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 내린 눈이 따스한 햇살에 녹아들고 있는 2월 한낮입니다.
겨울에서 봄 사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시간 같지만 우리네 삶에선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계절 같습니다.

 

제가 12년 전 실상사에 처음 내려가던 날도 오늘처럼 쌀쌀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실상사 화림원 올라가는 길옆 밭에선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지금은 출가를 해 스님이 된 찻집 아낙이 머리에 희끗 희끗 재를 묻히고 저를 맞아 주던 기억이 납니다.
봄 농사 준비로 불을 놓았나 싶어 물어 봤더니 '장수 노스님' 다비식을 했다고 합니다.
장수 스님은 대표스님 말씀 중 ‘공동체가 왜 필요한가?’ 라는 주제의 이야기 속에 가끔 등장하시는 실상사에 계시다 돌아가신 노스님 이십니다.
모든 것이 살아나는 봄날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또한 끝은 또 따른 시작과 연결됨을 생각하게 하는 오래전 기억입니다.

 

인드라망도 그사이 집들이를 했습니다. 강원도 횡성에서 땅 끝 마을 해남까지, 먼 곳 마다 않고 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지신밟기는 확실히 된 듯합니다. 집들이의 풍성함과 활기참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 졌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지난일은 다 아름답다고...
저 또한 가끔은 부족한 제가 소임을 맡고 있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 졸이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등지는 일이 생길 때는 밤잠을 설친 일도 많았습니다. 인드라망의 목표가 지금의 삶의 태도와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자, 자기수행과 사회실현을 통해 경쟁과 파괴의 문명을 생명평화 문명으로 바꿔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경쟁에 익숙한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하는 일들도 낯선 일이 대부분이었지요. 이리저리 비틀거리기도 하고, 밤길가다 돌부리에 넘어지듯이 무릎 깨진 일도 다반사였죠. 그래도 열두 살이 된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기특하고 참하게 자란 것 같아 흐뭇합니다.
부족하나마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것도 고마운 님들의 든든한 격려와 비판, 참여와 후원이라는 자양분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2009년을 임기로 사무처장 소임을 놓았습니다.
부족함 많은 사람을 묵묵히 믿고 지켜봐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새로 소임을 맡는 분들께도 변함없는 마음 부탁드립니다.

 

올해 인드라망 동안거 주제가 '낮추고 나누고 비우자'였습니다.
혼탁하고 빡빡한 세상에서 우리를 '맑음과 훈훈함' 으로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인드라망 가족들과 이 주제를 '화두' 삼아 올 한해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