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방식
새만금 간척사업, 쌍용자동차 문제,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성주의 사드배치 등 사회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갈등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어떤 시각과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갈등의 현장에서 깊은 고민을 해왔던 한 참여자분께서 이와 관련된 본인의 질문을 꺼내놓으셨습니다.
질문자: 우리가 생명을 죽이는 일이나 평화를 깨는 일을 막는 것, 반생명적이거나 생명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도법스님: 싸움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봐.
질문자: 생명을 지키는 것, 반생명적인 일을 막는 것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도법스님: 그래야 효과가 있다고 봐. 나는 그런 것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은 사람이야. 약자 편에 서야 하는데 화쟁이라는 이름으로 약자 편에 안 서고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비난의 내용이지. 그런데 일을 해 보면 편들어 싸우는 것보다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이 약자에게 도움이 돼요. 우선은 편들어 싸우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리면 괜찮은데 문제가 안 풀릴 경우가 있단 말이야. 한 번 보세요. 강정, 밀양, 대추리 다 봐요. 문제가 안 풀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렇게 싸우는 방식으로라도 문제가 잘 풀리면 다행이겠는데 대부분 끝내 잘 안 풀려요. 안 풀린 현실을 보면 편들어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어요. 문제를 풀어내는 것만이 약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문제를 투철하게 다루되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필요한 거죠. 평화적으로 했을 때 문제를 푸는 일이 훨씬 더 가능하다고 봐요.
질문자: 마지막까지 갔는데도 안 돼서 싸운 거지 처음부터 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결국, 마지막에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것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는데 스님께서 다르게 말씀하시니까 납득이 잘 안 가요.
도법스님: 일단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지. 내 경험으로는 분노, 증오, 투쟁 이런 관점과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하고 연민, 평화적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고 봐요. 우리는 자꾸 평화적으로 하면 문제를 투철하게 안 다룬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투쟁해야 문제를 투철히 다룬다고 생각하지.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평화적으로 하더라도 당연히 문제는 투철히 다뤄야지.
오래된 한 투쟁의 현장에 갔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종합해서 단순화시키면 결론은 간단해요. 기업 나쁘다, 정부 잘못한다. 고로 강력하게 투쟁해서 우리가 뜻한 바를 쟁취해야 한다. 그동안 이미 어마어마하게 싸워왔잖아요. 그런데도 밀리고 밀려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어요. 그것뿐인가?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대중들에게는 잊혀가. 동시에 투쟁 동력도 거의 회생 불가능한 무력한 상황에 와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또 강력히 투쟁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그것과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해. 조금이라도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싸한 거야. 내가 그 장면을 보고 오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싸운다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미 온 사회가 편들어 싸워 온 거잖아. 그래서 나는 여기 한 줄 더 보탠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간디를 생각하면 가장 좋다고 봐요.
질문자: 저도 간디를 존경하지만, 간디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법스님: 간디는 누구보다 투철하게 싸운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평화적으로 싸웠단 말이지.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저항하고 투쟁도 하게 되죠. 하지만 부작용이나 후유증을 줄이면서 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지. 불의한 현실이 발생했을 때 저항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아닌 거죠. 부당한 일이 생겼는데 문제 삼지 말자거나 적당히 얼버무리자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야. 다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을 때 대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공동체로 가는데 훨씬 더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간디가 그런 방식으로 저항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 후유증하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분노와 증오로 싸웠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비교해보세요. 간디의 방식이 문제가 훨씬 덜 합니다.
일반적으로 분노 없이는 싸움이 안 되고 동력이 안 생긴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평화적으로 한다, 비폭력적으로 한다고 하면 투철하게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간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투철하게 하되 어떤 관점과 어떤 태도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더 좋을까 하는 얘기인 거죠. … 때로는 절충과 타협이 필요한 거잖아. 그런데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100%가 아니면 접는 형태로 가버리는 거죠.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너무 경직되어 있어요. 주장을 완전히 관철해서 상대를 굴복시키지 아니하면 다른 것은 다 소용없다는 식의 생각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유연하고 성숙하게. 그래서 좀 더 실용적으로 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 제기인 거예요.
질문자: 늘 국가폭력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약자들이 싸우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법스님: 사람들은 칼로 무 자르듯이 일이 될 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 때문에 한국사회가 너무 경직되어 있기도 하니까 그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실, 또는 바람직한 내용을 가지고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를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고 다루는 풍토, 관성, 체질이 문제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편 논리 때문에 진실은 물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나는 회색분자로 선언했고, ‘당신 행보가 뭐냐’고 물으면 ‘갈지(之)자 행보니까 아무데라도 간다’고 말합니다. 합리적으로 진실을 묻고 진실을 제대로 다루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거기에 희망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는 만들 수 없다고 봅니다.
정리_ 현미선 생명평화대학 활동가
생명평화대학 실무자로 있으며, 대학 식구들과 티격태격 지지고 볶으며 재미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