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대안학교] 아름다운 배움터를 찾아서 |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7-24 17:26
조회 : 3597
|
|
|
아름다운 배움터를 찾아서
- 실상사작은학교에 참여하게 된 까닭
연동진/실상사 작은학교 공동체연수교사
아름다움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다.”
마음속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꼭꼭 매달아놓은 이 말을 슬쩍 꺼내 볼 때마다 나의 온 몸은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가볍게 떨린다. 얼마나 감격스런 말인가, 아름답게 산다는 것! 아름다움 속에 나의 모든 삶과 이상과 가치가 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내 삶과 이상과 가치가 드러나는 무늬이다. 아름다움은 내 생애의 순간순간 나를 드러내는 나다움이다. 가장 나다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모든 순간 간절한 마음으로 나다움을 찾으며 이렇게 찾아지는 나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자 힘쓴다. 이것이 내 생애의 전부이다. 하늘을 보는 것, 버들피리 만들어 부는 것, 호미질 하는 것, 낫질하는 것, 자전거 타는 것, 밥 먹는 것, 똥 싸는 것, 책 읽는 것, 토론하는 것, 웃는 것, 장난치는 것, 절하는 것, 좌선하는 것….
아름다움은 연결시키는 패턴에 대하여 예민하게 감응한다는 의미이다. 아름다움은 단지 관념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을 연결시키는 패턴에 대하여 예민하게 감응하는 '나의 모습 자체'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위하여, 곧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에 주목해야 하며,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1997년은 내가 강한 영감을 받은 해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때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하는 귀농강좌를 들으면서 "와, 진짜 학생들 가르치는 것과 똑 같네!"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강대인, 정경식 같은 분들의 농사 경험을 가르치는 일에 적용시켜 많은 고비를 잘 넘겼으며 좋은 결과도 많이 얻었다. 예를 들면 '욕심을 내어 벼를 너무 배게 심으면 병이 생긴다'를 교육적 상황에 적용시켜 '한 교실에 너무 많은 학생들을 몰아넣으면 문제가 생긴다'라든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지식을 주고자 하면 학생들은 짜증을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장애가 생긴다'와 같은 생각을 이끌어냈다. 벼를 튼튼하게 기르기 위해서는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넉넉하게 주어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런 상식이 현실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막혀 있는 게다.
새로운 눈뜸이 필요하다. 그 눈뜸은 주변의 다양한 상황을 서로 연결시키는 패턴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곧 아름다움에 대한 눈을 뜨는 것이다. 나는 그 눈뜸을 농사와 교육의 관계에서 찾았다. 농사와 교육을 연결시키는 무수한 패턴이 무한대로 열린 경험과 직관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들였다. 이것은 이제까지 몸에 익혀온 분석과 종합, 실험과 검증의 세계와는 다른 영감과 깨달음의 세계였다. 앞의 세계는 끊임없이 나누고 대립시키는 세계이고, 뒤의 세계는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켜 조화를 추구하는 세계이다. 앞의 것은 분열된 것을 억지로 종합하는 세계지만 뒤의 세계는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아 그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묘한 이치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앞의 것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또 다른 한 축으로 뒤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근원적인 문제가 풀릴 것이다. 97년 이후 몇 년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여러 사조들을 살펴보며 지냈지만 결코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을 번복시킬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근대성을 극복하는 '대안이 되는 삶'에 대한 방향을 똑똑히 세운 것이다.
근본 공부
나의 내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분명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공부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작년 '유랑공부'를 계획했다. 어떤 분으로부터 곁가지 공부만 하지말고 근본 공부를 해 보란 말을 듣고 더 열심히 배움을 찾아다녔다. 대안 교육 단체나 귀농운동본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곳, 또 나 나름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을 찾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으나 혼미한 상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좀더 안정된 짜임새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내가 실상사 작은 학교에 참여하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실상사에 내려오기 전에 나는 '농사를 지으며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이면서 근본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 먹었다. 농사는 자연과 만나면서
건강하고 조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 중에서 내가 찾은 유일한 것이었으며, 내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교육은 내가 어릴 때부터 줄곧 지녀왔던 꿈을 이루는 길이면서 내가 참다운 사회성을 몸으로 익혀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참다운 사회성은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사회와 참답게 하나 되어 사는 삶이다. 그리고 지금 실상사 작은 학교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지역의 삶에 뿌리내린 교육을 하고자 한다. 교과 내용은 '나의 삶으로부터 출발하여 지역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거쳐 더 큰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짜여질 것이므로 학생들과 만나는 일은 이 지역에 뿌리내린 나의 삶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조선후기 국문학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다면 남원지역을 배경으로 한 「춘향전」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며, 삼한시대 역사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그 시대의 유물․유적인 추성이나 두지터 답사 따위를 중간 고리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 뿌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이 지역 지명에 대한 공부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공부를 통해 교사와 학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사회적 삶을 익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본적인 영역에서는 가치관, 세계관의 문제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삶의 방향성을 견지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며, 인간존재와 삶, 세계의 실상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으면서 선지식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때, 자칫 빠져들지 모르는 온갖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으며 가장 조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앞의 둘, 그러니까 농사와 교육은 나의 구상과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 해낼 재간이 있을지 모르나 근본공부는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결국 농사와 교육마저 위기에 처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이 참으로 옳았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곳 실상사가 나의 근본공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도 알았다. 교사 연수에 참여하게된 3월 20일부터 지금까지 50여 일은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시간이었다. 이것은 실상사라는 배경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상사 작은학교
내가 실상사를 앍게 된 것은 98년 가을 실상사에서 귀농전문학교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실상사로부터 들려오는 풍문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실상사를 알게 된 그때부터 나는 실상사를 반드시 와보리라 다짐을 하곤 했다. 99년 봄에는 제 2기 귀농전문학교에 참여하고 싶었으나 유랑 공부 일정과 맞지 않아 올 수 없었고, 8월 말 어떤 계기가 있어 와 보고자 했으나 강원도 고향에 다녀오자는 아버님의 말씀이 있어 또다시 올 기회를 잃었다. 그러다가 1월 중순 민들레 출판사에 갔다가 실상사에서 작은 학교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동진씨에게 꼭 맞을 것 같은데 어때요?"라는 김경옥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선뜻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는걸요" 이렇게 대답해 버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상사에서 학교를 준비할 것이라는 직감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참으로 오래 간만에 만난 한 후배로부터 '자기는 실상사를 무지 좋아하고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작은 학교를 준비하고 있더라. 그리고 거기에 두 분 선생님이 있는데 참 좋은 분들이더라.' 이러면서 그는 농사를 잘 짓는 선생님이 하나 있다고 내 얘기를 해 두었다는 거였다. 자세한 얘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이곳에 참여하게되기까지 두 달은 신기하리 만큼 나의 인연이 실상사 작은 학교로 맞추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작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이곳에 올 계획이 무산된 까닭마저도 내가 작은 학교에 참여하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곳에 와 있다. 과연 실상사는 내가 귀농과 공부를 위해 돈을 좀 벌어두겠다는 욕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훌훌 털어 버리게 할 만큼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실상사는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최초 가람이면서 조계종 종단개혁을 이끌어냈던 선우도량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또 지금은 '모든 것이 한 생명'이라는 화엄사상에 뿌리를 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을 벌여나가는 곳으로 어느 스님의 말처럼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창조되는 곳'이다. 실상사에 도도하게 흐르는 정신은 '연결시키는 패턴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겠다는 나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아니 이곳에서 하고 있는 공부는 내가 미처 눈뜨지 못한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람은 깨닫는 만큼만 아름답게 살 수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된 한 생명임을 깨달은 사람은 완전한 존재로서 부처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짓을 지을 수 있다. 나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인격을 지향하는 모든 행위, 즉 가르침과 배움을 교육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것이 한 생명임을 깨달아 나가는 그 삶이, 그 노력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달 여 전 쯤 어떤 분이 교사상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교사는 완전한 인격을 지향하는 사람이며, 현명한 지혜와 폭넓고 깊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고, 큰사랑을 품은 사람이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격인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수행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과연 그렇다.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은 모두 자기 수행을 성실하게 하는 분들이었으며, 그분들로부터는 언제나 살아 있는 깨달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분들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인격적 감화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다. 그 분들과 나를 연결시키는 패턴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 또한 지극한 아름다움이다. 이곳에서 그와 같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이다. 이러한 만남은 물론 실상사 작은 학교와 맺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더불어 삶
나와 함께 교사 연수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도 모두 제각기 교육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으리라. 머지 않아 서로가 축적해온 이러한 생각을 쏟아놓고 작은 학교에 대한 구상을 하리라. 아마도 9월 학교 요람이 나오기까지 이 작업이 얼추 마무리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고집할 뜻이 전혀 없다. 모두가 서로의 생각에 대한 애착을 크게 가지면 결국 함께 일을 해나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다고 양보도 아니다. 그냥 내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다. 『노자』에 '생이불유(生而不有)'란 말이 있다. 생각은 했으나 그 생각을 나의 것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써 함께 연수에 참여한 분들과의 관계를 살찌운다. "늘 최선의 선택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간다"는 이경재 선생의 말이 이와 같은 뜻이 아닐까?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보다 낫다. 앞의 것은 더 나아갈 여지가 있지만 뒤의 것은 그 자체로 끝을 보아야 하니까. 내가 즐겨 쓰는 터살이나 더불어 삶(상생, 相生)이나 공존 같은 말은 지향해야할 높은 가치임과 더불어 지금 이 순간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이며, 학생들과 더불어 배워가야 할 삶의 철학이다.
마무리
아직은 내가 이곳에 대하여 구구절절 얘기를 늘어놓을 때는 아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느낌은 아주 좋다. 천여 년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어온 실상사라는 배경 탓인지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좋고, 또 절 스님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의 배려심도 깊고, 연수팀에 결합된 선생님들도 좋고 그 관계도 좋다. 공부도 재미있고, 좌선도 뜻 깊다. 지내면 지낼수록 풍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듯 아늑하고, 학교 일이 잘 될 거라는 예감도 산뜻하다.
덧붙이고 싶은 말. 지금 작은학교 교사 연수에는 모두 여섯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여섯 교사가 감당하기 힘든 교과 내용은 스님들이나 이 지역에 계신 분들의 도움을 얻어 채워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다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수학과 과학이다. 두 교과는 언제나 학생들 곁에 있는 분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두 분 선생님과 하루 빨리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그래서 내년 3월까지 해야 할 모든 일, 그러니까 교사들 간의 호흡을 맞추고 믿음을 다지는 일, 공부하는 일, 자기를 다스리고 전체와 조화 이루기를 훈련하는 일, 학교의 큰 틀과 작은 영역 모두에 관해 구상하는 일, 요람을 만들고 교과과정을 마련하는 일 등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일을 함께 하고 안 하고는 큰 차이가 있을 줄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기다림 더욱 간절하다.￭
* 출처: 인드라망 2호(2545년 3~4월)
|
 |
|
|
|
|
게시물 163건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