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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 불교귀농학교를 마치며 |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7-24 17:19
조회 : 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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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귀농학교를 마치며
맹다혜/불교귀농학교 6기
불교귀농학교 6기 졸업식.
지금껏 많은 학교를 다녀봤지만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개근상을 받았다. 2달도 채 안 되는 교육이었지만 처음으로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게 ‘아쉽다’, ‘참, 정도 많이 들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불교귀농학교에 오게 된 것은 사실 우연에 가까웠다. 농민신문에 손톱만한 광고를 보고 아버지께서 ‘한번 가볼래?’ 하신 걸 ‘그러죠, 뭐’ 해서 왔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그럭저럭 농사를 시작했었고 어렴풋이 ‘아, 농사 지으면서 살아도 좋겠다’하는 마음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그 과정을 생각하면 참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있지만 어찌 되었든 아버지와의 긴 싸움 끝에 이 ‘농사’에서 서로의 합의점을 찾고 모처럼 모녀간의 정이란 것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처음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는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얼 하고 살아야겠다는 희망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줄줄이 소세지 같은 대열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배짱이었다. 그래도 요놈의 학교를 그만둘 것인가 말 것인가로 몇 달을 고민했는데, 그러다가 ‘한번 사는 인생인데 좀 간 크게 살아보자’는 욕심으로 기어이 그만두었다. 그리고선 길고 긴 백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정말 백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심난해서 견딜 수 없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오늘 아침에 자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등 부모님 속을 있는 대로 긁어놓기도 했다. 한 학기였지만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에 대한 그리움도 컸다. 자기가 싫어서 때려치운 학교를 이제와서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도 참 별 것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대학 같은 거 안 나와도 살 수 있어!’ 하던 자신에 넘친 말은 다시 입밖에 낼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단지 밥값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하던 농사일을 거들었는데 풀을 뽑는다고 땅바닥을 길때면 땡볕에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 그 자체가 방바닥에서 빈둥거리면서 하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좁은 강의실에서는 답답해서 참을 수 없던 것이 논두렁 밭두렁에 서있으면 그 넓은 땅을 돌아나오는 바람이 가슴팍을 칠 때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행복감을 느꼈다.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 기분도 좋았다.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 주시기도 해서 집에서 욕만 얻어먹느니 나가 일하자는 생각도 있기는 했다.
어쨌든 거창하게 말하면 방바닥 장판이나 뜯으면서 염세주의에 젖어있던 애가 어느 날 열심히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농사일이 맘에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선택한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이번 현장교육에 가서 인생설계 발표 시간에도 한 이야기인데, 집에서 놀면서 가끔 시내에 나갈 때가 있었는데 안 그래도 자신감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던 때에 내가 단지 돈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무시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저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면 지금 무슨 일로 힘든지 그런 것 따윈 별 관심도 없겠지. 내가 이걸 사면 좋아하고 사지 않으면 싫어하겠지. 세상에 이런 빌어먹을 상황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할 만한 자격도 없지 않나 등등…
그런데 시골에서는 아무리 땅바닥을 기어다녀도 내가 비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찮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되려 땅바닥을 길 때가 훨씬 맘 편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다른 할 일도 없었고 또 다른 데서는 ‘너 같은 건 필요 없다’는 것 같아서 농사를 짓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 불교귀농학교는 5월초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집이 천안이라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전철 타고 가서는 강의 듣고 어디 가서 대충 자다가 다음 날 집에 오고 그랬는데 그래도 좋았다.
강의 끝나고 아줌마, 아저씨들과 뒤풀이하는 게 가장 재미있었는데, 왜냐하면 대학교까지 다녀봤어도 비틀거리면서 집에 가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것이 농사 짓는다고 띄워주시기도 하고, 또 나도 여기에 오면 할 말이 생기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농사를 짓는다면 사이코 취급받는 게 현실인데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한 사람들끼리 모였다는 것 자체가 할 말을 만드는 것인 듯하다.
강의를 들으면서는 지금까지 어렵풋이 생각해왔던 것들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걸 ‘사상무장’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정경식 선생님과 김준권 선생님의 강의는 화선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다. 아마 직접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라 그런가 보다. 두 분의 번뜩이던 두 눈도 부러웠던 것 중에 하나다. 자기의 확신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힘든 것이겠지만 ‘나도 한번 저런 눈을 가져봤으면’ 할 정도로 늘 보던 사람들의 별로 반짝이지도 않는 밋밋한 눈하고는 달랐다.
현장교육은 실상사로 갔다. 손모심기, 황토염색, 호밀베기, 발우공양, 지리산댐 건설예정지 견학 등으로 3박 4일을 보냈는데,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절이란 데가 이래서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합장하고 반배를 하는 뜻이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라는데 쑥스럽다가도 참 멋진 인사법이란 생각이 들어 괜히 하고 싶어졌다. 지리산도 맨날 보던 동네 뒷산하고 다르게 높고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어서 맘까지 후련했다.
발우공양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발우공양은 둘째 날 저녁부터 했다. 마지막날 저녁에 전날 배운 건 거의 기억을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어쩌다 밥을 퍼 나눠주는 걸 하게 됐는데 맨 첫 번째 지산스님이 앉아계셨던 게 잘못이었다. 앞에 계신 분이 스님이란 사실 때문에 얼어 있다가 순간 밥 퍼담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스님 밥그릇을 받지도 않고 스님이 들고 계시는 그 상태에서 주걱으로 밥을 퍼서 가져다 담은 것이다. 스님의 놀란 얼굴과 바닥으로 떨어진 밥알 무더기, 그걸 주워담는 내 웃긴 모습…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자 스님이 밥그릇을 들고 ‘이걸 받아요’ 사정을 하셨다. 등에 식은 땀이 한줄기 흐르고 나서 보니 발우공양 시간이 끝나고 지산스님께서 마지막에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잘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날 인생설계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는 내 솔직한 얘기를 해도 이해해 주실 거란 생각에서 얘기를 했는데 많이들 웃어주셨다. 다른 분들 이야기도 솔직했다.
이번 6기는 다른 기보다도 다양하게 자기 일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연극인, 노동운동가였던 분(이 두 분은 부부이신데,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전교조 선생님이었다는 분, 대안학교 선생님, 디자이너, 기자,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하는 분,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자비의 집에서 일하는 분 등….
그분들 인생설계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게 나한테는 그 동안 무미건조했던 생활에서 오는 좁은 식견을 넓힐 수 있던 일이었다. 실상사를 오며 가며 같이 이야기했던 ‘또라이’ 아저씨가 있는데 그분과는 자란 환경도 비슷하고 서로가 사이코적인 정도가 비슷하다는 동질감으로 내내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 따라 같이 온 아이들 둘이 어른들끼리는 딱딱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띄워주어서 다들 ‘애들 때문에 재미있었다’는 얘기도 했다. 귀농학교의 절정은 아마도 현장교육인 것 같다.
이것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만 접고, 6기 진행하면서 날이 갈수록 파리한 얼굴과 처량하게 풀린 눈으로 마지막 뒤풀이까지 같이 앉아있던 임양혁, 김재영 간사님께 미안한 마음이고, 책거리 때 음식 준비해주신 분들, 어린 것이 가끔 나이를 잊어먹고 나대는데도 이해해주신 우리 6기 회장님, 고생 많이 하신 사무실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불교귀농학교는 불교적인 것들 - 연기적 세계관, 너와 나는 하나다 -을 바탕으로 귀농을 실천하고자 하거나 귀농이란 관점으로 생활을 밑바닥부터 바꾸고자 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기술적인 것들보다는 마음가짐에 관한 것들이 주된 강의내용이다. 답이 너무나 명확한 것들이라 반복되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좀더 개선되고, 현장 견학의 기회를 더 늘리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 오면 외로운 마음들을 들어주는 뒤풀이와 뒤풀이를 끝까지 지키는 파리한(^^) 두 간사가 있고 나름대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있는 곳이다.
남들 가는 삶에 어떻게 얹혀 갈 생각보다는 힘들더라도 주인이 되고 싶은 분들은 여기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불교귀농학교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다른 이들에게도 많이 알려주셨으면 한다. 그래야 너와 나의 잘잘못을 치밀하게 따지고 너와 내가 머리 아프게 싸워야 하는 지금 사회가 좀 살고 싶은 곳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전까지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양 개인적인 인간이었지만 여기를 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조금은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조심스럽게라도 자부할 수 있다.
동문들이 귀농의 꿈을 다지고, 또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서로 든든한 동반자로 남을 수 있도록 동문회를 잘 운영하는 일이 남아있는데, 이런 일은 서로의 연대가 중요한 것 같다. 조직력을 키우기 위해(!) 총무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만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도와주실 거라 믿고 있다. 바쁘시더라도, 그리고 좀 어설프더라도 이해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 출처: 인드라망 2호(2545년 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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