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종일 여의도에 있는 어느 사무실에 나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돌아왔다.
출근길부터 예사롭지 않아 전철 환승역에서 조금 무리하게 차에 오르려다가 가방이 끼는 작은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곧 문이 다시 열려 무사할 수 있었지만, 정작 주변사람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나의 ‘사고’를 활용하여 재빨리 전철에 올라타고 있었다. 경황이 없는 중에 시작된 오전 업무는 미리 정해서 식당에 보낸 점심 메뉴와 함께 11시 40분이 되자마자 중단되었다. 점심을 마치고 당연한 듯이 들르는 커피전문점의 소란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졸린 눈을 감추지 못하고 시작한 오후 업무는 그나마 6시 정도까지 확보되는 시간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지만, 서둘러 자신의 몫을 마무리하고 일어서는 주변 동료들의 한심해하는 눈초리 속에서 그 여유마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맨 늦게까지 남은 ‘무능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일을 마치고 다시 전철에 올라 집에 돌아와서 밀린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만난 적이 있을까? 아침에는 지난 밤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벌인 입씨름 때문인지 내내 마음이 어둡고 두엄자리 같았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있고, 전철에 오른 이후부터의 시간 속에서는 자신의 마음과 마주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저 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을 하다가 밥과 커피를 허겁지겁 몸속으로 집어넣었고 졸리고 피곤한 눈으로 일하다가 돌아왔을 뿐이다.

물론 대학에서 일하는 내게 이런 하루는 조금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대개는 느지막하게  집근처 단골 커피점에 들러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맞을까 하는 상념에 빠져 있다가 강의하러 가고 아니면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나러 가곤 한다. 그런데도 그런 비교적 여유로운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불러내기가 언제부턴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저 중독처럼 커피를 마시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참을 수 없는 나른함 속에서 자신에 대한 작은 분노로 몸부림치기도 한다.

연초에 입적하신 은사 가산 지관스님은 그런 내게 언젠가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눈앞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 집중해 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고, 그 분 스스로도 이판과 사판의 세계를 나누지 않고 그 순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망설이지 않는 강단으로 사표를 보이시기도 했다.

 

‘사바세계에 연꽃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적멸의 세계 법신 드러내고자’ 하셨던 그 분 음성이 지금 이 순간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오늘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회한과 오늘 해야 했던 일을 억지로 하면서 낭비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봄이 서재 창문을 넘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자신의 마음과 만나려 하기 전에 당장 이 순간의 침묵과 날카롭게 이어져 있을 큰스님의 적멸 속으로 보낼 내 마음을 불러내고 싶어지는 저녁이다. 가랑비가 오려는지 가벼운 바람이 함께 넘어오고 있다.

  

박병기
인드라망 전문위원
(한국교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