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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불교적 관점에서 본 유전공학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8-16 16:56     조회 : 4123    
불교적 관점에서 본 유전공학 Genetic Engineering : A Buddhist Assessment 글․론 엡스타인 번역․도원(중앙승가대) 당신의 부모가 당신의 유전자를 조작하면서 삶이 시작되는 미래세계에서, 불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당신의 부모는 원치 않는 유전적 질병을 차단하는 것 외에 당신의 성별, 키, 눈, 머리와 살색을 정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의 부모가 불자라면 쉽게 결가부좌할 수 있는 유전자까지 선택할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당장의 사회적인 유행에 밀려, 전체적인 기능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체질과 지능, 주의력, 그리고 아마도 정신력과도 관계가 있다고 소문이 난 유전자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더 이상 찾아 헤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즉시 스스로를 복제해서 자기의 복제된 몸속에 환생할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당신 부모님이 가난한 분들이라면, 그들은 장래의 직업에 대한 탄생전 계약서를 갖고 특정한 직업을 위한 맞춤 유전자로 당신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가타카(Gattaca)’라는 영화에서처럼 당신은 아마 유전적 향상 정도에 따라 분명히 어떤 규정된 사회계급에 속할 것이다. 물론 자연도태되어 산 속에서 명상하는 이상한 수행자들이 여전히 소수 있을 수도 있다. 이 미래세계에서는 당신이 섭취하는 초유부터 당신이 먹을 음식은 이미 유전자조작으로 생산된다. 자연계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어느 정도는 걷잡을 수 없는 유전자가 조작된 나무, 식물, 동물, 곤충,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으로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개조되고, 침식당하고, 왜곡된다. 질병의 형태도 매우 다를 것이다. 본디부터 있던 질병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리거나 새로운 형태로 돌연변이한다. 그렇지만 그때 사람들은 세균전에 사용되었거나 자연환경에 잘못 방출된 유전자조작 병원균, 또는 원래는 무해하지만 급속도로 돌연변이하는 유전자조작생명체에서 독성을 지닌 형태로 재조합된 세균의 맹습으로 고통받는다. 유전자조작은 너무 다반사가 되어서 당신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간단한 실험을 스스로 시작한다. 미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그럴듯할지도 모른다. 유전공학이 뿌리는 인과의 씨앗 우리는 불교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유전공학의 발달이 미래세계에 영향을 줄 인과의 씨앗을 제공하는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유전공학은 자연과 인간성을 둘 다 급진적으로 변형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과학기술보다 더 큰 위협으로 다가선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알다시피, 자연은 지구상의 유정(有情)중생의 공업(共業)의 표지이며, 인성(人性)은, 깨달음의 길로 변화시켜야 할, 사고와 감정에서 생겨난 업(業)의 혼합체이다. 어떤 이들은 업(業)과 고(苦)는 신세계(the Brave New World)에서도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전공학은 불교인들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며, 그 작업은 우리가 현재 근절할 수 없고,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마도 좀더 심사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깨달음과 그 실현을 위한 가능성은 유전공학과 어떤 관계인가? 불교적 관점은 우리의 신체와 신경계의 상태가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또 반대로 마음이 신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에 근거한 윤리학은 심신 둘 다의 청정함을 정신적 향상의 필수조건이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참선할 때, 우리의 신체에서는 정신적 향상의 정도와 공명하는 미묘한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참선이 깊어질수록 심신의 변화도 더욱 깊어진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시대부터 불교도들은 어떤 지리적인 장소에는 참선과 지관(止觀)의 향상을 진작시키는 특별한 자연적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전공학은 개인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신체와 환경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약을 복용하게 되면 신체의 생리기능이 변해서 참선이 힘들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전공학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 신체에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로 인해 깨달음의 길이 방해받을 수 있다. 설령 깨달음의 길에 영향을 끼칠 유전공학의 가능성이 아주 적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심각하게 염려해야 하는 원인이 된다. 과학은 단지 물리적인 영역만을 다루므로, 어떤 종류의 과학실험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위험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율에 비춰본 유전공학 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개념이지만 과학에서는 무시하고 있는 개념은 바로 ‘불살생의 원리 및 유정중생(有情衆生 ; all sentient life)과 그 깨달음의 가능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제1도덕률이다.(유정중생은 중추신경계를 지니고 있기에 고통을 느낀다. 식물들은 지각이 없다고 여겨진다.) 중요하고도 당연한 결론은 고통의 완화와 무사자비(無邪慈悲)이며, 그것은 우리 행위의 근본원칙이다. 게다가 불교는 유전학자건 어느 누구건 간에 인간이나 동물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불교인은 유정중생을 유정중생 자체의 소망이나 염원을 도외시한 채 도구나 물건처럼 취급하면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유전공학에 대한 불교적인 접근방법은 그것이 생명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어떻게 고통을 만들어내거나 완화시키는가, 어떻게 유정중생의 깨달음을 향한 가능성을 돕거나 무력화시키는가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한다. 일부 유전학자들은 이타적인 방식으로 유전공학을 사용하고자 하는 선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농업분야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해충을 구제하려고 노력한다. 의학분야에서는 암과 유전질환에 대한 새로운 유전적 치료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이익과 권력, 명성의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선의라고 할지라도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동물들은 종종 잔인한 방법으로 유전적으로 조작되고, 인간들도 유전자조작식품을 실험하기 위해 모르모트와 같이 취급되고 있다. 생태계의 기본적인 건강과 지상생물의 장기적인 건강 또한 무시되고 있다. 불교인의 두 번째 도덕률은 불투도(不偸盜)이다. 그렇지만 생물공학기업들, 그리고 몇몇 대학들조차 우리들, 원주민, 그리고 자생초목의 유전자를 훔쳐서 특허를 내고, 사용료를 징수한다. 불교적인 접근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부처님은 다른 사람들과 환경과 교류하는 데 있어서 마치 꿀벌이 꽃에서 꽃가루를 취하듯이 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때 이익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불교는 우주를 개방된 체제로 이해한다. 과학적 방법은 이와 대조적이다. 그것은 보통 어떤 의미가 있는 체한다. 그렇지만 대개 ‘현실’세계와는 불충분하고 불완전하게 관계를 갖는 가설의 인공적이고 폐쇄적인 체계를 적용한다. 실험실에서의 사례가 자연계 내에서는 정확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적인 방법론은 그 고유한 제한성 때문에 열린 체계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는 유전적 조작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완전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불교 도덕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공학에서의 특정한 발달은 걱정거리이며, 윤리적 불확실성과 복잡성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불교도 개업의들은 많은 생명체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중요한 방식으로 유전공학에 영향을 받을 것인지, 또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과적 분석 이전에 먼저 그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다음은 커다란 윤리적인 측면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몇 가지 실례이다. ▶유전자조작식물 식물과 음식은 유전공학에 있어서 계속적인 주제이다. 델타 & 파인랜드사는 종자를 받아 다시 심을 때는 싹이 트지 않도록 하는 유전자조작씨앗 기술에 대한 미국특허를 따냈다. 그 씨앗들은 주로 항생제가 함유된 특허처방을 하기 전에는 생존력을 잃는다. 몬산토사는 농부들이 유전자조작씨앗을 수확해도 종자로서는 쓸모가 없어야 해마다 다시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터미네이터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석유에서 추출한 플라스틱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미국과 유럽, 캐나다의 일부 과학자들은 식물의 줄기조직에서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식물들을 유전자조작했다. 그들은 그 식물들이 6개월 내에 생물분해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유전자가 야생으로 퍼진다면 우리는 자연계가 썩어 가는 플라스틱가시가 달린 나뭇잎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보기에도 조화롭지 못한 이 플라스틱은 또한 전체 먹이사슬을 파괴하고 단절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위험에 부딪친다. 무척추동물이 이 플라스틱 식물을 먹고, 다음에는 이 무척추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먹히면서 점차 상위동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마하리쉬경영대학의 분자생물학 교수이며, 전에 국립보건원의 조사팀장이었던 존 파건 박사는 이러한 플라스틱에서 쓰여진 새로운 구성요소가 동물들에게는 독성이 강한 유류라며 경고한다. 하기도 싫은 또 다른 생각은 식물에 붙어 먹고 사는 곤충들을 죽이기 위해 전갈독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된 식물에 관한 것이다. 서부온타리오 대학의 유전학과 명예교수이며 권위 있는 유전학자인 조셉 커민스는 그와 같은 유전자가 곤충들에게 수평적으로 전이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식물을 찌르거나 갉아먹은 새로운 곤충이 창조되어 인간을 포함하여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에게 전갈독을 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실제현장에서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위산이 유전자강화물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유전자조작식품의 섭취는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사자료에 의하면 그 물질의 상당한 분량은 혈류와 뇌세포에 도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신체세포의 자연방어체계는 유전자조작물질을 세포 밖으로 밀어내는 데 전적으로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실험은 유전자조작생명체는 정상체에 비해 30배나 더 빨리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심각한 잠재적 건강위험을 야기한다고 밝혀졌다. ▶이종(異種) 유전자조작 동물의 창조 종종 인간유전자를 지닌 이종(異種)유전조작동물의 창조는 이 기술을 사용하는 더 끔찍한 실례중의 하나이다. 때로는 실험들의 결과로 소름끼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흉물스럽게 변형된 동물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설령 실험들이 ‘성공적’이라 할지라도, 과학적 모델은 동물을 인간이 소비할 어떤 물질(우유, 고기, 약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공장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육식을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불살생(不殺生)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살해당하기 전에 이미 공장식으로 사육이 되는데, 이것은 동물들의 삶에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이종(異種)생물의 창조는 동물들의 삶에 더욱 근본적인 모독이 된다. 새로운 동물들을 창조해내기 위해 주입한 유전자가 인간의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이종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들이 이용하기 위해서이며, 동물들의 고통과 감정과 생각, 자연스런 생활방식, 깨달음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매특허될 뿐이다. 유전자공학이 이런 방식을 택하고 있는 최근의 실례는 물고기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인간유전자를 주입하는 예에서도 나타난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와 미국의 넥스트란 & 앨시온 생물공학기업,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PPL 요법으로 인체와유전자조작기술로 만든 형광누에 Autographa californica 유래 핵다각 체병 바이러스 유전자에 북미산 해파리의 초록색 형광 단백질(GFP)유전자를 재조합하여 만든 바이러스를 5령 누에 체강에 주사한 결과 만들어진 초록색 형광누에 유전적으로 조화할 수 있게 만들려고 돼지에 인간유전자를 주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당신의 유전자를 이식한 개인장기기증용 돼지를 소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장기 중 하나가 수명이 다하면, 당신은 돼지의 장기를 뽑아 쓸 수 있다! 물론 비록 그런 생각과 행동들이 보살(菩薩)로서의 이상(理想)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는 돼지를 희생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인도적인 다른 해결방법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서부유럽국가들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정부에 거부안을 제출하지 않는 한 잠재적인 장기기증자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런 국가에서는 이식용 장기가 부족하지 않으며 돼지를 유전적으로 생산해서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머리의 안테나가 다리로 변하는 호메오틱 돌연변이. 발생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초파리의 homeotic gene에서 돌연변이가 생겨 머리의 안테나가 두 번째 다리로 변한 것. 이는 이미 상식에 속하며 유전자조작생명체의 돌연변이 확률이 자연진화과정에 비해 00% 더 높은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인간유전자조작이 극대화하고 있는 비인간화 현상 점점 더 많은 인간유전자가 유전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간인 새로운 형태의 생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주입됨에 따라 새로운 윤리적 문제가 생겨났다. 그 생명체가 인간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몇 퍼센트의 인간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피망을 먹을 때 그것을 먹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피망이 얼만큼의 인간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억측을 위한 질문이 아니다. 북경대의 중국학자들은 현재 성장속도를 촉진하기 위해 토마토와 고추에 인간유전자를 주입시키고 있다. 육식가들에게는 인간유전자를 지닌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같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또 유전공학적으로 인간 정자(精子)를 생산하도록 조작된 생쥐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인간들 자신은 어떨까? 몇 년 전 텍사스의 그라나다 생물과학연구소는 소위 ‘약제(藥劑)여성(pharm-woman)’에 대한 특허권을 유럽 특허청에 신청했다. 여성을 유전자조작하여 그 여성의 모유(母乳)가 전문의약품을 포함하게 한다는 것인데, 그 여성이 바로 약제여성이다. 또한 실험실에서 인간의 유방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사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유방들은 종양수술이 필요한 유방을 교체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유방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여성들로 영리적인 수요를 활발하게 촉진시킬 수도 있다. 영국 배쓰대학의 유전학자인 조나탄 슬랙은 최근에 인간장기이식에 필요한 목 없는 인간을 유전자조작으로 생산할 것을 제안했다. 런던대학의 생물응용의학과의 교수인 루이스 월퍼트와 같은 저명한 유전학자들은 이 제안에 찬성했다. 병에 걸릴 위험성이 있는 ‘결함 있는’ 인간유전자를 교체하기 위한 유전치료법은 신체유전자구조를 개조하려고 새로운 유전자를 신체 내에 의도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유전자는 한 유기체에서 다른 유기체로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의 도입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유전자치료는 또한 ‘음모 유전자’로 이끄는 위험한 비탈길(처음에는 조절이 가능하지만 점점 더 위험해진다는 의미에서)에 종속되어 있다. 이 비탈길이 점점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한 가지 증거는 부모가 아이의 키를 좀 더 크게 하려고 보통보다 작은 키의 건강한 어린이들에게 유전자조작된 성장호르몬을 실험적으로 투약하는 것이다. 유전공학에 의한 질병치료의 가능성에 대해 고려할 때 우리는 주요한 두 가지 이유 중 한 가지 때문에 병들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대(四大=地水火風)가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적인 용어로 해석하자면 ‘우리가 병들어서 병원체에 대한 우리의 저항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병이나 짧은 수명은 몇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다른 생명을 죽인 데 대한 과보일 수도 있다. 불교도로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불교도로서 우리는 특히 인간존재의 의미를 타락시키는 유전학자의 행태에 민감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치료받길 원하고 있는가? 불교도로서 우리는, 치료받는 과정에서 유전치료의 응용과 발전에 관련된 생명살상의 업보가 더욱 더 무거운 업보를 야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유전적으로 전이된 동물의 장기가 우리 몸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 의식 속에서 인간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도 물어야 한다. 바이러스들은 유전자조작생명체와 상호작용할 때 특수한 위험성을 야기한다. 식물과 동물, 인간바이러스들은 생물권에 포함된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진화적인 변화의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바이러스들은 숙주(宿主)의 유전체에 들어가서 분해한 후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해 숙주의 유전체를 새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신종 바이러스들은 새로운 숙주들을 감염시키고 새 숙주에 새로운 유전자 물질을 전염시킨다. 숙주가 번식할 때에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 보통 바이러스들은 얼마나 치명적이든 간에 자연적으로 발생할 경우에는 생태계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생태계에서 조절될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만일 세포가 유전공학적으로 생산된다면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할 때 ―인간이든 동물, 식물이든― 이 세포질은 또한 새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로 전이되어 그 바이러스의 새로운 숙주들로 퍼져간다. 유전자조작으로 생산된 물질이 포함된 바이러스는 생태계에서는 결코 자연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인 방어기제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자체만으로도 인간과 동식물의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나 영구히 생태계에 폐해를 줄 수 있다. 만연된 식물종의 자연적인 격감은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인류의 광범위한 격감 가능성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생태계들이 아무리 극단적인 위험이라도 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견해는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낙관이다. 유기체적인 생태계에서 인간의 생명과 행복이 우선권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그 생태계의 어떤 존재가 유전자조작생명체의 모든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는 증거 또한 없다. 유전공학은 또한 자연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불교용어로서 ‘자연’이란 의미는 유정중생의 인과를 반영하는 인연의 양식(樣式)을 의미한다. 모든 불교수행의 기반인 생명존중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자연은 또한 생명을 보존하는 생태계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살생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하는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인간, 동물과 다른 유정중생들은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전체 환경에 의존하고 있다. 그 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그와 같은 중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조사(早死)시킬 수 있다. 아무리 미생물의 단계라고 하더라도 생명에너지를 파괴하는 것은 모든 생명이 상호연관되어 있음을 볼 때 좀더 복잡한 유기체에 유독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욱이 야생으로서의 자연은 사람이 빠르게 진전을 이룰 수 있는 효율적인 명상장소를 제공한다. 자기개발에 있어서 자연과의 조화는 자연에너지가 상서로운 수행장소를 찾아내는 능력을 포함한다. 자연은 우리 심신의 심오한 작용을 관찰하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야생의 상태에 홀로 있을 때는, 참으로 고민거리가 되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어지고, 우리의 걱정거리들도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가 유전공학적으로 조작되어서 더 이상 자연의 양식(樣式)과 공명(共鳴)할 수 없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자. 이것은 어떤 과학적 데이터로 끝나버릴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다. 생화학전쟁은 유전공학이 인간생명에 대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단기적 위협이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대량살상을 야기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전쟁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국제적 테러리스트들은 이미 유전자조작으로 생산된 바이러스의 실전배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방식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장비와 기술을 군사적으로 응용하여 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조절 불가능하다. 1980년대 후반에 구 소련은 유전자조작 병원균을 포함한 생화학전쟁 연구에 6만 명 이상을 종사시켰다. 더욱 끔찍한 연구계획 중 하나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천연두를 결합시키려는 시도였다. 아무도 대부분의 유전학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무엇을 연구해 왔는지는 모르고 있다. 1997년 6월, 윌리암 코헨 미국 국방장관은 일련의 병원균이 어떤 소수민족만을 제거하기 위해 그 소수민족의 특성을 겨냥하여 제조되었다고 경고했다. 유전적 결함복구, 질병치료, 식량증산 등 언론매체에서 떠들어대는 유전공학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엄청난 여러 사례들을 볼 때 나는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비싸고 버거운 것이라고 믿는다. 다국적기업들이 미래에도 엄청난 이익을 얻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담보로 하고, 깨달음을 향한 우리의 가능성을 침해하면서, 생물권(生物圈)을 저당 잡혀야 한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한다. 유전공학은 유정(有情)이든 무정(無情)이든 소수의 이익을 위해 지구상의 생명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해 심각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유전공학을 특별하게 취급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위력과 비철회성(非撤回性)이다. 인간과 동식물을 파괴할 수 있는 그 능력은 다른 모든 기술들보다 양적인 면에서 엄청난 부분이며, 실수할 수도 있는 여지마저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 기술이 결함을 가진 결과를 가져와도 우리는 이를 환수해서 수리할 수 없으며, 무한한 미래세계에 부정적인 유산을 남긴다. 만일 다른 형태의 생명을 존중하면서 인류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유전공학의 분야가 있다면, 과학적인 위험평가와 사전예방원칙의 이용뿐 아니라 광범위한 윤리적 지침을 배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상의 정책수립은 공적 투입을 위한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전공학의 제안된 연구에 대한 현재의 도덕적 질문에 불교윤리의 전망을 도입하는 기회가 있다. 그것은 또한 유전공학산업이 학계와 정부와 맺는 계속적인 관계에서 대중(大衆)이 단속과 정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과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의 경향이 가진 굽힐 수 없는 진전속도를 늦추는 것조차 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다행스럽게도 잘 훈련된 소수의 그 분야 과학자들이 발언을 높이고 있다. 그 중 몇 사람을 거론한다면, ‘책임성있는유전공학회’의 스튜어트 뉴먼 교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리차드 스트로만 교수, 개방대학의 호매완 박사, ‘걱정하는과학자연맹’의 마가렛 멜론과 제인 리슬러 박사 등은 현재 발생하는 위험을 관측하고, 용감하게 그들의 양심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해결의 열쇠는 명백하다. 그것은 일반 대중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교육시키는 데 달려 있다.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반시민들이 함께 협력해서 유전공학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의 미로를 헤쳐나가 해결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집단적인 지혜의 토대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가 문제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성공할 가능성은 있다. 반다나 교수의 지도하에 있는 ‘제3세계조직망’은 유전공학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저항하는 인도와 다른 저개발국가들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강화된 인식이 최근에 유럽지역에서 거대기업의 대량공급계획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유기농법음식 압력단체와 ‘자연법을위한어머니모임’ 같은 단체들이 유전자조작식품을 국립유기농법표준규칙에 속한 유기농법음식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에 대해 민간교육 캠페인을 통해 결집하였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유전공학의 문제는 우리가 날마다 부딪치는 대다수의 문제들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모두 탐진치와 같은 심신의 고통의 결과이다. 유전공학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미치는 손상정도에서의 차이와 우리와 환경에 끼칠 효과의 비철회성(非撤回性)의 문제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불교인들의 질문에 대해 단순한 정답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격심한 위험들을 멈추기 위해, 또 공공의 인식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그룹들과 활발히 작업하기로 결심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직접 마음밭을 일구는 작업에 들어가기를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깨달음을 향한 모든 유정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자비와 지혜를 생기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들은 문제를 외면하고, 업보가 어디에든 떨어지도록 놔둘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동서종교 Religion East and West 2001년 여름호) * 출처: 인드라망 3호(2001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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