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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귀농해야 하는가?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5-08 17:10     조회 : 3907    
우리는 왜 귀농해야 하는가?
                                        이병철(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


삶과 문명의 새로운 구조조정을 위하여

  최근 들어 귀농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농촌으로, 농업으로 돌아가고자 합니까? 도시의 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사회에서 탈락하여 다시 농촌으로 도피하려는 것인가요. 아니면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 위한 전환인가요. 그러면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올바른 귀농인지, 귀농이 갖는 시대적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귀농인지 먼저 생각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는 단지 경제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 산업사회와 물질문명에 기반한 삶 전체의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중심의 산업 구조조정을 넘어서 삶과 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건강한 삶,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인 셈입니다.

  귀농이란 무엇인가요. 귀농이란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거주지와 직장을 바꾸는 일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농촌, 농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와 직업을 바꾸는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생산양식을 새롭게 뒤바꾸는 일이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귀농이란 삶의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서 곧 우리의 지난 삶을 새롭게 구조조정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농촌으로, 농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농촌으로, 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우선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불안합니다. 물질적 풍요와 삶의 편리함, 그리고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갈수록 건강과 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생명경시 풍조와 환경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생존위기와 인간성 파괴라는 병리현상으로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스팔트, 시멘트 속에선 생명이 싹트지 못합니다. 거기엔 생명의 모태인 흙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모태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은 근본적인 것입니다. 경쟁주의와 물신주의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질환 등의 병리현사들이 만연하는 것은 생명의 근본인 흙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오늘날 도시 중심의 반자연적인 구조와 경쟁주의와 분열되고 파편화된 살이 갖는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그리고 그 토대인 도시문명, 산업문명의 위기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는 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잔의 물조차 안심하고 마실 수 없게 되었고 대기를 호흡하는 것도 마음 편히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환경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이제는 생명마저 존엄성이 철저히 유린된 채 한갓 상품으로만 취급되는 물질중심주의의 생명경시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추구해 오던 도시문명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화려함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질적 풍요로 대변되는 무명의 진보라는 것이 인간의 실존적 불안에 대해 어떠한 해답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지적처럼, 결국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유한한 자원의 낭비와 파괴적인 삶의 방식이 초래한 이 같은 위기는 이제 그 속에 사는 개인의 위기를 넘어 전 인류, 전 생명계의 위기로 재앙이 전면화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농촌, 농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같은 도시중심의 현대문명의 위기와 심각한 환경생태계의 위기로 인한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아 건강한 삶을 도모하며 나아가 새로운 대안 문명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지금 우리에게 귀농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는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는 식량위기에서 살아남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식량위기 시대의 생존을 위하여
 
    이제 식량위기는 결코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훗날의 걱정이 아닌 지금 바로 우리에게 닥쳐와 있는 가장 절박한 생존문제가 되었습니다. 식량위기는 환경생태계의 위기와 더불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재앙이 된 것입니다. 이미 세계적인 식량위기는 급격한 경작면적의 감소, 토양생산력이 상실, 농업생태계의 파괴, 식문화의 변화, 인구증가 등으로 갈수록 심화되어 왔으며 이제는 지구 온난화 등의 기상재난까지 겹쳐 더욱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엘니뇨현상 등에서 보듯이 빈발하는 기상이변과 재난은 최근 들어 해마다 연 6% 이상 증가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식량생산의 피해는 참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심화되고 있는 세계 식량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도가 25%(96년, 그나마 주식인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에도 못 미치는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에 대한 대비책이 거의 전무하다는 데에 우리 생존의 절박성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IMF 사태가 단순히 외화부족이라는 차원을 넘어 민족생존의 위기로 심화되는 원인은 이처럼 외국돈으로 식량을 사오지 않는 한 우리 목숨 줄을 당장 부지할 수 없다는 치명적이 약점 때문입니다. 그 비극적인 사례가 바로 휴전선 너머에서 지금도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북녘 동포들의 참상을 통해서 생생히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북녘 동포들의 비극은 휴전선 너머의 불행이 아니라 바로 내일 우리의 비극이고 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대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국 이 땅에서 식량의 자급도를 높이는 길뿐입니다. 세계적인 식량위기 속에서 그리고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설혹 식량을 사 올 수 있는 외환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안정적인 국민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식량위기 속에서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기아의 시대에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일임과 동시에 식량생산을 통해 식량자급도를 높임으로써 절박한 민족생존의 위기해소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흙과 함께 하는 자립적인 삶을 위하여

  우리의 농촌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된 일입니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이농으로 인해 지금 우리 농촌에는 제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한해 평균 이농자가 40만 명을 넘어섰고 이 같은 경향은 9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어 90년 이후의 이농자만 이미 200만 명을 넘었습니다. 1995년 현재 총인구는 4,479만 명인데, 이중 농가 인구는 총인구수 대비 10.8%(90년 15.5%)에 불과한 484만 명으로 인구 감소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농이 거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985년도에는 60세 이상의 비율이 13.8%이던 것이 94년도엔 25.3%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습니다. 농촌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농촌사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거의 떠나버려 영농후계 인력도 10% 정도에 불과한 상황임에도 그나마 남아있는 소수의 젊은이들조차 대부분이 농사의 보람과 가치를 상실한 채 실의와 좌절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농촌지역 마을의 심장인 학교는 학생들이 없어 폐교되고(91년~95년까지 5년 동안 농촌지역의 1,257개 학교가 폐교됨) 빈집과 묵혀버린 땅과 노인들만 늘어가는 가운데 마을공동체 또한 거의 대부분 해체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재앙은 산업사회를 통해 농업을 포기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말처럼 우리가 다시 살려면 분명히 농촌과 농업을 살려야만 합니다. ‘생명은 먹거리에 의해 유지되고 먹거리는 농업에 의해 유지된다. 생명들이 모여 있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점인 먹거리와 농업에 문제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라는 지적처럼 결국 농업, 농사가 바로서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과 사람들이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현자로 일컬어지던 인도의 P.R. 사카르는 산업문명 이후의 새로운 대안사회 모형을 제시하는 가운데, 균형 잡힌 사회의 배분을 위해서는 농업경제에 30%, 농산물 가공 농기계 등 농업관련 부분에 25%의 인구가 종사하여 적어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업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은 농업과 자연에 근거해 있으며 그리하여 땅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자립적인 삶과 그러한 문명체계만이 생존이 위기와 문명의 위기에 대한 대안임을 명백히 적시해 주는 것입니다.

상생과 순환의 문명을 위하여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위기가 자연을 파괴하고 폐기물을 양산하는 생활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면, 결국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물질가치 중심에서 생명가치 중심으로, 대립과 분열, 경쟁과 갈등의 구조에서 조화와 일치, 협동과 화해의 구조로, 쓰고 버리는 삶이 아니라 물건을 소중히 여기며 다시 쓰는 삶으로, 그래서 죽임과 단절의 문명에서 상생과 순환의 문명으로 새롭게 바꾸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상생과 순환의 가치관이 사회적 관계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간의 관계에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자연을 약탈하는 데 기반을 둔 반생명적인 산업문명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조화하는 유기순환적인 農적문명임이 자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촌은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귀농의 의미란 도시 산업문명 속에서 지치고 병든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식량위기 속에서 민족 생존을 위한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며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여 비료, 농약, 비닐 등으로 죽어가는 땅과 밥상을 살리는 길이고, 젊은이가 없어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농촌에 다시 신명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농촌이 산업사회에서 버림받은 땅, 천시 받고 외면당하는 천직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생명을 낳고 기르는 생명의 터전이자 생명산업으로서 본래의 의미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흙을 살리고, 개울을 살리며 풀벌레와 어울리는 상생ㅈ거인 생태질서 속에서 생명을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도시와 농촌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대안문명, 상생 순환의 농적문명을 창조해내는 것이 우리 자신의 건강한 삶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우리 아이들과 겨레와 인류의 건강한 내일을 준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귀농을 위하여

  날로 심화되는 산업문명의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와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자연적인 도시를 벗어나 농촌에서 흙과 더불어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는 젊은이들입니다. 따라서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 귀농의 의미는 단순히 농촌에서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자연친화적, 생태적으로 새롭게 바꾼다는 의미로서 곧 새로운 삶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촌에 살면서도 도시에서와 똑같은 생활양식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바른 위미의 귀농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시멘트, 아스팔트에 적합한 삶이 아니라 흙에 적합한 삶을 추구하지 못한다면 귀농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농촌에 돌아와 사는 삶이 가치 있고 보람된 것이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귀농을 통해서 추구하는 새로운 삶이 그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함은 물론입니다. 건강한 귀농,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귀농을 위한 조건과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농촌에서 튼튼히 뿌리내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농사를 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농사짓는 방법, 살 집과 살림살이 장만, 자녀교육문제,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 농촌의 문화생활 등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삶 전체가 새로운 과제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여러 조건, 과제들 중에서 생계의 자립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귀농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흙을 살리는 농사, 유기 순환의 생명농업

    귀농자에게 농사란 적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립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귀농의 일차적 과제는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있습니다. 모든 농업은 본질적으로 흙을 바탕으로 성립합니다. 때문에 흙을 살리는 농사만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상업적 목적을 위해 흙을 죽이고 자연을 수탈하는 화학농법, 살생농법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순환, 공존하면서 흙의 생명력을 살려서 건강한 농산물, 생명의 먹거리를 가꾸는 유기순환의 생명농법이어야 합니다. 절기에 따라 씨 뿌리고 우주의 운행에 맞춰 호흡하면서 생명의 약식을 기르고 가꾸는 삶을 통해 흙을 살리고 밥상을 살리며 이를 바탕으로 모두를 살리는 공생의 농사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생순환의 생태문명이란 이처럼 생명의 농업을 중심으로 한 문명체계이며 그러한 농업관을 실현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단순 소박한 살림살이, 재생과 순환의 원리에 따른 삶

  자연을 거스르며 쓰고 버리는 소비 중심의 도시적인 생활양식이 환경생태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소비적인 삶은 지속될 수 없는 삶입니다.

  반대로 단순 소박한 삶은 지속가능한 삶일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위한 유일한 선택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농촌의 살림살이는 기본적인 식, 의, 주의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 문화 등 전 과정에서 단순 소박한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땅에 기반한 삶만이 단순 소박한 자급자족의 삶을 실현해낼 수 있으며 물질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자유롭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사용, 물과 공기의 오염방지, 천연자원의 보존 등을 포함한 물질의 생산과 소비 등 생활의 전 과정이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위한 재생과 순환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테면 단순히 쓰레기 양을 줄이는 생활양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도시생활에서 음식 찌꺼기는 심각한 오염원이지만 재생순환의 원리에 따른 농가 살림살이에서는 다른 생명을 위한 훌륭한 먹이가 되기 때문에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을 위한 밑받침이 됩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소비수준을 낮추어 소박하게 살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기술, 적정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도구를 효율적으로 결합시켜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안 쓰고, 덜 쓰고, 고쳐 쓰고, 만들어 쓴다는 원칙아래서 그런 삶이 가져다주는 보람을 즐기면서 생태적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생태적 살림집, 자연친화적인 주거환경

  어떤 집에서 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살림집의 형태와 주거환경이 갖는 중요성은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입니다. 살림집은 생존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시멘트, 콘크리트 화학 소재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집들은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건강한 생활공간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농촌의 살림집은 주변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한 삶에 바탕을 둔 자연소재 중심의 생태적 건축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안에 사는 사람과 밖에 있는 자연이 서로 소통하고 호흡하는 집, 사람을 포근히 감싸주면서 동시에 자연 속에 열려 있는 가옥구조야말로 농가 살림집으로 적합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므로 흙, 나무, 돌 등 자연 소재로 지어진 전통 농가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생태기술, 적정기술을 도입하여 단순하되 편리하고, 아늑하되, 넉넉하며, 주변 자연생태 조건과 어울리는 농가 살림집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자녀교육, 자연과 함께 하는 대안학교

  지금까지 귀농을 가장 어렵게 하는 현실적인 장애의 하나가 자녀교육 문제였습니다. 참으로 수많은 농민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농촌을 떠나왔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 중에도 많은 이들이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교육을 위해서도 농촌으로, 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불행히도 현행제도교육을 통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교육할 수 없습니다. 그 한계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병들고 시들어가고 있습니까? 생명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외경을 배우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원리를 체험하며 맑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자연에 더 가까운 환경과 학습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모태인 자연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교사라고 하듯이 환경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적 학습과 노작 학습이 함께 이루어지며 전인적 교육을 목표로 하여 삶에 필요한 실제적 지식을 배우고 일깨우는 대안 교육은 기본적으로 농촌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생태교육을 중심으로 한 대안학교와 생태마을 건설은 귀농운동에서 다뤄야 할 대안운동의 중점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농 직거래, 얼굴을 마주하는 도․농공동체

  사실상 완전히 자급자족이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형태로든 화폐소득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고 남은 것을 내다 팔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판매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화폐소득이라는 면에서 볼 때 1년 농사의 풍․흉이란 것은 사실상 판매가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안정적인 생산과 더불어 농산물 가격을 정당하게 보장받아 농가 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별도의 판매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일반 시장을 통해 판매를 하면 아무리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어렵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했다 해도 제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시장에서는 일반 농산물도 대부분 제값을 받고 있지 못한 형편이며, 더구나 가격의 진폭이 너무 커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여기에 의존해서는 농가 살림을 꾸려가기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능한 한 생활협동조합이나 ‘한살림’ 같은 소비자 공동체와 연대하여 직거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판매형태라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런 소비자 공동체는 단순히 생산물 직거래에 머물지 않고 삶을 함께 나누는 도․농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비자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생산자와 그런 생산자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소비자와의 연대를 바탕으로 한 도․농 직거래, 도․농공동체 운동이 귀농운동의 한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말이나 휴가, 방학 등을 통해 생산지를 방문하여 농촌의 일손도 돕고, 계절 생태학교에 참여하는 도․농공동체 간의 교류는 농산물의 제값 받기뿐만 아니라 생태적 삶의 실현을 위한 기본 조건이기도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