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함박눈이 왔습니다. 어느새 새하얀 색으로 뒤덮인 산과 마을을 보니, 참으로 ‘새해’에 어울리는 풍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시중에 나오는 연하장 표지 그림처럼 말입니다. 하얗게 덮인 눈 속에 욕심도, 화냄도, 어리석음도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깨끗한 것도 때묻은 것도 눈 속에 묻히면 다 평등해지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이렇게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마음이 썩 편치는 않습니다.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는 소식은 우리 기분을 어둡게 만듭니다. 이번에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하여 죽어 간 사람들이 무려 5천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어른들의 무자비한 총과 폭탄에 맞아 무고하게 죽어 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더라도, 기아에 시달리는 오지의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나라밖만 보지 않더라도, 우리네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심은 돌아보지 않고 정당간의 갈등으로 몸싸움도 불사하는 정계도 그렇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강도, 살인, 폭력 사건들도 우리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그리고, 안 그래도 가늘어진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만 근근히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웃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외적인 고난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얼마나 큰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스트레스, 불안, 우울, 분노, 좌절… 이 모든 것이 내 마음 안에서 요동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고 더욱 바삐 외부 현상에 스스로를 내몰기도 하고, 알콜이나 약물로 도망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도, 정치인들의 싸움도, 흉악한 사건과 사고도, 현대인들의 바쁜 생활도, 모두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 것을 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우리는 싸우고 갈등하고 전쟁하도록 마음이 어느새 조건화 되어져 왔습니다.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을 얕보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 교육도 이것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느 날 제게 상담을 받으러 온 보살의 중학생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격도 듬직하니 큰 중3짜리 학생이었는데, 장차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또래 아이들이 대답하듯이 과학자, 교수, 연예인, 발명가 등등 이런 것이 아니었고, 그 아이의 대답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말하는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한번 더 깜짝 놀랐었습니다. 한창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세계를 찾고, 진로와 직업을 고민해야 할 나이에 이른 아이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알고 보았더니, 그 아이의 대답은 부모가 수시로 아이한테 주입한 말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느새 아이의 마음속에 내재화되어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내 것을 좀 더 많이 가지지 못했을 때 마음 한켠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욕망을 채우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분노로 인하여, 마치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러한 것처럼 믿고는 자신의 것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서슴지 않고 뺏어 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일어나고, 확대시켜 보면 나라사이에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도 알고 보면 인간의 욕망 채우기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인한 분노의 집약체일 것입니다. 이렇게 욕망과 분노는 고통의 수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욕망과 분노는 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고 나와 남을 괴롭히는 것일까요. 바로 인간의 무지 때문입니다. 즉, 나와 남이 서로 다르지 않고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것을 조금 더 가지면 어느 누군가의 것은 조금 더 적어집니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자체가 한 덩어리라서, 내 탐욕을 더 많이 채우면 다른 사람의 양은 상대적으로 더 적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과학에서 말하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고 그 이전부터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우리가 모르고 살아갈 뿐, 이 세상은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상의상관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하나의 거대한 인드라망처럼, 구슬 하나가 떨려도 전체에 울림이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속에 확고히 깨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갖게 되면, 내가 몸으로, 입으로, 뜻으로 짓는 모든 행위들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가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진리를 믿게 됩니다. 이런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함부로 말하고 생각하며 행동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가 대중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自利利他요, 利吾自慧로다”.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동시에 나에게 지혜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지금 여러 모로 세상살이가 어렵고 고단한 때입니다. 이럴 때가 바로 세상이 밝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진흙이 없다면 연꽃이 피어나지 않듯이, 괴로움이 없다면 지혜도 생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나도 힘든데, 남을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 의지하고 도울 때입니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마음을 열고 타인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는 노력 하나가, 인드라망의 작은 구슬이 되어 이 세상 전체로 밝고 선한 기운이 퍼져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새해 아침, 부처님 전에서 가져보는 저의 소망입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가족 여러분,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