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구럼비 발파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우려했던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어제 여섯 차례의 발파로 제주도는 64년 전 4·3의 악몽이 지배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사람은 끌려가고 바다는 포위되고 자욱한 포연 속에서 생명은 죽임을 당하고 있다.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수백명의 마을 주민과 종교인, 정치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구럼비 바위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야당 대표까지 나서서 발파 중단을 요구했다. 제주도지사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장이 긴급 호소문을 통해 공사를 일시 멈춰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발파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정부는 을러댄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있다.

정부는 왜 이 거센 반대와 간절한 호소도 뿌리치면서 발파를 강행하는가? 물리적 충돌은 물론이고 생명이 희생되는 불상사까지 감수하면서 발파를 강행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급해서 구럼비 바위 발파를 강행하는가? 그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구럼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겠다는 속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는 해군기지로 평화를 지키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분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 뒤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있다. 정부가 미국의 구도를 일방적으로 따른다면 중국이 그저 좌시하고만 있겠는가? 멀리 있는 태평양도 중요하지만 가까이 있는 서해가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멀리 보고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 그 지혜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구럼비를 먼저 발파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선 안 된다.

구럼비는 그 경관의 아름다움이나 지형의 희귀성 때문에 국내외에서 높은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구럼비는 긴 세월 동안 강정마을 주민들의 일과 삶, 문화와 함께 했던 강정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또한 그 바위 틈서리에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돌찔레 같은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강정마을은 제주도 절대보존지구 가운데에서도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할 만큼 가장 소중한 곳이다. 일부 언론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지만, 강정마을의 가치는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좌우하는 시금석이다. 정부가 정치적, 군사적 가치로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를 마구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정부는 구럼비 발파를 즉각 중단하고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역사적 안목과 심모원려의 통찰로 근본적 문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경찰과 폭약을 철수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4·3의 악몽이 재현돼선 안 된다. 반드시 민주적 방식으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평화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 

2012년 3월8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