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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 지리산은 어떤 씨앗을 뿌릴까 |
|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5-04 14:08
조회 : 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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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이야기.TIF (70.1K), Down : 16, 2006-05-04 14: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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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어떤 씨앗을 뿌릴까
향천 이해경 / 실상사 귀농전문학교 교감
새천년의 새아침이 밝았다. 세계는 새 천년을 환희로 맞이하였다. 지난 세월의 모든 고통과 억압과 갈등이 끝나고 새천년에는 기쁨과 평화와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지리라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냉정해진다면 지난 세기에 뜨는 해와 새 천년에 뜨는 해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탐욕과 위선과 폭력과 이기심은 지난 세기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새천년이라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우리는 항상 희망을 노래하기 앞서 그 희망을 위한 씨앗을 뿌린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없이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치 농부가 봄에 씨앗도 뿌리지 않고 가을의 결실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농부가 가을에 거두게 되는 결실이라는 꽃은 그저 가을이 되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지난 세월의 인고 속에서만 피어나는 고귀한 꽃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턱대고 들떠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처럼 희망(자각, 생명, 공생)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지리산처럼 살리라 - 자각의 씨앗
선(禪)의 공안에 “흔들리는 깃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요, 깃발도 아니요, 바로 그 깃발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난 세월 마음속에 온갖 깃발을 가지고 살아왔다. 물질적인 쾌락, 출세, 명예, 성공 등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깃발들이다. 이 마음속이 깃발들이 흔들릴 때마다 그것을 좇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 결과 인간성이 황폐화되고 자연과 환경은 극도로 파괴되었으며, 삶도 갈수록 고되게 되었다. 새천년이 된 지금도 그러한 모습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삶은 결코 미래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파멸의 구덩이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오만함과 계속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겠다는 탐욕심이 있는 한 새천년의 희망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의 씨앗을 뿌릴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실상사 생태공동체에는 지리산을 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지리산은 금강이나 설악처럼 결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산이면서도 그 산을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활력의 젖줄이 되는 어머니 산이다. 지리산은 새 천년이 되었다고 들떠 날뛰는 우리의 모습과 같은 그런 산이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그저 그대로 그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지리산의 모습에서 새천년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지리산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새 천년 새아침 우리는 먼저 지리산처럼 살리라는 다짐을 해보자.
흙과 함께 살리라 - 생명의 씨앗
이 땅이 죽어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된 생명줄이 죽어가고 있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새 생명이 잉태할 자궁도, 돌아갈 무덤도 없어져 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숨구멍을 콱콱 틀어막아 질식사를 시키고 있고 농촌에서는 농약과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마구 뿌려 약물중독사를 시키고 있다. 우리 어리석은 인간은 흙이 죽어가면서 내뿜는 독소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고스란히 자신의 몸으로 전해지고 있어도 여전히 그것을 모르고 있다. 마치 마약중독자는 그저 순간적인 환락에 취해 마약이 자기 자신을 망치고 있음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 인간도 탐욕과 쾌락에 도취해 그것이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유전자 조작이다, 생명복제다 해서 무슨 커다란 업적인양 난리법석이다. 그것은 인류가 파고있는 또 하나의 파멸의 구렁텅이 일 뿐이다.
우리가 새 천년에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죽어가고 있는 땅(흙)부터 살리는 일이다. 땅을 살리려면 바르고 건강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사의 참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 농사는 하늘과 땅의 정기와 인간의 노동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천지인 합작인 것이다. 천지만물의 생명체들도 이 합작에 어김없이 참여한다. 그러니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한 농사는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는 일이다. 제조업의 상품생산도 단순히 1차산업에서 생산된 자재들을 사용해서 변형시킬 뿐이다. 서비스산업이라는 것도 오히려 생명체를 상품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세계 인구가 60억을 넘어섰다. 이 거대한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우리가 지금처럼 흙과 농사와 생명의 소중함을 알 지 못한다면 새 천년에 그처럼 고통스러웠던 IMF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한 식량위기를 맞이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새천년 새아침 우리는 먼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흙과 함께 살리라는 다짐을 해보자.
더불어 살리라 - 공생의 씨앗
지금 우리는 무한경쟁의 세계로 달려가고 있으며 새천년에도 그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무한경쟁의 세계는 독점의 세계다. 독점은 다른 사람과는 관계없이 혼자만 살아남고, 혼자서 가장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무한경쟁이란 소위 극단적 이기심의 그럴듯한 포장일 뿐이다. 무한경쟁 속에서는 지배와 소유관계는 있을지언정 참된 인간관계는 없다. 인간의 심성이 파괴되고 가정도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게 된다. 결국 무한경쟁이 가져올 결과는 공멸일 뿐이다.
- 인드라망지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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