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전문가들이 본 ‘2011 종교’
종교가 세상을 위무한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 2011년이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계가 금권선거, 세습 등으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물론 종교계의 신뢰 회복을 위한 종교인들의 자정 및 종교 간 대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계 인사 10명이 뽑은 올해의 사건 가운데에는 우울한 뉴스가 더 많았다.
■ 한기총 금권선거 파문
지난해 12월 치러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선거 때 후보자가 대의원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개신교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금권선거 논란으로 당선자인 길자연 목사가 신임 회장으로 추인받지 못하게 됐고, 교회 내 ‘돈 선거’에 대한 양심선언과 증언이 이어졌다. 급기야 한기총 회장 선거는 소송으로 이어져 길자연 당선자가 직무정지 판결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독교윤리실천 등은 한기총 해체 운동을 전개했고, 구호단체 월드비전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은 한기총을 탈퇴했다.
기독교윤리실천 등 개신교 운동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17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금권선거 논란의 당사자인 길 목사는 직무정지 5개월 만에 회장직에 복귀했지만 집행부의 ‘개혁정관’ 폐기, 기금 유용 등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면서 사건이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차기 회장 선거도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다. 개신교 최대 연합기구인 한기총이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 조계종 종교평화선언 발표 유보
대한불교 조계종은 지난 1월 “국민의 종교로 거듭나자”며 자성과 쇄신의 5대결사를 제안하며 추진본부장으로 도법 스님을 임명했다. 결사추진본부는 결사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8월 ‘종교평화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 초안을 공개했다. 최종안은 11월 발표 계획이었으나, 종정 법전 스님 지시로 내년으로 미뤄졌다.
법전 스님이 발표를 유보시킨 이유를 밝히지 않자, 도법 스님이 ‘가르침’을 달라는 공개질의 서한을 발송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도법 스님의 질의에 대해 종정의 권위에 도전하는 항명성 서한이라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단 내부 비민주화를 비판한 용기 있는 행위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
■ 여의도순복음교회 사태
신도 80만명을 헤아리는 세계 최대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 원로목사의 가족이 교회 관련 기관의 요직을 독식하면서 종교계 안팎의 비난을 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 4월 조 목사가 교회 내 핵심 기구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굿피플인터내셔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아울러 조 목사 가족들의 교회 내 역할을 제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 목사와 조 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이 각각 ‘조용기 자선재단’(구 사랑과행복나눔 재단)의 총재와 공동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조 목사 가족과 교회 간 갈등이 첨예화됐다. 순복음교회 측은 조 목사 가족이 여의도순복금교회의 출연 법인인 ‘조용기 자선재단’을 사유화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지난 9월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일부 장로가 조 목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태가 법정으로 비화됐다. 또 국민일보 노조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신자들이 조 목사의 아들인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과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등 순복음교회 관련 기관들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7대 종단 대표 방북
지난 9월21일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소속 종교 지도자들이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는 북한의 조선종교인협의회와 회담을 갖고 남북한 종교인 교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한국 종교계의 수장인 7대 종단 대표들이 한꺼번에 방북길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종교인 방북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이뤄져 경색된 한반도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조계종 새 종정 추대
조계종은 지난 14일 종정추대회의를 열고 진제 스님을 새 종정으로 추대했다. 26명의 원로의원 전원의 만장일치 추대였다. 13대 종정으로 추대된 진제 스님은 “조계종의 본체인 간화선을 널리 펴는 데 매진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진제 스님은 조선시대 경허 스님에서 수월-운봉-향봉 스님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법맥을 잇는 선승이다. 내년 3월26일 취임을 앞두고 벌써부터 불교 내부에서는 수행 풍토가 크게 진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설문에 응해준 종교계 인사(가나다 순)
김대선(교무·원불교 문화사회부장) 법인(스님·조계종 교육부장) 안기석(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유영근(대화문화아카데미 기획실장) 유해신(목사·좋은교회) 이정주(신부·천주교 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찬수(강남대 교수) 이학종(미디어붓다 대표) 조제호(기독교윤리실천 사무총장) 허영엽(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