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철길>
_신경림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 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벌 북쪽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세밑 사흘 늦어 배달되는 신문을 보면서
농사꾼 이철웅씨는 남방한계선 근처 자연꿀따기는
올해부터는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한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인근
버렸던 땅값 오르리라며 자식들 신바람 났지만
통일도 돈 가지고 하는 놀음인 것이 그는 슬프다
그에게서는 금강산 가는 철길뿐 아니라
서울 가는 버스길도 이제 끊겼다.
視詩한 한마디!
분단이 철길을 끊었다면 돈은 사람과의 관계, 세상의 길을 끊고 있다는 시인의 성찰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대놓고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70년간 끊어진 분단의 고통을 고작 돈으로만 치환시키는 마음이 혹 세상을 물들일까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어릴 적 동무와 손잡고 봄 소풍 가듯이 금강산 가는 길은 그렇게 순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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