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가치와 자립적 삶을 위한 귀농교육의 산실, 실상사 귀농학교가 10여년 쌓인 경험을 토대로 재도약을 위한 20년차 첫발을 내딛는다.

 

1999년 IMF여파로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맬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향과 농촌을 되찾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시작된 귀농운동은, 남원 지리산 실상사에서 귀농학교를 설립 운영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식인들의 호사로운 움직임으로 보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귀농운동본부의 이병철 본부장과 법난사태를 수습하고 실상사 주지로 내려와 계시던 도법스님의 만남은 어쩌면 귀농운동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치체계를 부여하는 중요한 계기의 시작점이라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신라시대 구산선문 최초 사찰이라는 직함이 무색할 만큼 당시 실상사는 사부대중 모두에게 관심 밖의 절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어쩌면 도법스님 조차도 사부대중의 이목을 벗어나 조용히 은거하고픈 심정으로 실상사를 찾은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스님에게 절의 땅이 귀농학교 학생들의 실습지가 된다면 농촌 삶을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배우는 실질적인 귀농교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이병철 본부장의 제안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도전처럼 스님은 선뜻 그 제안을 받는다.

이미 주민들의 농지로 쓰이는 절의 땅을 다시 회수하기란 쉽지 않은 법, 처음엔 마찰과 비난이 있었지만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게 아니라 소중한 뜻이 있음을 안 주민들도 받아들여 마침내 ‘실상사 농장’이 탄생하게 된다.
농장을 귀농학교의 실습지로 하기 위해서는 농장을 지키는 농꾼이 있어야 하고 그 농꾼들이 곧바로 귀농학교 교사가 되는 것은 필수적인 일, 이로 인해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농장의 일꾼이 되고자 속속 모인 도시민들이 결국 산내 귀농 1세대인 셈이다. 아무튼 지리산 자락 산내는 이후 10년간 250여명이라는 대식구가 정착한 명실상부한 귀농 1번지로 자리 잡게 된다.

 

초기 귀농학교는 3개월 합숙 과정인데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현장이었다. 농장의 한 쪽에 건물도 아닌 비닐하우스를 짓고 추위와 더위를 막는 겉옷을 입힌 뒤, 학생 모두가 함께 자고 생활했다. 그런데 많은 동문들은 그때가 참 좋았다고 이구동성이다. 동기들이 형제와 같았다는 의미는 지금도 그 하우스 시대 동문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3년여를 지낸 하우스 시대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화를 남기고 사라진다. 6기 학생들이 교육을 마친 직후 비가 오는 날, 남아있던 여학생이 촛불을 켠 채 우수에 젖어 잠시 방심한 사이 촛불이 쓰러져 불이 나고 만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학교 건물인 비닐하우스는 다 타버리고 그와 함께 귀농학교 초기 자료들도 모두 사라졌다.
국립공원 내이면서 절대 농지인 곳에 숙박형 교육현장이 있다는 것에 내심 불만이면서 불안했던 면사무소에서는 이 기회에 학교 이전을 제안했다. 때마침 실상사 앞산 쪽에 남원시의 지원으로 생태농업교육장을 짓고 있었던 터라 앞당겨 학교 이전을 결정, 7기부터 어엿한 황토건물의 학사 시대가 시작되었다.

 

귀농학교 10년은 시대의 반영이다. 초기에는 IMF의 한파에 떠밀린 학생들이 많았다. 당연히 몸과 맘이 지친 상태여서 교육의 열기 보다는 분란이 잦았다. 하지만 그런 분란 속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을 찾아갔다. 10기를 전후해서 귀농학교는 안정세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2, 3년간의 학생들은 스스로 귀농의지를 다지고 온 상태였으며, 교육 내용도 축적된 경험들로 인해서 최 절정기였다. 당시 사회의 안정과 맞물린다. 하지만 지난 2,3년간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대가 물질만능과 경쟁, 이기심으로 가득 한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이나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귀농교육이 아니라 휴가 개념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학교 운영 또한 교사들의 잦은 교체나 공간 활용 등의 불편함이 맞물리면서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도법스님께서 탁발순례를 마치고 회향, 실상사 귀농학교 교장 직을 내놓으시고 실습장인 농장의 농꾼으로 들어 앉아 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시기로 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새로운 체제의 중심으로 초대 교감이자 귀농학교 1기인 이해경 지리산친환경영농조합법인 이사장을 교장으로 모셨다. 아울러 귀농학교총동문회와 남원시 도시민유치협의회와 함께 ‘다시 귀농으로’란 주제로 20년 차 첫걸음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11년째를 맞는 실상사 귀농학교는 도시민을 위한 불교귀농학교, 장기 체류형 현장귀농학교와 더불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귀농을 위한 3대 주요 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간 35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하여, 현재 60% 가까운 귀농으로 생태자립적인 농촌공동체를 위한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귀농학교가 있는 산내면에는 귀농학교 출신의 귀농인이 아니면 행세를 못한다는 야릇한 소문이 나 돌 정도다. 자발적 귀농인 보다는 귀농학교 출신으로 정착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귀농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된다. 교육기간 중이거나 졸업 후에 맺어진 쌍이 많다는 사실 하나, 그렇게 맺어지면 반드시 귀농한다는 사실 둘, 최근 졸업 기수인 21기를 제외하고 전 기수에 반드시 여학생이 입교한다는 것이다. 특히 귀농학교의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훨씬 진취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두 달간 생활하는 교육기간 중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0시에 잔다는 것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사항이다. 도시에서 올빼미 생활을 많이 한 터라 시골생활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게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교육장에서 실습장까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30여분 걷는 것부터 곤혹스러워 한다. 도시에서는 걸을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귀농학교 일과는 새벽 5시에 일어나 100대 절 명상과 몸 풀기를 한 뒤 아침식사를 하고 수업준비를 한다. 수업은 이론 수업과 실습, 현장교육 이 있는데 현장교육은 외부 이동 교육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 교육내용 조차 새롭게 바뀐다.

 

첫째, 귀농교육은 농사짓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만큼 자신의 몸과 마음, 동료와의 협동, 그리고 마을 주민과의 공동체 만들기에 집중한다.
기본 일정은 농촌생활의 일과와 맞물려 진행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몸을 풀고 6시부터 실습장으로 나가, 실습활동을 한다. 8시 반에 준비해온 아침식사를 하고 11시 반까지 2시간 오전 수업이나 실습을 한다. 점심식사를 한 뒤에는 3시 까지 휴식에 가까운 활동을 한다. 동문이나 마을 분들과 담소나 경험담을 듣거나 방문하는 시간이다. 3시부터 5시 반까지 오후 수업이나 실습을 한다. 6시 까지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몸을 씻은 뒤 7시 반부터 저녁 수업을 한다. 저녁수업은 명상, 풍물, 몸 다루기다. 몸 다루기는 침 뜸을 배우는 시간이다. 9시 20분까지 마친 뒤 100대 절 명상을 하고 잠든다. 100대 절 명상은 도법스님께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실 때 매일 아침저녁으로 순례자들과 하던 절 명상으로 절 하나에 한 가지 서원을 한다. 약 40분간 이뤄진다.
명상, 100대 절 명상, 산책 등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귀농의지를 키운다. 하루 일과를 점검하고 졸업 후 진로를 탐색하며 일 년 후 내 모습, 10년 후 내 모습을 그려본다. 학생들은 졸업 시에 졸업 작품을 내게 된다. 이 졸업 작품은 동료들과 한 조를 이뤄 준비한다. 협동을 배우는 과정이다.
학생들은 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의 일정이나 주민활동에 참여한다. 적어도 두 달 간은 마을 주민이 된다. 교육교사들과의 시간 외에도 주민 농사활동을 통해 현장감을 익힌다.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배우고 익힌다.

 

둘째, 귀농교육이 단지 입소한 학생들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이루어지도록 한다. 마을 주민에게는 마을대학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다. 귀농학교 학생들만의 수업이 아닌 공개강좌를 준비한다. 주민들을 위한 시간인 만큼 일과를 마친 저녁시간에 사랑방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다. 소득증대와 관련 있는 강좌도 준비한다.

 

셋째, 귀농교육이 일방적인 전달과정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학생 스스로 교육 목표를 설정하고 과제를 선정해 졸업 작품 및 졸업 논문을 제출토록 한다. 졸업 논문은 지도교사를 선정해 주간별로 틈틈이 완성해 간다. 지도교사는 교육 교사뿐만 아니라 동문이나 주민도 가능하다. 내용 또한 농사일부터 마을 대소사나 신변기록 까지 가능하지만 반드시 지도교사와 함께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귀농학교 마지막 주간에 이뤄지던 현장학습은 현장귀농학교로 이관하여 졸업 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하거나 귀농인턴제도를 통해 실습장을 중심으로 숙박형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실상사 귀농학교 학생들은 교육기간 중 최소 한 번은 지리산 산행을 하게 된다. 부지런한 학생은 휴무일 마다 오르기도 하지만. 그 중 백미는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이다. 성삼재에서 시작, 노고단을 거쳐 벽소령에서 1박하고 장터목에서 다시 1박 한 뒤 천왕봉을 다녀와 하산하는 이 산행은 귀농학교 학생이면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말 몸이 불편해 다녀올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 산행을 모든 동문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꼽는 이유는 자연에 대한 깊은 감사와 동료애, 그리고 귀농학교를 마치는 마음의 정리까지 짧은 시간에 갖게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실습장 가는 30여분 길도 힘들어하던 처음 입소 시의 자신의 모습과 2박3일 종주를 하는 자신의 대견한 모습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희열 때문이다. 실상사 귀농학교는 성인이 되어 다녀 온 학교 중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학교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런 자부심을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실상사 귀농학교에 입교하시기를 진심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