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추웠던 며칠이 지나고 이제사 겨우 숨었던 가을이 나왔다.
어데갔다 왔는지 부랴부랴 오더이만 이파리들부터 마구마구 떨어뜨리기 시작하는데...
지난 반짝 추위에 다들 놀랬던가보다.
이거야 원~ 꽃샘추위가 아니라 잎샘추위여? 덕분에 앞마당에 추자나무 잎들이 우수수...
하루에한번 쓸어내도 소용없다.
일삼아 빗자루질을 해대다가 성질이 나버려서 그냥 삽작거리 옆에 모아두었다.
에라~ 한꺼번에 치우는겨...
추자나무는 호두나무다. 왜 추자라고 하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잎이 커서 달랑 몇개만 떨어져도 할매가 막 뭐라하신다. 왜 안 쓰노~
삽작거리가 이래 지저분해 우야노.
어쨌든 얘들은 몽땅 아궁이행이다. 불쏘시개로 쓰면 참좋다.
호박덩굴이 서리내린 뒤 쭈구리됐다. 얘들은 더운건 참아줘도 추운건 질색인가보더라.
온통 쭈구러들어서 볼품이 아주 없다.
온 여름내 커다란 호박잎사귀로 감춰뒀던 호박들이 마구마구 눈에 띄어 인간들은 그거 줘모으느라 한참 분주했다나..
추위가 오면 호박은 금새 얼어버린다. 푸르딩딩... 얼어서 먹지도 못한다. 그건 달구집에 넣어주면 갸들 잘 먹는다.
요새 엄마닭 한 마리가 알을 까서 몰고댕긴다. 서리배다. 서리 내릴 무렵에 깐 거라 그런다나?
근데 엄마닭이 딴짓거리? 한다고 장닭들이 심술이 났는지 갓까여나온 병아리들을 막 쪼는바람에
장닭 세 마리를 저 위 작은마구 안 달구집으로 귀양보냈다. 나쁜 넘들~ 지들 새끼들인데... 쪼면 우짜니?
햇살이 제법 따갑다.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져도 햇살 가운데로 나오면 아무 문제없다.
요새 산골사람들 양파밭에서 산다.
양파 모종 뽑고 심고 온동네 사람들 몰려다닌다. 혼자서는 양파밭 일 다 못하니까.
근데 몇집 일은 사람이 넘쳐나서 일이 없고... 어떤 집은 일손이 없어 죽을 맛이고...
할매는 그런 벱이 어데있느냐고.. 일손 없는 선태네 집에 일거들러 가셨다. 어제 오늘 하루죙일
아침저녁외엔 집에 안 계신다.
사람 인심이 참으로 못된건 도시나 산골이나 매일반이다. 사람 사는 곳엔 언제나 갈등이 있고
미움이 있고... 배아픈 일이 많은가보다.
어제 웃어주던 이웃이 오늘은 찌푸린다. 영문을 모르고 당한다.
아무래도 그네들에게 선녀는 배 아프게 하는 정체모를 병원균인가보다. 뭐 그리 짐작해야지 별 수 있나...
감나무에 꼭대기에만 감이 남아있다. 장대가 아무리 길어도 저건 못딴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따던가 쇠장대로 짜들던가 그래야지...
옆에 산도랑이 있어 짜들었다간 도랑으로 다 떨어지고 깨지고 난리난다. 그래서 저건 까치밥으로 냅둬야지 별 수 없다 하고
그냥 돌아섰다.
산도랑가에 산국이 흐드러졌다. 나무사이사이 돌담 사이사이에 너무 곱게 이쁘게 피어난다.
손에 들려있던 작은 낫으로 하나하나 자른다. 조금만 가져갈께~
향이 대단하다. 벌들이 마구 몰려들어 윙윙.. 소리가 크다.
검정콩 흰콩 거두고 난 빈 밭이다.
거름을 내서 흩어놓았다. 이 밭에 한 열두 구루마 냈나... 이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골을 타서 마늘을 심거야지. 요새 씨마늘 또개는 일을 틈틈히 해야한다.
미리미리 해놔야지 급하게 하려하면 이것도 일거리다.
토란대를 베어내고 난 토란뿌리다.
더 추워지기 전에 캐내서 따뜻한 곳에 보관해야하는데.... 언제 할지.
그간 가물어서 땅이 굳어 삽이 제대로 들어갈까 몰라...
나무꾼보고 언제 삽갖고 땅 좀 파뒤집어달라 해야겠다. 얘들은 추위에 너무 약한 얼띠기다. 어여 거둬들여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