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의 두루미 가족을 보며

지난 일요일 서울 경인 교사불자회 법우들과 함께 철원 평야 비무장지대를 다녀왔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추운 곳으로 돌아가는 겨울새들, 특히 두루미를 볼 수 있다는 도연스님의 유혹(?)에 기꺼이 ‘53선지식을 찾아서’ 떠나는 3월의 구도법회를 철원평야에서 하게 된 것이다. 3월의 선지식 법사스님으로 모신 도연스님은 철원 산기슭의 낡은 콘테이너에서 수행을 하며 온몸을 던져 새들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환경지킴이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는 것은 스님의 체험을 그대로 전수받는 ‘참살이’의 법문이라 그 기대와 감동이 남달랐다. 
“환경이 나빠지면 식물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새와 동물은 단번에 사라집니다. 야생동물이 사라지면 사람도 살 수 없어요. 야생동물은 우리가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야할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나와 이웃과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지요. 상처받아 실의에 빠진 사람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새를 보고 희망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면, 새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요. 새를 탐조할 때는 큰 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뛰어다니면 새가 불안해합니다. 뭘 던지는 것도 안돼요. 새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새들에겐 위협이 됩니다.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도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건 더욱 안되겠지요? 새들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요. 그에 비해 우리는 어때요? 너무 많이 갖고 있진 않나요?...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만 갖는 것도 환경을 생각하는 거랍니다.... 저기 두루미 가족이 보이죠? 가운데 있는 게 새끼고 왼쪽이 어미, 오른 쪽이 아빠새입니다. 두루미는 꼭 새끼를 가운데 두고 보호하며 함께 움직이지요. 두루미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공룡의 후예라는 거 다 알고 있겠지요?”
우아한 자태로 성큼성큼 논두렁을 걷고 있는 두루미 가족을 생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면서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그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말을 잃은 채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껏 새에 대하여 야생동물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였던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오만과 편견 속에서 근시안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을 되돌아 보며 ‘자연과 생명과 나’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무서워한다. 내 생명에 이를 견주어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법구경(法句經)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생명의 경외자(敬畏者)로서 삼라만상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해야한다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한 가르침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든다. 그러기에 인간이 지켜야할 계율 그 첫 번째로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주심이 아니었던가. 인드라망으로 얽힌 자연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연민으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삶을 살아가라 했거늘....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들 생명의 근원은 자연인데 우리는 그 자연을 필요에 따라서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망가뜨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자연 속에 깃든 온갖 종류의 생명체에 대한 간단없는 살육을 자행하고 있으면서도 죄의식도 잘못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에 서슴없이 북한산에 터널을 뚫고, 천성산을 파헤치고, 새만금 바닷길을 막고, 대운하를 파겠다고 바람잡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헤프게 낭비하며 쓰고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자신이 변해야만 내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며 자연파괴를 막고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나는 왜 여태 몰랐던 것일까.
“새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에 비해 우리는 어때요?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진 않나요? 너무 많이 쓰고 있지 않나요? 남의 눈치 보느라 배기량 큰 차를 타고 다니지 않나요? 이제 덜 갖고 덜 쓰는 것, 그것이 환경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란 걸 아셨나요?...”
도연스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데 통일전망대 너머 호숫가에서 흰 두루미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봄 하늘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여기 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가벼운 황사바람부는 이른 봄날, 그것은 철원 평야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축제 한 마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