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이야기
ⓒ 시네마달	관련사진보기

2008년, 4대강 착공식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 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져 가고 파괴되는 섬뜩한 국토의 모습이었다.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으로 올라 온 것은 본류 공사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4대강 공사장은 다시 기억하기조차 힘이 들지만 내성천과 같은 모래지천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강이 스스로를 회복 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성천 하류에는 두 개의 보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상류에는 물과 모래를 가두는 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수몰지구 안으로 들어왔다. - 강길을 걷다 시놉시스

천성산 도롱뇽을 지키던 지율 스님은 그렇게 내성천 공사 현장에서 두 해를 보내며 강의 사계절과 공사 전후 변해버린 강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 영화를 보면 환경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4대강 공사 전후 강의 변화를 통해 강을 살리려면 어떤 결정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내성천의 자갈과 모래는 화강암과 퇴적토로 이루어진 소백산의 암석이 비바람에 풍화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모래는 강물을 감싸안아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자정 작용을 하고 수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 공간을 마련했다. 모래는 오랜 세월 수많은 생명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아름다운 공생의 삶을 이어왔다. 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영주댐 공사로 인해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수 백 년 동안 내성천 인근 마을에 살던 주민은 물론 주변 자연과 강에 깃들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내쫓기고 있다. 산의 나무를 베어 내고, 강을 파헤치고 물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상류의 댐 공사로 인해 하류는 물이 모자라 식수가 부족한데 업자들은 재빠르게 그 지역 수돗물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은 자식들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논과 밭을 내 놓았던 사람들이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순박한 촌로들은 머잖아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곳으로 내동댕이쳐져야만 한다.

제일 먼저 ,마을 입구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과 뭇 생명들에게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던 500년 된 당산나무가 갈가리 찢겨진 후 몸통이 베어져 어디론가 실려 갔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그 지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어르신도, 시집 와서 60년 이상 그곳에서 농사짓고 약초를 심어 가꾸던 할머니도, 아들집으로, 건설업자들이 이주민들에게 제공한다는 13평 임대주택으로 옮겨야만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90년 역사의 초등학교와 마을 전체가 물 속에 수장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율스님은 결코 목소리를 높이거나 감정의 수위를 높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강물을 따라 걸으며 강이 들려주는 강의 노래와 강의 한숨과 강의 아픔과 강의 변화를 화면에 담아 보여줄 뿐이다.

흉물스럽게 변한 준설토가 가득 쌓인 강가에는 굴착기가 굉음을 내며 끝없이 강바닥을 긁고 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던 90km에 달하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고작 일년 사이에 흙탕물로 변했다. 물을 거슬러 오르던 송사리떼도 자갈과 수초 사이에 몸을 숨기며 노닐던 물고기들도, 한가롭게 헤업치던 원앙 가족이나 수달 가족도 우아한 재두루미도 더 이상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지율 스님은 우리가 무심히 잊었던 강, 무관심하게 방치하며 강에게 입힌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커다란 바위가 풍화되어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어 흐르는 강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시작점을 이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모래가 발등을 덮는 강 물 속에서 지율 스님이 고요히 기다리는 것은 높고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모래가 흐르는 강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그 기다림에 너무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모래가 흐르는 강은 매성천 지킴이 414명의 마음을 모아 28일 개봉합니다.
모래가 흐르는 강/ 다큐멘터리/ 73분 /지율 스님 기획 감독/ 시네마달 공동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