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도법스님과 혜민스님이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 교정 앞 잔디밭에서 만남을 가졌다. 세대를 초월해 개인적인 고민뿐 아니라 한국불교 및 미국불교 현황 등 다양한 주제를 주고받은 두 스님은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얘기를 풀어갔다. 미국 뉴욕=일감스님 |
■ 도법스님
개인문제든 사회시스템 문제든
나와 무관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네가 불편하면 나도 불편하므로
스스로 편하기 위해 관심 가져야
■ 혜민스님
괴로워 죽겠다는 이메일 사연 보며
사회구조문제 해결할 수 없어 아파
아픔 알아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역할 하고 싶다
종단의 쇄신을 책임지고 있는 도법스님과 ‘힐링’의 아이콘 혜민스님이 만났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혜민스님은 지난 4월20일 미국 뉴욕에 소재한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조우했다. ‘깨달음과 해방-참여불교인과 해방신학자의 대화’를 주제로 4월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국제 불교.기독교 컨퍼런스 참석차 방미한 도법스님은 혜민스님을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풀어갔다. 특히 혜민스님은 활발히 활동하던 트위터를 잠시 멈추고 묵언수행에 들어간 이유도 털어놨다. 이번 대담은 본지 주간 일감스님이 진행을 맡았다. 한편 도법스님은 혜민스님과 함께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폴 니터 유니언신학대학원 교수와도 대담했으며, 본지는 그 여정을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일감스님 : 불교신문 특별대담을 위해 동참해준 스님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묵언수행 중인 혜민스님이 본지의 요청으로 어렵게 참석해줘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종단의 구참과 신참, 기성세대와 젊은세대를 대표하는 두 스님이 만났으니 서로에게 할 말씀이 많을 것 같다.
혜민스님 : 내가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힘들고 외로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다보면 항상 다르다는 느낌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것이 있다. 막상 해보니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아픈 것이 아무 것도 아닐 정도였다. 내용을 보면 가족 안에서 끔찍했던 엄청난 사연들, 또 생로병사의 문제 등 너무 절실한 것들이 많았다. 그것을 보면서 한 마디 두 마디 했을 뿐인데 고맙다, 감사하다 반응이 오니 스스로 이른바 ‘업(up)’이 돼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개인적인 고민은 한 두 마디로 토닥거릴 수 있지만, 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문제는 개인적인 고통을 다독이는 것처럼 하면 무성의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 많다.
도법스님 : 연기적 사유방식을 천착하다보면 어떤 지점에서 정리되는데, 개인의 고통이든 사회의 고통이든 홀로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 없다. 관계와 조건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시스템 문제든 어떤 문제든 간에 내 문제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고통스러우면 나도 불편한 것이다. 누군가 편하면 나도 편하다. 내 스스로 편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안가질 수 없다. 결국은 실존적 고민을 가진 이에게는 그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이를 풀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노력하면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내가 최대한 관심을 갖고 풀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다. 고통 받는 사람을 모른 척하면 사람다운 것이 아니지 않나. 스님다워지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갖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나도 편안해지고 훨씬 더 격조가 높은 인생이 된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려면 더 큰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도법스님 : 과거에는 사찰과 스님들이 세상과 단절돼 살아왔다. 역사를 떠나서 살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열린 시대다. 당연히 인간적 고통이나 사회적 고통문제를 보게 될 텐데 불교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묻고 싶다. 초기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을 보면 내 어릴 때와 똑같다. 자기 고뇌, 자기 해탈 때문에 다른 것은 나중으로 미룬다.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혜민스님 : 사실 나도 고등학교 재학 당시 ‘깨달음병’에 걸려 누가 깨달았다고 하면 무조건 찾아갔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라 여겨 미국에 와서도 인도 여행을 가서도 헤매 다녔다. 스승도 찾아다니고 여기저기서 나름대로 수행했다. 어느 순간 깨달음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것인데 얻으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쉬고 또 쉬어라’는 무여스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완벽해야 한다는 자체를 놓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바로 있는 그대로가 부처고, 있는 그대로를 포용하는 것이 깨달음의 마음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나보고 ‘스타’라고 하는 주변의 말은 부담스럽다. ‘스스로 타락한 사람이 스타’라는 우스갯소리가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 스스로 타락한 것이 맞다. (웃음)
도법스님 : 부처님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서 300km를 걸었다. (웃음) 불교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혜민스님 : 2011년 오랜만에 귀국하니 뿌듯했다. 주말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기 미안해 트위터로 교류했던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2주에 한 번씩 청년법회를 했다. 처음에는 60명이 왔는데 400명까지 늘었다. 법회에서는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 얘기해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많이 배우게 됐다. 또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다독일 수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접하며 한계를 느꼈다. 청년 실업, 대학 등록금 문제 등을 들으며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눈 뜨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메일로 들어오는 내용의 첫 문구가 ‘스님 제발 좀 읽어주세요. 저 죽겠어요’ 였다. 처음에는 잘 읽었지만 점차 이메일을 열기가 무서워졌다. 문제 하나하나가 너무 아팠다. 힘들고 어렵고 비참하고 괴로운 내용이었다.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아픔을 알아주고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답장을 하면 그것만으로 고마워했다. 답한 내용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전혀 상관없었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주고 있다는 자체 하나로 고마워했다. 그것 자체가 수행이 됐다. 끊임없는 고민 상담을 임하는 내 자세가 수행이었다. 그분들은 내 짧은 답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그런 방식밖에 하지 못한다. 고통스럽다고 하면 잘 들어주고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답을 해줄 수밖에 없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스님이 정치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일감스님 : 고민을 던진 분이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고 혜민스님도 위로가 되고 위안을 삼으니 서로가 서로를 살린 것이다.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전국 단위로 토크콘서트를 연 것으로 알고 있다.
혜민스님 : 포교원과 함께 마음치유 콘서트를 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불교적인 문화권에서 성장해 친불교적이지만 실상 불교는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청년들이 부담 느끼지 않고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 한국불교가 계속 살아나가려면 청년 포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메일을 보면 이런 내용이 정말 많다. 자신은 신심 깊은 불자인데 결혼을 하니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닐 것을 강요하거나,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곤란한 분의 얘기도 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많다. 한국불교가 왜 청년포교에 신경을 쓰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희망도 봤다.
최근 불교계의 사회참여가 활발하고, 특히 노동자의 어려움을 살피는 등 활동을 보면서다. 믿음을 무조건 강요하지 않고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 콘서트를 해보니 열심히 하면 가능하다, 어렵지 않겠다고 여겨졌다. 마음으로 접근하면 포교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감스님 : 지난해 우리 사회의 대세는 ‘힐링’이었다. 그 중심에 혜민스님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스님이 말하는 것을 멈추고 당분간 수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혜민스님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혜민스님 : 사람들의 관심도 결국 무상한 것이어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생기므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도법스님 : 불교적으로 보면 사람에게는 저마다 도깨비방망이가 있다. 도깨비방망이는 내가 쓰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 내게 주어진 조건, 즉 몸과 마음과 현장을 좋은 의도로 쓰면 부처, 나쁜 의도로 쓰면 도둑이 된다. <금강경>에서 ‘무주상’, 구하는 바 없이 내 이익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최대한 쓰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적재적소에 최선을 다해 써야 한다. 그것이 보살의 삶이고 부처의 삶이다.
혜민스님 : ‘사람의 인품은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이를 많이 새기고 있다.
일감스님 : 미국 불교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혜민스님 : 미국 불교가 가진 문제점은 엘리트 불교라는 것이다. 대도시의 교육 많이 받고, 잘 사는 백인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불교를 접하는 것도 명상 수행에서 시작된다. 명상센터에서 일주일에서 3개월까지 수행하는데, 시간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수행 프로그램은 잘 돼 있지만, 돈이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는 구조다. 기복불교는 거의 없다. 흑인이나 소수인종, 소도시나 농촌 등지까지 확산하려면 다른 모습의 불교가 필요하다.
도법스님 : 예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부처님은 왕족이었다. 지식인층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본다. 불교는 지식인의 종교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는 바닥으로부터 비롯돼 온갖 억압과 박해를 받은 피의 역사로 이뤄져 있다. 불교는 그렇지 않다. 선종불교는 제도권 안의 의식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추동됐다. 미국불교의 현상도 불교 역사로 보면 자연스런 것이다.
혜민스님 :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학생들에게 종교를 물으면 자기 부모들이 불교라서 어릴 때부터 불교를 믿어왔다고 답한다. 불교가 2세대 혹은 3세대까지 내려오고 있다. 자신이 평생 알아온 종교가 불교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수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일본이나 티베트의 스님들이 직접 가르침을 전했지만, 현재 2~3세대로 내려오면서 지도자들이 서양인으로 바뀌고 있다. 완전히 미국화된 종교로 전환되면서 굳이 아시아 지역 스승에게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하다. 물론 아직도 아시아에서 스승을 모시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존경하고 숭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 미국불교 내부의 각성에서 비롯됐다. 큰 스님이라며 아시아에서 모셔온 스승들이 계율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사찰도 많다. 내가 다니는 (햄프셔)대학교 주변에도 50여 곳이나 있을 정도다.
일감스님 : 비교종교학으로 견지해볼 때 미국 내 한국종교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 기복종교로 알고 있지 않은가.
혜민스님 : 기복은 종교의 일반적인 속성이지만 현대화 과학화의 물결 속에서 이것만을 유지하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불교는 비즈니스적 성향이 있다. 자신이 받은 만큼만 베푼다. 기복불교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복이 깊어지면 수행으로 연결돼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큰 고난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되지 않는가. 수행과 기복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기복적이거나 수행에만 매달리면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에는 신심이 있다가 수행하면서 좌절하는 경우가 있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의심을 품고 수행하면서 점차 신심을 갖추는 방식이다.
도법스님 : 부처님은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충분히 검토해서 이해가 되고 동의가 되면 믿으라고 했다. 당신 말씀이더라도 검토하라고 했다. 부처님은 자신의 가르침은 여기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뤄진다, 검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불교다. 즉각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하긴 하는데 즉각 나타나는 것을 못보고 있다. 즉시에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이를 해탈이나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이나 내생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실상을 제대로 천착하면 즉각 이뤄지는 것이 불교다.
일감스님 : 지금까지 스님들 말씀 잘 들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한다.
도법스님 : 만나서 반가웠다. 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내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혜민스님의 사고와 태도가 바로 불교라고 생각한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면 개인적으로도 불교적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혜민스님 : 도법스님과 말씀 나누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종단과 함께 하며 종단 안에서 같이 도와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계종이라는 브랜드를 입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혹시 너무 앞서가거나 자만하면 하심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내려달라.
도법스님 : 개인과 함께 종단도 자기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불교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아닌 경우가 많다. 포장지만 불교일 뿐이다. 종단 구성원으로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역할을 하려면, 종단을 위해 앞서 가기도 하고 나서기도 해야 한다. 내가 고통스럽더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종단의 구성원이 할 일이다.
[불교신문2913호/2013년5월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