을 때까지 공짜로 치료해 주는 나라(우리 나라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거나, 병이 들어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많다), 이 두 가지만 보아도 쿠바는 말 그대로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은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가장 소중한 직업이지요. 모든 직업이 다 사라져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으면 어느 한 사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자동차나 컴퓨터를 씹어 먹고 살 수도 없고, 냉장고나 텔레비전을 씹어 먹고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잘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훌륭한 나라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혁명이 골목마다 깃들여 있는 쿠바는 참 위대한 나라입니다.

  ‘기적의 땅’, ‘생명의 땅’ 쿠바에서 보낸 11박 12일 동안의 감동을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처지를 겪게 되어 백성들이 몹쓸 병과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거든 꼭 쿠바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북한은 어린아이들까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을 가고 몸을 팔거나 굶어서 죽어가지만, 쿠바는 북한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도 어느 한 사람도 굶어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쿠바가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믿습니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쿠바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서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쿠바처럼 우리나라도 국가와 백성들이 나서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길만이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고 미래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고통이고 절망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편리함과 돈만 쫓아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고통과 절망뿐이기에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함께 하면 못 할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공원에 쓰레기가 많은 까닭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많이 다녀간 탓이고, 자연이 병든 까닭은 정신이 병든 인간들이 많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할 일이 많은 것입니다. 

  사회주의국가 쿠바는 나라 전체가 ‘유기농업’을 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왜냐면 날이 갈수록 생태계가 파괴되어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지금 우리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토피 피부염이나 여러 가지 병을 안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은 파괴된 생태계를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유기농업’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기 때문에 미국, 일본, 독일 들에서도 떼를 지어 쿠바를 찾는 것입니다.

  쿠바는 하루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처럼 힘세고 못된 나라들 틈 속에서 수백 년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 바로 ‘유기농업’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한꺼번에 죽이는 독한 농약을 쓰지 않기 위해 알바가(향기 나는 허브 종류)와 금잔화 들을 밭 들머리에 심어서 벌레를 쫓아내고, 땅을 못 쓰게 만드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위해 지렁이를 길러서 거름을 만드는 쿠바 농부들의 모습은 이 세상 어느 유명한 학자보다도 더 당당하게 보였고, 고귀한 성직자보다 더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나라에서는 유기농업 자재를 아주 값싸게 공급해 주고, 유기농업연구소들이 곳곳에 있어 누구든지 유기농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 비바람 폭풍이 불어서 농사를 다 망쳐도 국가에서 모두 보상해 주는 나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 주일에 하루는 농업교육을 하거나 농촌에서 일을 하는 나라. 장관, 박사, 의사, 교수보다 농부가 월급이 더 많은 나라.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최고로 받드는 나라. 젊은 농민들이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르며 농사를 짓는 나라. 어디에서든지 안심하고 먹을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나라.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머리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제 손으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신이 만든 자연과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라와 종교와 모든 사회단체의 기본 철학은 농업과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서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이 없어도(우리나라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밥’이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쿠바처럼, 우리나라도 살아 남기 위해서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려서 우리가 먹을 양식을 우리 손으로 지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나라 인구 가운데 70% 이상은 농촌으로 돌아가서, 옛날처럼 식구들이 함께 모여 제 식구 먹을 곡식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아야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당당하게 먹고사는 일’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는 농업과 모든 분야에서도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다른 나라도 거의 마찬가지겠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자연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우리 인류에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혼란의 시대를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부터 바꿀 것입니까? 나무 그늘에 혼자 앉아 영혼의 소리를 들어 보면 금세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라고.’

  지금, 세계 모든 나라들이 쿠바의 유기농업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우리도 안전한 ‘식량 자급’을 가장 큰 목표로 세워야 합니다. 휴대폰을 팔아먹고, 그 대신 식량을 수입해서 백성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그 따위 생각이 얼마나 나라를 망치는 짓인지, 얼마나 우리 농촌과 환경을 파괴시키는 짓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면서도 편리함에 빠져서 그저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그것이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그것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일은 농촌 사람들만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종교와 모든 백성들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쿠바처럼 ‘비상사태’를 선언해서라도 계획을 세워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굳건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쿠바에서 배운 가장 큰 희망입니다.

  사회주의, 살아봐야 압니다

  쿠바에 닿자마자 ‘사회주의 국가는 재산이 모두 국가 것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욕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줄 사람도 없고,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없으니 일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사람들이 욕심이 없으니 못 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쿠바 유기농업 연수에 함께 간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것이 가장 궁금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라훈아의 ‘고향역’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에벨리오 안내자(통역)에게 틈만 나면 물었습니다. 노래는 잘 하는데 통역이 영 시원찮은 ‘에벨리오’라는 젊은 안내자한테 귀찮을 정도로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한국말을 통역해 주는 사람이 쿠바에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쿠바 전체에 한국말 하는 사람은 여덟 명밖에 안 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발전도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발전했습니다. 발전 있는 나라입니다. 러시아에서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러시아 없어지고 나서 열심히 일해서 우리 먹고살았습니다. 내 나라에 대해 거짓말 할 필요 없습니다. 한국말 통역을 제대로 못해서 너무 미안합니다. 김일성대학에서 많이 배웠는데도……. 그리고 사회주의 제대로 알려면 쿠바에서 살아봐야 합니다. 집도 땅도 모두 국가 것이라 우리는 무소유입니다. 그리고 80년대 월급과 지금 월급이 똑같습니다. 그래도 밥먹고 삽니다.”

  “한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다가 혼인을 하여 아기를 낳으면 방이 하나 더 필요할 텐데, 국가에서 집을 줍니까?”

  “필요하면 국가에 신청을 합니다. 당장 나오지는 않지만.”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불편해서 어떻게 삽니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면?” 

  “우리는 무소유입니다. 80년대 월급과 지금 월급이 똑같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조금 불편하게 사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삽니다.”

  우리 일행은 쿠바 사람들 만날 때마다 알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물은 왜 돈주고 사 먹어야 하느냐? 농사짓고 나면 몇 %를 국가에 주느냐? 돈으로 주느냐? 농사지은 채소로 그냥 바치느냐? 씨앗과 거름은 국가에서 주느냐? 농사짓는데 들어가는 경비는 누가 부담하느냐? 돈은 모아서 무엇을 하느냐? 집들이 왜 이렇게 낡았느냐? 사오 십 년이나 된 자동차들을 불안해서 어떻게 타고 다니느냐?

  우리 일행들 가운데는 ‘이런 못사는 나라에서는 불편해서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이 욕심이 없으니 눈빛이 모두 천사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르니 다르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누가 뭐래도 내 눈에 보이는 쿠바는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이 욕심 없이 산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쿠바의 농부들

  교수 월급이 300페소인데 농부는 900페소나 되는 쿠바는 월급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라도, 백성들의 목숨을 이어주는 농부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젊은 농부들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땡볕에서 웃통을 벗고 삽질을 하는 쿠바의 젊은 농부한테 “앞으로 꿈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이렇게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욕심 없이 맑고 건강한 젊은 농부의 목소리가 아직도 나를 따라 다닙니다. 내가(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영원히 나를(우리를) 따라 다닐 것입니다.

   논밭 가까이에서 담배 피우면 벌과 나비가 날아가 버린다고, 벌과 나비가 날아가 버리면 농사를 다 망친다고, 제발 논밭 가까이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던 쿠바의 젊은이한테 채소밭 가에 옥수수를 왜 심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옥수수 키가 크므로 바람막이가 되고 두 번째, 나쁜 벌레들이 채소한테 가지 않고 옥수수에 붙어서 살 수 있게 하고 세 번째, 내가 옥수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채소밭에 농약을 뿌렸는지, 왜 벌레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날마다 잘 살펴보고, 벌레가 보이는 대로 내가 손으로 잡아버리니까 없다.”고 하더군요. 쿠바는 농부들한테나 연구소 직원들한테나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친절하게 다가와 설명을 해 주면서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땡볕 아래 일하면서도 어찌 이런 마음의 여유가 나올 수 있을까요?

  쿠바의 농부들은 6개월마다 15일씩 휴가를 간답니다. 노동자들처럼 7시 출근하여 12시까지(30분 남짓 새참 시간도 있음) 일하고, 더운 낮에는 쉬다가 오후 5시쯤 퇴근합니다. 그리고 일만 평밖에 안 되는 땅에서 47명이 농사를 지어서 부족한 것 없이 잘먹고 사는 농장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십만 평 땅에 농사를 지어도 한두 가족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그만큼 국가에서 지원을 한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세상이 올까요?  현재, 우리나라는 3대가 굶어죽을 각오로 농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인데 누가 농사를 짓겠어요. 국가에서 특별한 지원도 없고, 애써 농사지어 놓으면 수입해서 농산물 값이나 팍팍 떨어뜨려 놓기나 하니…….

  우리나라도 앞으로 농약과 화학비료 지원할 돈으로 유기농 자재를 정부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쿠바처럼 소농(가족농)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대농은 어차피 큰 나라에 이익만 줄뿐이니까요. 왜냐면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외국 농산물 가격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가 살 길은 가족농밖에 없습니다.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적이 정확하게 눈에 보여서 총으로 혁명을 했지만, 지금 우리는 적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총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카스트로는 정권을 잡자마자 식량을 자급하기 위해 농사에 대한 책을 100권 넘게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농업이 망하고 농촌이 다 무너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농사에 대한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혁명은 내부로부터 온다’고 합니다. 입만 살아서 떠들어대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과 온몸으로 살아 움직이는 쿠바 정치 지도자들의 차이를 어디에 견주면 좋을까요?

함께 간 사람들

  “여든넷 살이나 되면서 제주도에서 새로운 생명공동체를 꿈꾸는 정농회 초대 회장인 오재길 선생님을 위해서 박수를 쳐 드립시다. 인생은 육십부터 시작이니 오재길 선생님 나이는 이제 스무네 살입니다. 젊은이들도 여기 쿠바까지 오려면 피곤할 텐데, 얼마나 농촌을 사랑하시기에 나이도 잊고 오셨겠습니까.”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통역뿐만 아니라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었습니다. 마치 옆집 아저씨처럼 편했습니다. 장관이라고 하면 쓸데없이 어깨 힘이 들어가고 목이 뻣뻣해질 텐데, 어느 한 군데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농림부장관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쿠바 연수 기간 동안 나는 틈만 나면 선배들을 찾아가서 선배들 살아온 삶과 계획들을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오재길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그리고 일부러 찾아뵙고 나눈 이야기들입니다.

  “선생님, 살아오시면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시겠습니까?

  “옛날에 내가 친 농약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한테 보상할 길이 없어요. 농약친 곡식을 먹고 몸과 마음이 병이 들어 고통스럽게 사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람들을 만날 수만 있으면 보상이라도 해 드리고 싶어요.”

  “한 길로 걸어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하늘나라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농민운동 같은 거 하지 말라는 교회 사람들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왔어요.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인정해야만 잘못된 것을 고쳐가면서 나아갈 텐데.

자연과 사람을 괴롭히면서 번 돈으로 교회에 갖다바치면 하느님이 좋아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