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모임에서는 ‘가을’을 주제로 한 시를 나누었습니다.
가을은 식량을 거두어들이고 결실을 보는 때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변화가 큰 계절이기도 하지요. 산딸기며 머루며 많은 것을 내어 주던 나무, 들판, 숲에는 여백의 공간이 점점 늘어갑니다. 물론 이것 역시 새로운 씨앗, 열매, 생명이 순환하기 위한 잠시 동안의 멈춤이지만요.
그 옛날 가을은 먹을 것이 없어지기에 추운 겨울을 지낼 소박한 것들을 나누는, 가족·이웃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때이기도 하였습니다.
9월의 마지막 주 진행한 시모임에서는 시와 함께 나의 삶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슬며시 기울여보는, 돈독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때, 나의 주변을-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다음 모임은 10월 31일(화) 늦은 7시 ‘동물’을 주제로 한 시를 담아와 이야기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관심 바라며, 함께 나눈 따스함 묻어나는 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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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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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로널드 스튜어트 토머스
이런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바람 없는 날, 얼마 되지 않는
마지막 잎새들 나무의 어깨를 장식하고
가지 끝동을 황금으로 치장합니다.
잔디밭엔 새 한 마리.
잔디밭이 거울인 양 깃털 고릅니다.
나는 잠시 하던 일 멈추고 고개를 듭니다.
이 환한 풍경 마음으로 사진 찍어
긴긴 겨울날
추운 마음을 감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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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서
김승희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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