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람이 모이는 ‘나루터’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을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 마종기, ‘우화의 강1’
광주를 수식하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가 예향(藝鄕)이다.
예술의 고을 광주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무등산 끝자락 선덕사.
매월 첫 토요일 저녁이면
선덕사 다실에 다향(茶香)과 시향(詩香)이 어우러진 특별한 향기가 피어난다.
선덕사 회주 도법스님, 광주전남 재가 불교의 어른이라 할 이중표 교수님,
몇몇 시인과 시를 좋아하는 선덕사 신도님들이 모여
향기로운 언어의 잔치를 한 바탕 벌이는 시모임
‘나루터’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있다가 침맞고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군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낳고 사는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이정록, 의자
시모임 ‘나루터’가 모임을 시작한 것은 올해 1월이다.
뭔가 뜻 있고 색다른 모임을 가져보자는 의견에
회주스님께서 적극적으로 모임을 주선하면서 이루어진 자리다.
1월에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모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고,
2월에는 예의상 한 번 모이기는 했지만 이번 달에 이어질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첫 모임에서 ‘우화의 강’에 목욕한 선덕사 시인 묵객들은
주저없이 나루터에 ‘의자’를 가져다 앉더니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알지 못하여
모든 존재를 바쳐 사랑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움으로 노래한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3월에는 어떤 노래가 나루터에 울려 퍼질까?
이제 시모임이 안 될 걱정은 하지 않는 대신
어떤 향기가 도량을 채울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좋은 일이건 아픈 일이건 힘든 일이건,
나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이야기에서 거두절미 알갱이만 담으면 시(詩)가 되는 것이니
나눌 시 하나 가슴에 챙겨 담아
매달 첫 토요일 저녁에 산수동 골목 끝집으로 오시라.
언덕 위에 물길로 나아가는 나루터가 있으니
잠시 나룻배에 올라 몸과 마음을 맡기시라.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종기, ‘우화의 강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