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생태환경] 생태적 세계관, 생명의 철학 |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8-07 12:30
조회 : 4225
|
|
 생태적세계관과 생명철학.hwp (37.5K), Down : 85, 2006-08-07 12:30:50 |
|
|
생태적 세계관, 생명의 철학 박 준 건(부산대 철학과) 1. 起 : 살림하는 집이 무너지고 있다. 새 천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이며, 어떻게 변해야 한단 말인가. 진리는 수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침묵 속에 있다면, 우리는 새 천년 앞에서 눈감고 조용히 우주의 숨소리와 그 호흡을 들어보자.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에서 우주 역사 150억년을 1년 달력에 압축하여 비교한 바 있다. 정월 초하루는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거나 빅뱅이 일어난 날이다. 9월 9일에는 태양계가 형성되었고, 9월 14일에는 지구가 생성되었으며, 9월 25일에는 생명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11월 1일에는 성(性)이 만들어지고, 12월 19일에는 척추동물이 출현하였으며, 12월 24일에는 공룡이 출현하여 28일에 멸종하였고, 12월 31일 밤 10시 30분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인류의 역사란 섣달 그믐날 밤 마지막 10 초 전에 벌어진 일이며, 중세의 종말에서 현대까지의 기간이란 마지막 1초 정도일 따름이다. 그 1초의 1/5정도가 되는 20세기는 이미 10년전 1989년 11월 9일 오후 10시 30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늘날 인류의 분별없는 욕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을 엄청나게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의 하나는 바로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라 할 수 있다. 그 위기의 심각성은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인류뿐 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존립마저도 위태롭게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하일브로너는 인류는 황폐화된 지구 위에서 새로운 야만 상태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는 이것을 비극적 종말의 도래를 예언한 것으로가 아니라, 무자비한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 어린 총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자체와 살림하는 집이 근본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생태’를 뜻하는 서양말 ‘에코(eco)’는 희랍어 ‘오이코스(oikos)’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집을 의미한다. 살림하는 집과 살림살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죽임과 죽음의 논리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다. ‘살림’이라는 명사는 ‘살리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으며, 죽임의 반대말이다. ‘살림살이’는 단순한 집안 일이 아니며, 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고귀한 생명 살리기다. 여기서 생명 운동이 본질적으로 아버지적 운동이 아니라 어머니적 운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쟁과 억압, 착취와 테러의 철학이 아니라, 조화와 화해, 용서와 사랑의 철학이 살림의 철학이다. 지구환경문제는 1972년 스톡홀롬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비로소 세계적 관심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거기서 채택한 ｢인간환경선언(스톡홀롬선언)｣은 우리가 자연환경 파괴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밝히고 있다. 그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역사의 전환점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전 세계에 환경이 미치는 영향에 더 사려 깊게 주의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자연 환경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의존하는 지구 환경에 중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줄 것이다. 반대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현명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인류의 필요와 희망에 맞는 환경에서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 양명수, 『녹색윤리』, 서광사, 1997, 205-214쪽 참조. 이상의 주장에서 환경이란 말이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이원론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조금 그슬리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현명한 현실 파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톡홀롬선언」이나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을 보면, 거기에는 현대의 환경 문제를 낳은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사상적 반성도 없으며,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떠맡을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나 철학의 모색도 없다. 왜냐하면 국제정치 문제로서 지구 환경 문제란 현재의 선진국이 향유하고 있는 생활 수준, 체제, 사상, 사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논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은 ‘다음 세대의 인간’을 포함한 다음의 ‘인류’와 그 ‘삶의 환경’이며, 인간 이외의 생명체나 자연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근본적으로는 고려하지 않는다.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철학적 사색의 결여로 단순한 환경보호운동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아직은 관념적 자기 만족을 위한 수준에 머무고 있다. 그것은 오히려 환경과 생태 문제를 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생태철학이 ‘생태주의(ecologism)’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개념이 그러하듯 생태주의 개념도 열린 개념이며, 논자에 따라서 넓게 사용되기도 하고 좁게 사용되기도 한다. 대체로 생태주의를 심층 생태론과 사회 생태론으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살림하는 집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생태주의, 또는 생태적 세계관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며, 이 글은 그것을 겨냥하고 있다. 2. 承 : 순수한 녹색 철학으로서 심층 생태론 여기서 말하는 ‘심층생태론(deep ecology)’은 심층생태론 뿐만 아니라, 생태중심주의, 생물중심주의, 근본생태론(radical ecology) Carolyn Merchant, Radical Ecology, Routledge, 1992 참조., 영성생태론(spiritual ecology), 혁명적 생태론(revolutionary ecology) ASARM 1993년 6월호에서 Orin Langelle가 ‘Revolutionary Ecology’라는 논문을 썼다.의 흐름을 다 포괄한다. 그 논의의 지평은 약간의 차별성을 지니지만, 사상의 지반은 공유하기 때문이다. 심층생태론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이다. 심층생태론에 따르면, 현재의 지구 환경 문제는 근대 이후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를 취해온 사실에서 유래한다. 자연이란 근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며, 인간과 자연은 한 몸이다. 인간은 자연 중에서 그리고 자연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가 재발견하지 않고는 환경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한다. 우리가 잃었던 ‘자연의 소리’, ‘지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을 되찾아, 그와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인간으로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한다. 이 같은 의식변혁이 있어야 비로소 참된 자연보호가 가능하다는 것이 심층생태론의 주장이다. 심층생태론은 새로운 생태학적 패러다임을 요구하는데, 그 패러다임은 지난 수세기 동안 지배적이었던 기계론적 패러다임을 넘어서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관은 아주 근원적이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종교적, 심리학적, 사회정치적 그리고 윤리적 원리를 요구한다. 심층생태론이라는 이름과 접근방법은 노르웨이 철학자 안 네스의 논문 ｢피상적인 생태 운동과 심층적이고 장기적인 생태운동｣에서 가져왔다. 안 네스는 단순한 오염과 자원 고갈에 반대하는 ‘피상적 생태론’을 넘어서는 심층생태론의 생태철학적 원리로 다음과 같이 일곱가지를 들고 있다. Arne Naess, 'The shallow and the deep, long-range ecology movement’, in Inquiry 16, 1972, pp. 95-100. (1) 심층생태론은 생명체나 인간을 제각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상호 연관되어 있는 ‘전체 장’(total-field)으로 엮여진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논의는 이른바 신과학운동의 흐름과 많은 점에서 공통지반을 갖고 친화력을 갖는다. 신과학 운동은 대체로 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 원리와 생물학의 시스템 이론을 바탕으로 전일적·유기체적·생태적 세계관을 내세운다. 신과학운동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카푸라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다음책을 참조하면 된다. The Tao of Physics(이성범 외 역 :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범양사출판부, 1979), The Turning Point (이성범 외 옮김 :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범양사출판부, 1985), Uncommon Wisdom (홍동선 옮김: 탁월한 지혜, 범양사출판부, 1989). 또한 베리 커머너가 『원은 닫혀야 한다』에서 ‘전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명제를 생태주의의 제일 원리로 제시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전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명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생명체나 인간을 제각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상호 연관적·전체적으로 엮여진 것으로 파악한다. 이를 통해 원자론적·요소론적 세계관에서 관계론적 세계관으로 전환을 모색한다. 네스의 제1테제는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다. (2) 심층 생태론은 ‘생명권 평등주의’를 또 하나의 원리로 들고 있다. 이 원리는 생태계나 생명권의 피조물은 ‘생을 영위하고 꽃을 피우는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친숙하게 지냄으로써 깊은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러한 네스의 주장은 전지구적· 전인류적 관점에 서서 ‘신의 피조물간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David Pepper, The Roots of Modern Environmentalism, Croom Helm, 1984, p.27. 이것은 인간은 다른 유형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법칙에 순리적으로 따름으로써 자신을 일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는 전체 생태계와의 조화를 통한 안정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심층생태론은 ‘다양성과 공생의 원리’를 채용한다. 다양성은 생존의 잠재적 가능성을 증대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 양식이 출현할 기회를 증대시키며 생명 양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양식, 문화, 직업, 경제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4) 심층생태론은 ‘반(反)계급 자세’를 취하며, ‘무계급의 다양성’을 지향한다. (5) 심층생태론은 ‘오염과 자원고갈에 대하여 싸울 것’을 내건다. 앞에서 이러한 슬로건은 피상적 생태론의 태제란 것을 네스가 지적하였지만, 심층생태론은 피상적 생태론의 기본 주장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넘어선다. 부연 설명하자면 사실 심층생태론은 현 사회 체제와 문명의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에서 전개되는 환경보호운동을 부정하면서 등장하였다. 현재의 지구 규모의 환경 문제는 다름 아닌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문명이 발생시킨 것이므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문명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심층생태론은 ‘혼란성이 아니라 복잡성(complexity, not complication)’을 또 다른 원리 로 지지한다. . (7) 심층생태론은 ‘지방의 자율과 탈중심화’를 지지한다. 네스의 이 논문은 심층생태론의 기본틀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후 심층생태론을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있다.7) Arne Naess and David Rothenberg, 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pp. 36-38. 그는 ‘생태학(ecology)’, ‘생태철학(ecophilosophy)’, ‘생태지혜(ecosophy)’를 구별한다. ‘생태학’이란 자연과학의 한 분야를 말하고, ‘생태철학’은 생태론의 철학을 말한다. 그리고 ‘생태지혜’는 나 자신의 세계관·가치관에 직접 관계하는 것으로, 우리가 실제 상황에 당면할 때의 철학을 말한다. 네스는 ‘생태지혜’를 ‘생명권에 있는 생명의 여러 상황에 의해 촉발된, 철학적 세계관 또는 시스템’으로 정의내린다. 사회학자 빌 드볼과 철학자 죠지 세션즈가 네스의 논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 출판한 심층생태론(Deep Ecology)』이라는 책은 네스 이후의 심층 생태론 사상을 총괄하고 있다. 그들의 다음 문장은 심층생태론의 논의 구조를 적절하게 나타내고 있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다. “개인, 공동체, 자연 사이에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등장한 것이 심층생태론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갈망이란 바로 우리 속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직관에 대한 확신과 신뢰이며, 직접 행동하는 용기이며, 감미로운 조화에 맞추어 춤출 때의 신명나는 신뢰감이다. 그 조화는 흐르는 물, 날씨, 계절의 변화, 지구상의 모든 생명 과정에서 발견되는 리듬, 또는 우리의 몸에 내재하는 리듬에 대하여 우리가 자발적으로 밝고 친밀한 교감을 나눌 때 발견된다.” B. Devall and G. Sessions, Deep Ecology, Salt Lake City, Peregrine Smith, 1985, p.7. 드볼과 세션즈에 따르면, 심층생태론의 두 가지 궁극목표는 ‘자기 실현’과 ‘생명중심주의적 평등'이다. B. Devall and G. Session , 앞의 책, pp. 9-14 참조. 이 두 가지는 모두 네스가 심층생태론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드볼과 세션즈는 네스에게 영향을 받았다. 자기실현이란 근대적인 자아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이외의 세계를 포함한 유기적 전체인 ‘자기’ 속에서 나의 작은 자기를 성숙시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중심주의적 평등이란 모든 생명체가 각각 자기 실현하는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생명권 속에서 다른 생명체를 손상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손상시키는 일이 된다. B. Devall and G. Sessions, 앞의 책, pp. 65-69 참조. 이러한 바탕 위에서 드볼과 세션즈는 심층생태론의 기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테제별로 나열해 본다. 인간과 인간이외의 생명체의 행복과 번영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생명체의 다양성은 큰 가치가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생명에 관한 욕구를 만족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생명체의 다양성을 감소시킬 어떠한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 인구의 대규모 감소가 없으면, 인간의 생과 문화의 번영은 없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의 번영도 인구수가 줄어야 가능하다. 현재 인간이 자연계에 개입하는 수준은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정책이 변경되어야 한다.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행동하고 실천할 의무가 있다. B. Devall and G. Sessions, 앞의 책, p.70 참조. 네스, 또는 드볼과 세션즈를 포함한 심층생태론의 주장을 검토해 보면, 결국 심층생태론은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기존의 서구적 사유체계를 들고 있으며, 그 사유 체계의 주 내용으로 인간중심주의, 이원주의, 원자주의, 계급질서주의, 추상적 합리주의를 거론하고 있다. 서양 이론의 틀에 벗어나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생태주의 운동으로 ‘한살림 운동’을 들 수 있다. ‘한살림 모임’의 ‘한살림 선언’에 따르면 한살림 운동은 다음과 같다.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며,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고,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다. 그리고 한살림은 새로운 인식, 가치, 양식을 지향하는 생활 문화 활동이며, 생명의 질서를 실현하는 사회 실천 활동이고, 자아 실현을 위한 생활 수양 활동이다. 결국 한살림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통일 운동이다. 한살림 모임, 『한살림』, 한살림, 1990, 33-43 쪽 참조. ‘한살림 운동의 기본 정신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지하는 생태주의의 사고 체계는 아직 서양 사상과 과학 전체의 운명적 한계를 안고 있고 생태주의에는 철저하지만 더 근원적인 생명의 세계관에서는 약하다고 진단하면서 ’생명 운동‘을 새롭고 창조적인 대안 운동으로 제시한다. 그는 생태주의가 인간과 자연관계에서 높은 대안이 될만한 생명의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기물을 생태계로 인정은 하지만 신령한 생명으로까지는 보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의 생태주의에 대한 불만은 서양의 생태주의가 자연과의 관계에서 소박한 ‘존중’의 윤리는 있지만 근본적인 ‘공경’을 가능케 하는 세계관이 없고, 생태주의가 강조하는 영성은 다분히 인간에게 제한되어 있으며 자연의 신령함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하가 대안 운동으로 내세우는 생명 운동은 생명의 세계관의 기초와 핵심으로서 동학과 풍수학, 그리고 서양의 현대 생태론 등을 탁월한 차원에서 결합하여 기독교의 생명 세계관, 불교의 화엄 세계관, 노장철학과 무속의 생명 원리를 포용하고 있다. 김지하,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동광출판사, 1991. 밥, 솔, 1995. 틈, 솔, 1995. 생명과 자치, 솔, 1996 참조. 그는 우주 생명 전체를 다루고 있으며 원융무애하고 광대무변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생명운동의 현실적 결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이야기는 너무 크며 그의 호흡은 길고 느리다. 김지하는 그의 율려(律呂) 사상에서 아무리 외면적 사회구조 또는 경제구조를 혁파하려 노력해도 결국 그것을 지탱하고 받아들이고 확대시키는 인간의 마음, 민중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는 지구 생태계를 회생시킬 수 없고, 문화가 변하지 않고는 정치, 경제를 근본 구조적으로 혁파할 수 없고, 인간이 변하지 않고는,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변하지 않고는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지하는 새 시대의 비전을 열기 위한 새로운 인간 마음이란 적어도 영성적 인간, 우주적 인간, 우주적 무의식을 가진 깊고 넓은 인간이어야 한다고 내다본다. 새 인간은 우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율려의 사상이 전개된다. 김지하,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1999, 참조. 율려는 기초적으로는 동양적 음악 구조이다. 율려란 따뜻한 계절 6개월에 대응하는 양(陽)의 6율(律)과 차가운 6개월에 대응하는 음(陰)의 6려(呂)를 일컫는 말이다. 율려는 우주의 마음이며, 음악이며, 가락이며, 숨소리이며, 질서이다. 율려가 인간과 우주의 질서를 관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음’인데, 이제 새 중심음을 찾자는 것이다. 양(질서)의 자리에서 음(무질서)를 연주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양도 음도 아닌 양이면서 음이고, 코스모스도 카오스도 아닌 코스모스이면서 카오스이고 카오스이면서 코스모스인 ‘카오스모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율려는 중심 지향적인 모임의 질서도 아니며, 밖으로 퍼져가는 흩어짐의 질서도 아니다. 모이면서 흩어지고 흩어지면서 모이는 그런 질서이다. 김지하는 이것을 미학 이론에 적용하여 ‘그늘’, 또는 ‘흰 그늘’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강조한다. 김지하,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1999, 참조. 그러나 김지하는 그의 사상이 심층생태론보다 사회생태론에 더 가깝다고 고백한다. 그는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의 차이는 인간을 자연적 생명으로 보느냐 문화적 생명체로 보는냐의 차이로 진단하면서, 문화, 정치, 예술을 자연의 연장으로 보는 것은 진정한 생명정치가 되지 못하고, 무위적 자연주의로 퇴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한다. 김지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실천문학사, 1999. 98쪽 참조. 여기서 김지하는 이전의 생명 사상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지만, 아직도 그는 시적 직관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3. 轉 : 녹색을 넘어선 사회생태론 심층생태론이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깊이 있는 시도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심층생태론의 틀 자체에 몇 가지 크다란 한계를 지적하는 사상가들이 있다. 조지 브레드포드는 ‘심층생태론은 얼마나 깊은가’라고 묻는다. 그는 환경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자연과 인류를 파괴하는 문명의 위기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심층생태론에는 정치적 비판력이 부족하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다시 말해 사회구조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George Bradford, ‘How Deep is Deep Ecology’, Hadley Ma., Times Change Press, 1989. Carolyn Merchant (ed.), Radical Ecology, Routledge, 1992, p.102에서 재인용. 그리고 엘슈레거는 심층생태론에 대해 다음 네가지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첫째, 심층생태론은 정통적인 철학이라기보다는 세속종교에 가깝다. 둘째, 심층생태론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신비주의적인 학문에 가깝다. 셋째, 심층생태론자는 사회적으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는 녹색 고집쟁이다. 넷째,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개혁프로그램은 전망 없는 유토피아와 거의 비슷하다. Max Oelschaeger, 'The Idea of Wilderness', From Prehistory to the Age of Ecology, Yale University Press, 1991, p.304 참조. 또한 엔젠버거는 논문 ｢정치생태학 비판｣에서 심층생태론을 포함한 녹색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 순수생태주의는 다양한 생태적 조망을 단순화-동일화하면서, 이를 ‘자연적 한계’로 받아들이는 보수주의로 전락한다. 둘째 녹색정치는 산업주의와 기술에 반동적으로 대립하며,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적 성격을 간과한다. 셋째, 생태주의는 이른바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이해 관계라는 이름 아래에서 계급과 지역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넷째, 계급 사회에서 모든 일반 이익이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가 특수 이익을 가장한 허위 의식이듯이, 녹색의 주장도 일종의 특수이익을 위장하고 있으므로 이데올로기 비판의 차원에서 녹색주의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H. Ensenberger, 'A critique of political ecology', NLR, No. 84, 1974, pp.3-32 참조. Ted Benton, ‘Marxism and Natural Limits - An Ecological Critique and Reconstruction', NLR, No. 178, 1989, pp. 52-53 참조. 심층생태론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사회생태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생태론은 생태사회주의 또는 생태마르크스주의에 까지 넓혀서 일컫기도 하지만, 대체로 머레이 북친의 영향 아래 성립한 생태주의 사상을 가리킨다. 북친은 생태 문제를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파악하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생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태론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적 차원의 문제를 무시하고 인간 - 자연이라는 측면만으로 생태 문제를 바라보는 심층생태론의 발상은 극히 기만적이다. 북친에 따르면 심층생태론은 인류가 환경 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이런 견해는 인간사회 내부의 위기가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사실을 은폐시키고 있다.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환경 위기의 뿌리가 지난 수세기 동안 자리해온 지배의 문제, 즉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 그리고 인간의 자연 지배에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생태 운동은 사회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친의 심층생태론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 감정적 비난에 가깝다. ｢생태적으로 사고하자- 변증법적 접근｣이라는 논문에 나타나는 비판은 다음과 같다. ‘생태기회주의'인 심층생태론은 사유의 건강성을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오늘날 요구되는 진지한 사유에 놀라는 ’나태한 정신적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심층생태론은 ’도구적·분석적·실증주의적 형태라는 서구의 마음과 공허하고 비늘로 덮인 동양의 심장을 낯설게 조합한‘ 것으로 ’정신분열증처럼 변형된 이데올로기’ 일 뿐이다. 생태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심층생태론(또는 근본생태론)은 ‘논리성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 분야는 ‘온갖 것들을 쑤셔 넣은 저장소처럼 서로 논리적으로 어긋나는 경향들이 섞여 다만 무지에 대한 감상적 찬양이란 공통성 속에서 공존하는 그런 분야이다. 그리고 심층생태론이 가지는 ’아시아적 중심성은 더 큰 고통과 해악을 줄 수 있다‘고 까지 비난한다. Murray Bookchin : The Philosophy of Social Ecology, Black Rose Books, 1995. 머레이 북친 지음, 문순홍 옮김, 사회생태론의 철학, 솔, 1997, 136-192쪽 참조. 북친은 먼저 사회 체계의 조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현대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으므로 자연생태론은 자연과학의 차원을 넘어 사회생태론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Murry Bookchin, Toward Ecological Society, Montreal, 1980, p. 67 참조. 북친에 있어서 생태 문제는 사회 문제이다. 그는 사회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자연과 사회 관계의 이론적 통합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Murry Bookchin ; 'Deep Ecology versus Social Ecology', Socialist Register, July-Sep. 1988 참조. 북친은 생태 위기의 뿌리가 맬더스주의자처럼 인구성장에 있다거나, 환경주의자들처럼 기술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현대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착취해야 한다는 관념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관념에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운동은 사회운동이 되어야 하며, 이 운동은 지배와 위계질서를 생산하는 인간 사회에서의 도덕적 변화, 나아가서는 제도 변화까지도 추구한다. Murry Bookchin(1980), pp. 40-43 참조. 왜냐하면 생태 위기의 해결은 전제조건으로 자본주의 위계질서만이 아니라 인류역사 속의 모든 위계질서를 제거하는 데에 있고, 위계질서는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경제제도, 생활양식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해석 등에 확산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Murry Bookchin(1980), pp. 42-43 참조.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신비주의적 영적 접근을 하는 심층생태론과는 달리, 기존의 철학적, 사회학적 전통 등으로부터 합리적 정신을 끌어들이고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생의 전망을 추구한다. 정치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띤다. 북친의 에코아니키스트(ecoanarchist)적 측면을 강조한 글로 다음을 참고할 것. 구승회 : 에코필로소피 ,샛길, 1995. 머레이 북친, 박홍규 옮김,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의 박홍규 역자 해제 참조. 사회생태론은 심층생태론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심층생태론을 한 걸음 진전시켰지만, 심층생태론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4. 結 :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의 통합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근대적 이성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리야 프리고진의 말처럼, 근대과학은 理性의 승리였지만, 이성의 승리는 우리들에게 슬픈 진리를 가져다 주었다. 이제 얼어붙은 진리가 아니라 따뜻한 진리가 요구된다. 세계관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복, 약탈, 착취의 관계가 조화와 친화력 있는 사랑의 관계로 되어야 한다. 서로 모든 대립하는 것은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을 대립 구도 속에 그냥 방치하지 말고 서로 화해시키는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한 편으로는 사회생태론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서로를 조화시키는 길을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심층생태론에 무게 중심을 두는 길을 모색하기로 한다. 우리는 아직 답을 내릴 때가 아니다. 자연과 사회,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인간은 자연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자연 존재이며 사회적인 자연 존재이다. 전자를 강조할 때, 인간은 포이어바흐의 인간으로만 머문다. 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품 안에서만 살던 시절은 지났다. 그리고 다시 자연의 품 속으로 마냥 돌아갈 수 만도 없다. 자연으로 되돌아 감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자칫 문명으로부터의 하차를 초래할는지 모른다. 이것은 단지 인류의 생존에 새로운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회관계의 변화를 도외시한 생태지상주의는 경계해야되겠지만, 그들이 가지는 지배 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격은 인정되어야 한다. 생태중심주의가 생태파시즘, 또는 인간 혐오증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인간중심주의는 극복되어야 하지만, 생태 문제와 환경 문제를 다룰 때 인간과 인간 사회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먼저 인간과 인간 관계, 인간의 사회적 관계, 즉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현재 생태 위기는 다름 아닌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문명이 발생시킨 것이므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과 문명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 싸늘한 경쟁 체제에서 공동체적 협동과 협력 체제로 전환되어야한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의 논리가 비판받아야 한다. 사회는 오로지 자연과 대립하는 가운데서만 현존하며,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한 대상과 과정을 부단히 변형시키고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해 자연을 전유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현존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연 ‘가운데’ 살면서도 자연과 ‘맞서’ 살아야 한다. 이 점이 우리를 어렵게 만든다. “미개인이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자기의 삶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하여 자연과 투쟁하지 않을 수 없듯이, 문명화된 인간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삶을 유지 재생산하기 위해서 자연과 투쟁해야 한다. 이 점은 어느 사회구성체에서도, 그리고 어떤 가능한 생산양식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Marx Engels Werke, 25, S.828. 그리고 인간이 바뀌어야 한다. 의식 혁명, 문화 혁명이 중요하다. 생각, 의식, 가치관, 세계관,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활 양식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이제 필수적인 요구가 되었다.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재난을 줄이기 위한 의식적이고도 귀중한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 양식의 변화는 일상 생활에서 개인적 행위 양식의 변화와 관계한다. 지금의 생활 양식을 고쳐 새로운 생활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큰 틀도 바꾸어야 하지만 작은 틀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욕망과 욕망의 충족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욕망을 버릴 수는 없지만, 불건강한 욕망, 거짓 욕망, 뒤틀린 욕망 구조가 건강한 욕망, 작은 욕망, 녹색 욕망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 소비구조가 변화되어야 한다. 탐욕적, 낭비적 소비에서 녹색 소비로. 큰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많은 경우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멀리’를 내 걸은 쿠베르탕 남작의 근대 올림픽 슬로건은 19세기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더 많은 것’은 ‘충분한 것’으로, 적당한 것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차향이 향기롭다고 차완에 차 잎을 가득 채울 수는 없다. 욕망의 극소화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는지 모르지만, 욕구의 다양화를 모색하면서 욕망의 조절하는 생태 윤리가 필요하다. 소비는 인간에게 축복이면서 저주이기도 하다. 인간의 품성과 선행, 우정, 가족, 지역사회에 대한 고결한 가치들이 부의 추구에 의해 자주 희생되고 있다. 물론 빈곤이 환경문제나 인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이 항상 더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생태적 퇴보를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우리 자신의 욕망에 의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광적인 성장 욕구는 환경을 더욱 더 파괴하고, 세계로부터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도둑질해가고 있다. 우리가 탐욕적 바보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경험하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현대인은 자연과의 싸움이라고까지 말하면서, 만일 그 싸움에 이겼을 때는 결국 자신이 패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만다.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절제된 욕망, 즉 녹색의 욕망이 요구된다. 그리고 녹색 욕망과 생태 욕망은 단순한 검소한 삶, 절제된 삶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선 자연 생태계와의 뜨거운 조화를 이루고자하는 욕망까지를 포괄해야 한다. 우리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생태 욕망은 단순한 절제와 검소에 머무는 수준과 차원을 넘어야 하고, 인간의 풍부한 자기실현의 계기로 작동되어야 하며, 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와 호흡을 함께하는 ‘큰 자아’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생태 욕망은 내면세계의 변화와 함께, 자본주의라는 외적 세계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데서 인간의 자기실현의 계기로서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생태 욕망은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윤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도덕심을 강조하여야 하지만, 사실 자연 환경의 문제는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도 모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탓이요! 운동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것으로 환원하는 것은 문제다. 생태 문제는 정치, 경제, 사상, 문화, 교육, 종교의 각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소비와 욕구를 충동하고 조작하는 자본의 논리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생태 욕망이 현실적인 인간 해방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탈자본의 논리와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생태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체제 또는 경제 구조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태 욕망은 내면 세계의 변화와 함께, 자본주의라는 외적 세계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데서 인간의 자기 실현의 계기로서 작동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단순히 적은 욕망만을 요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하거나 안이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 근대 문명은 인간의 욕망을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그것을 충족시키주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데, 우리의 의식혁명이나 자기 실현이라는 목표를 세워 문명으로부터의 후퇴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인간 욕망의 복잡한 구조를 너무 쉽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바로 심층생태론과 사회생태론이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해 생산관계의 변화와 함께 생산력의 조절 문제를 모색해야 한다. ‘생산력의 조절’과 ‘생산관계의 변화’는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결합의 현실적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5. 解 : 우리의 길, 생명의 길 생명의, 생명을 위한, 생명에 의한 세상이 우리의 답이다. 그런 세상에 다가가기 위한 운동이 살림운동이며, 생명운동이다. 한살림 운동은 ‘생명’을 ‘기계’와 대조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기계는 ‘들어지는 것이다.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기계는 부품의 획일적 집합이다. 생명은 유연한 질서이고 기계는 경직된 통제이다. 생명은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기계는 타율적으로 운동한다. 생명은 개방된 체계이고 기계는 폐쇄된 체계이다. 생명은 순환적인 되먹임고리에 따라 활동하고 기계는 직선적인 인과연쇄에 따라 작동한다. 생명은 ‘정신’이다. 한살림 모임, 『한살림』, 한살림, 1990, 17-22쪽 참조. 생명 운동은 나만 살리는 운동이 아니라 온 생명체를 살리는 큰 살림운동이다. 그것은 살림 살이가 하나되는 공동체 운동이다. 이 세상만물 생명아닌 것이 없다. 하나의 먼지 속에도 우주의 이치가 스며들어 있다했는데(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먼지 속에도 생명이 숨쉬고 있다.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신이 계신 곳이며, 창조주와 피조물은 마치 무용수와 춤이 별개의 것이 아닌 것 처럼 서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구절이다. 이것은 이 우주를 바로 시바신의 춤으로 보고 있는 표현인데, 신의 자리에 생명이란 말을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 우주의 삼라 만상을 모시는 마음, 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생명 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생명은 그래도 인간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우주의 꽃이며, 모든 생명체 중 가장 고귀한 생명체이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인 하리잔을 ‘신의 아들’이라 불렀다. 마더 테레사는 병자를 보고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생명운동은 아버지의 운동이 아니라 어머니의 운동이다. 경쟁과 투쟁, 그로 말미암은 지배와 차별, 그리고 분열은 아버지의 운동이다. 연대와 협력, 보살핌과 감쌈, 화해와 용서는 어머니의 운동이다. 오만과 남용의 파라다임은 겸손과 외경의 파라다임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생명운동은 ‘빨리 가는’ 운동이 아니라 ‘느리게 가는 운동’이다. 생명운동은 ‘크고 많은 것이 좋다’는 운동이 아니라 ‘작고 적은 것이 아름답다’는 운동이다. 생명운동은 시멘트와 아스팔트 자동차로 달리는 운동이 아니라 흙 길을 걸어가는 운동이다. 한 점과 한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공자의 말 처럼, 직선으로 가지 말고 ‘지름길로 가지 마라(行不由徑)’는 말이다. 굽은 길, 에움길로 가라는 말이며, 둘러 가고 에워가란 말이다. 속도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엘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이제 세계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빠른 자’와 ‘느린 자’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농업사회의 경제적 과정은 ‘얼어붙은 속도’로 움직였지만, 오늘의 경제는 컴퓨터 전송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느린 자로부터 빠른 자로 이동해 왔다는 것이 토플러의 진단이다. 그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대결에서 패배한 것도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보다 느린 체제이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현실진단 만하고 사실만 이야기 할 뿐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말을 계속 듣고 쉽지 않다. 생명운동은 여백과 여유가 있는 삶을 지향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책을 주는 사람보다도, 아무런 방해없이 한가로운 여가를 즐기도록 배려해준 사람을 나는 항상 더 고맙게 여긴다고 말한 바 있다. ‘느리게 살기운동’이 생명운동이다. 생명운동은 가지는 운동이 아니라 버리는 운동이며, 무소유·적은 소유에 만족하는 운동이다. ‘정보사회’를 이야기하면서 그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다들 정보비만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보 다이어트와 단식을 통해 정보의 숙변을 제거하여야 한다. 책과 음악까지도 끊고, 일체의 의사소통도 끊어, 자연이 주는 정보만을 한번 받아 보자. 눈을 뜨고 있을 때 보다 눈을 감고 있을 때, 세계는 더 잘 보인다고 한다. 진리는 수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침묵 속에 있다. 바위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을 들어보고, 그 숨소리 속에서 어쩌면 우주의 가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운동의 ‘나’만의 운동이 아니라, ‘우리’의 운동이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나’라는 말을 고집할 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생명적 관계가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내 집, 내 형제, 내 자식은 우리 집, 우리 형제, 우리 자식이 되어야 한다. 언제 부턴지 서양인의 흉내를 내면서 ‘내 생각’을 강조하지만, ‘나’라는 아상(我相)은 버려야 한다. 오늘날 모든 문명의 질병은 ‘나’를 고집하는 데 있다. 결국 생명의 철학, 생명의 정치, 생명의 경제, 생명의 문화, 생명의 예술, 생명의 교육, 생명의 언어, 생명의 말하기, 생명의 글쓰기를 모색하는 것이 생명운동이며, 살림운동이다. 이제 큰 한 숨을 쉴 시간이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