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占)을 권하는 세상

                                                                          - 중묵스님

예전에 살았던 절 인근에서 묵묵하게 농사만 짓던 노총각이 찾아왔다. 햇 중 시절부터 안면이 있어 산책길에 만나면 농담도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평소에는 절에 일체 발걸음을 하지 않던 사람이어서 새로 옮긴 낮선 절에까지 찾아온 것은 뜻 밖이었다. 절 예절에는 전혀 문외한이라 어색한 몸짓으로 내 앞에 앉았다. 이러저러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고 나서야 자신이 온 이유를 어렵게 털어 놓는다.

“마땅히 상의 드릴 사람이 없어서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터를 구입해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그 터가 괜찮은지 스님께서 한번 봐주셨으면 해서요.”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만나는 여자가 있는데 결혼을 할까 합니다. 언제 한번 같이 올 테니, 스님께서 우리 둘의 사주를 봐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나도 진지한 노총각의 어이없는 청탁(請託)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여러 가지 이유로 스님들이 관상과 사주, 풍수 등의 점술(占術)에 일가견(一家見)이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너무도 오랜 세월 속에서 형성되어온 ‘짐작’이라 아예 그런 길로 가는 스님들도 쉽게 볼 수 가 있다. 세상의 흐름이 빠르고 예측불허의 참으로 위태로운 인생이기에 흉(兇)과 화(禍)를 피하고 길(吉)과 복(福)을 취하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풍수나 관상 등의 점에 의지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인류 역사를 보면 나라와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점(占)에 의지해 왔던 세월이 결코 짧지 않고,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인생에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점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천신만고의 삼수(三修) 끝에 꿈을 이루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도 그 꿈을 성취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조상의 묘를 이장한 것이 공공연하게 얘기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운명은 그 어떤 원죄나 타고난 사주, 관상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행위일 뿐이다. 즉 순간 순간 문제와 상황에 직면했을때 내가 보이는 행동따라(身), 내가 말하는 것에 따라(口), 내가 생각하는 것에 따라(意) 좌우된다는 것이 선지식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점술이 족집게처럼 정확하던 정확하지 않던, 그런 것에 의지해 삶의 문제를 다뤄가는 한 우리들 삶의 내용들은 더 아름다워지고 더 품위 있고, 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우리 삶 속에서 쉼없이 부딪치게 되는 흉(兇)과 화(禍)를 어떻게든 피하려는 노력 보다는, 그 고통과 불행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정직한 대응이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시작이 아닐까 한다.

점을 권하는 세상이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나의 삶과 세상.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 나든지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오직 그것만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출처:인드라망소식지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