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스님
(부산 미타선원 주지스님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문위원)

오늘은 늘 먹는 밥이지만 하얀 쌀밥이 생각납니다. 하얀 쌀밥을 상상하는 것은 내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서 지리산 근처 작은 마을에 살적에 우리가족도 쌀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예 쌀이 집에 없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이 집을 나서기 전에 어머니는 ‘오늘은 어느 집에 일을 가니, 점심을 먹으로 그 곳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곤 했습니다. 이것이 그 날 우리의 점심 먹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밥은 우리 가족이 점심때 한 장소로 다시 모이게 하는 위대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밥을 먹기 위해서 우리에게 온갖 궂은일 힘든 일 그리고 때론 나쁜 짓까지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설령 남의 것을 훔치다가 잡혔더라도 새끼 입에 풀칠할 것이 없어서 이런 짓을 했다라고 하면 듣는 이 모두가 순식간에 화가 동정으로 바뀌곤 합니다. 역시 밥은 우리가 사는 데에 그 만큼 큰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던 밥이 언제부터인가 약간 찬 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이 우선이 되고 공부가 우선이 되고 몸매가 우선이 되어서 먹거리가 소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즈음 아침을 먹었냐고 물어보면 안 먹은지 오래 되었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어떻게 했냐고 하면 생각나면 아무 때나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녁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자기 전에 배고프면 조금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출근 시간은 10분도 틀리지 않게 하고 아이의 학원시간은 5분만 늦어도 난리가 납니다. 5분 시간을 늦지 않기 위해서 밥을 대신해 커피로 속을 위로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생활의 중심이 이젠 먹거리에서 학력 그리고 돈모으기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은 뒷전입니다.
그런데 얼마를 지나보면 그들의 몸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좋은 옷에 좋은 차에 좋은 집을 가졌지만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건강을 얻기 위해서 생각해 내는 것이 돈을 벌어 좋은 병원에 가거나 좋은 의사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기에 나는 아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악순환은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은 일차적으로 내 몸에 집어넣는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원이 소홀하거나 오염되었다면 몸은 당연히 나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마침내는 회복하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은 나에게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지역과 사회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관심이 돈과 명예에 가 있는 동안에 우리의 식단은 경제논리에, 병든 먹거리에 지배당했습니다. 초등학교의 학생식당에서조차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도 모르는 음식을 준비하거나 관리 부족으로 식중독 사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일의 이유를 들어보면 잘 하고 싶지만 수지를 맞출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 식단이 먹을 수 없는 음식들로 점령당하게 된 이유들입니다.
한 식당에 갔다가 주인에게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는 닭고기 절대로 먹지 않는 답니다. 왜냐고 했더니 자기가 직접 양계장을 운영했었는데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수의 닭을 키워야 돈을 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항생제를 안주더라도 몇 개월만 지나면 그 지역이 오염되어서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하더라도 항생제가 든 먹이를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라도 병이 들면 엄청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찌 해야 하나요. 그렇다고 그들에게 수지도 맞지 않는 양계장을 하라고 한다는 것도 옳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쌀에 좋은 닭고기를 우리 식단에 오르게 하려면 결국 먹거리에 대한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산자들이 먹고 살고 대량으로가 아닌 품질로서 돈을 벌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요즈음 많이 생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생태작물 매장이 생겨나고 있고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절에서도 첫 번째 시도로 청정공양미 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매일 3-40명의 공양대중들이 건강한 쌀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연 소금을 사용하고 조미료는 일체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미료에 의지해 있는 주부들을 위해 홍승스님의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조미료에 대한 독립과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가치를 더 높임으로써 생산품의 품질을 높이고 우리식단을 항생제와 농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열심히 번 ‘돈과 권력’을 오래 오래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