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채식을 했었다.
단지 아버지의 친구가 일하시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집에 굴러들어오게 된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은 사람의 비위와 양심을 골고루 공격하는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을 읽고 나서 한 달 쯤은 채식을 흉내냈지만 몸에 밴 습관을 쉽게 벗어버리기가 힘들어 곧 잡식성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학대받는 식용 동물들의 실상을 이따금 인터넷에서 보게 되고 주변 친구들 중에 채식주의자(절대채식주의자는 아닐지라도)가 많은 탓에 나는 채식이라는 두 글자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내게 채식은 때때로 앓는 감기, 영원히 닿기 힘든 이상향, 또는 저 마음 깊은 곳의 양심의 소리 같은 것이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내 손으로 사서 보게 된 박정훈의 '잘먹고 잘 사는 법'은 그 옛날 '동물 해방'의 기억을 되살림과 동시에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새로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물 해방'이 유럽, 북미에서 사육되는 식용 동물의 비참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면, '잘먹고 잘 사는 법'은 우리 한국인의 밥상에 대한 문제제기여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다.
이 책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아, 아토피가 있는 우리 아이에게는 이러이런 음식을 먹여야겠군.' 하는 직접적인 식단 지침서로,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인간들의 식습관이 이렇게 자연과 명에 악영향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교양서로,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오래 살려면 이건 먹고 저건 먹지 말아야겠군.' 하는 실용서로......
나는 솔직히 거창한 사회적 의미보다는 그저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책을 집어들었던 것 같다. 오래 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소박하지(?) 않았다. 그 책을 읽고 나서 음식을 보는 눈이 너무나 엄격해져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회? 양식 횟감은 항생제 덩어리라구. 우유? 아냐아냐 우유 대신 두유먹어야 돼. 콜라? 탄산음료 먹으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내가 먹는 것은 물론 내 가족, 친구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대해서 노이로제에 가까운 경계심을 품는 사람이 돼 버렸다.
그러나 좋은 것을 먹고 안 좋은 것을 피하려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 안에서는 또 다른 생각들이 이어졌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인생에 어느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만이 의미있는 삶인가?'
'굶어죽는 사람도 널렸는데 내 가족만 잘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건 이기적인 거 아니야?'
'형편상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를 먹으면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은 많아.'
사실 나는 아직도 결론을 못 냈다. 항생제와 호르몬이 범벅된 우유에 유전자 변형 옥수수로 만든 씨리얼을 말아먹고 뛰어나가서 무료급식소에서 노숙자를 위해 밥을 푸는 후배와 임신 전에 자신과 남편의 몸의 '독을 빼겠다'며 비싼 유기농 녹즙을 석달 간 마셨고, 태어난 그 딸아이에게는 시중에서 파는 주스 한 모금, 아이스크림 한 입도 못 먹게 하는 선배...... 그런 극단적인 차이에 대해 '잘먹고 잘 사는 법' 안에서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이 사실은 단순히 먹을 것에 대한 고민만이 아님을 귀농학교에서 많은 강연과 실습을 통해 배우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배움과 고민의 선상에 놓여있다. 단, 이 책을 통해 '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라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된 점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 그것은 귀농학교 전에도, 후에도 내 귀농의 최대 화두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