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의 마음 만나기

-실상사 지역공동체를 다녀와서-

전북 남원시의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 지역공동체 탐방의 목적으로 불교귀농학교 20기분들이 나들이를 갔을 때가 4월 중순에 가까웠으니 봄에서 느낄 수 있는 따사로움과 싸늘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방문시기가 새 생명들이 막 깨어난 이후가 아니었을까. 겹겹이 산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 실상사가 오롯이 있다. 겹산이 둘러 있다하여도 하늘이 다 보이니 답답증이랄 것도 없고 아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얘기한다. 참으로 익숙하여 낯설지 않다고도 한다.

인드라망에서 나누어 준 일정표를 보니 꽤 빡빡한 일정이다 싶었다. 사찰에 왔으니 사찰예절도 배워야 할 것이고 지역공동체에 대한 배움도 얻어가야 할 것 같다. 실상사를 근간으로 하는 교육의 일환으로, 실상사 탐방도 하고, 발우공양도 해 보고 사람에 따라서는 새벽예불과 저녁예불도 참여할 터이다. 마을을 돌며 ‘실상사 작은 학교’ 와 ‘지리산 친환경 영농 조합’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은 지역공동체에 접근 하는 첫 출발였다. 그리고나서 집짓기 강의와 현장을 답사하고 한봉에 대한 강의와 견학, 그리고 실상사 교육원에 대한 이해의 시간, 쑥을 캐고 쑥효소를 담궈 보았으며 팀을 나누어 모두들 마을 곳곳에서 비닐하우스를 세우거나, 과수원과 고사리밭에서 일을 하거나, 볍씨파종 일을 해나가며 땀을 흘리는 일정을 3일 동안 소화했다.

일정상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한정되어서 아쉬울 만큼 모두들 지리산에서 다양한 경험을 보고 듣고 행하고 느끼는 것이 한량없다 하여 매우 열심이었다. 어쩌면 참으로 피곤할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도 터전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서울로 돌아올 적에도 힘들어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거기에는 실상사의 스님이 우리에게 즐거운 웃음을 주신 덕도 있을 것이고, 하루 일과를 마치거나 틈틈이 우리의 몸을 살피어 몸다루기 시간을 맡아 준 보리님의 배려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된다.

켠켠히 기억에 모두 남을 만한 일이었는데 그 중 또 꼽아보라면 한옥집 이야기, 한봉 하는 이야기, 그리고 쑥을 캐고 쑥효소를 만들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던 기억과 함께하는 마을일들이 기억에 오래 가는 듯하다.

한옥사랑

한옥집 짓는 일을 해 오신 전순우 선생님의 한옥에 대한 자긍심과 한옥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게 있게 다가와서 우리의 것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불러왔다. 운이 좋아서 한참 짓고 있는 한옥 집을 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살 집을 내가 짓고 사랑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기회였다. 그 집이 한옥집이 될 수도 있고 흙집이 될 수도 있다. 새집이든 헌집이든간에 말이다.

한봉이야기

양봉과 한봉을 비교해 주고 쉽게 풀어 말씀하시는 것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한봉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고 시간도 많이 안 들인다는 박석권님의 말씀에서 복합영농에 대한 욕심을 내 볼 수도 있겠으나 어찌 그 고충이 없었을 것이고, 그 노하우가 생길 때까지 쉬운 것이 있었을까. 그것은 녹록한 경험에서 오는 여유로움이었으리라.

쑥캐기와 쑥효소 만들기

봄이라서 쑥쑥 자라나는 쑥을 길상사와 실상사 교육원에서 한주머니 가득히 뜯어 보았다. 뜯은 쑥의 일부로는 효소를 만들고 나머지는 현재 내가 사는 집-냉동칸에 얼려놓고는 조금씩 꺼내어 쓰고 있다. 그때마다 실상사가 생각난다. 뚜껑 달린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쑥효소를 담궈 왔는데,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 20기 분들의 모양새에 웃음이 나왔다. 모두들 손 하나마다 빨강뚜껑 통을 들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의아하게 여길 요량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노작

하나하나의 시간들이 좋은 것이 워낙 많았는데 그 중에도 몸을 쓰고 팀원끼리 협력하여 노작을 해 본 것이 제일 기억에 오래 가지 않을까 싶다. 몸으로 겪어내는 일이 원래 마음에도 오래 남는 법이니까. 나의 경우는 볍씨파종을 하였는데 태생도 서울에서 났고 배우고 자란 곳도 서울이었던 내게는 모든 것이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많은 볍씨도 가까이서 처음 보고 바지를 걷고 논으로 철퍽철퍽 들어가 보기도 처음이다.

노작을 시작할 때는 중구난방으로 행해지던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하는 분들과 손발도 척척 맞아가고 요령이 생기어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기도하여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데, 농사일을 해오시던 분들이 보면 상당히 어설퍼 보셨을 터라도 우리네끼리는 뿌듯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나가시던 동네 분들도 살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던 기억도 난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과수원이나 고사리밭에서 노작을 했던 다른 팀처럼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지역 공동체분들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갖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노작을 마치고 나서 나누어 일하던 모든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서로들의 즐거웠던 노작 경험들을 나누느라 에너지가 넘쳤다. 아마도 이 때 이후부터 20기 분들의 사이가 더욱 친밀해지고 스스럼이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낯섬이 허물어지는 시간 였다.

그래서인지 실상사를 향해 가던 20기분들의 모습과 돌아올 때의 표정들이 굉장히 달랐다. 서먹서먹하고 웃음기가 없었던 출발당일의 버스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함과 웃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지역공동체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20기안의 사람들끼리 관계 맺기에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실상사 나들이>가 아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불교가 종교로써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마을지역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생활 체제를 만들어 가면서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인상이 깊이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농업정책을 보자면 이렇게 농사를 하며 사는 삶의 공동체가 지속유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인드라망과 실상사라는 구심점이 힘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긴다. 불현듯 우리나라의 각 도마다 이와 같은 지역체제가 만들어지면 세상이 좀 바뀌지 않을까 하며 웃음 지었던 담소들이 떠오른다. 실상사를 둘러싸고 있는 담에는 허물어진 곳이 보인다. 그래서 꼭 일주문을 통하지 아니하고도 마을을 오고갈 수가 있다. 나는 이 허문 담이 실상사의 마음이요 길이라고 본다.

끝으로, 불교귀농학교의 어느 기수 때라도 그러했겠지만 바쁜 일정이라도 이 탐방프로그램에는 꼭 시간들을 낼 만한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