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인드라망 전문위원

어느 날 아침, 툇마루 앞 탁자 위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배웅’해드린 지 약 2주일만이다. 어머니께서 떠나시기 전날 밤, 나는 어머니께 “어머니, 이제 나비가 되어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목이 메도록 펑펑 울었다. 눈물이 고여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는 내 눈 바로 앞에서 81세의 어머니는 간암 말기의 고통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잘 알았다. 나도 안다.”라고 말하시는 듯…. 그렇게 어머니는 주무시기 시작한 지 약 3시간만에 나와 아내, 그리고 숙모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이 날아가셨다. 정말 편안한 얼굴로. 그런데 그 나비가 호랑나비가 되어 다시 돌아오다니….

분명 이것은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아마도 어머니 잃은 슬픔에, 지나가는 나비 한 마리라도 붙들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가련한 아이의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누가 뭐라 하든, 나는 그 호랑나비가 분명 어머니께서 돌아오신 것이라 믿는다. 내가 반가운 마음에 그 나비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 놀랍게도 나비는 처음에 오므리고 있던 날개를 순간 옆으로 활짝 펴 주었다. 또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고 믿은 나머지 내가 어머니 방을 배경으로 나비 사진을 찍으려 하니, 나비는 두 날개를 바짝 위로 치켜세워서 어머니 방과 함께 날개가 사진발을 잘 받도록 자세를 취해주었다. 내가 놀라서 아내를 부르자, 아내가 문을 왈칵 열고 툇마루로 나오는 순간 나비는 놀란 듯 훌훌 날아가 버렸다. 아쉽게도…. 그런데 또 놀랍게도 바로 그 다음날도 그 호랑나비는 같은 곳으로 날아왔다. 이번에는 그 탁자 위에 놓인 아내의 샌달 신발 위에 사뿐히 앉았다. 아마 어제 아내가 문을 열고나올 적에, 당신이 놀라 도망가 버린 것이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자세히 보니 한쪽 날개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아마도 흩날리는 비에 젖어 길을 헤매다 다쳤거나, ‘재수 없게’ 거미줄에 걸려 거미에게 근사한 밥상을 차려줄 뻔했다가 약간만 빼앗기고 간신히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닐까 했다. 어미 잃은 아이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이렇게 이틀 동안 어머니는 호랑나비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셨다. 아쉽게도 3일째부터는 오지 않으셨다. 그러나 마침내 자유롭게 나비가 되어 훌훌 날아가셨다는 것을 아들에게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다시금 찾아오신 어머니가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나비만이 아니다. 마당의 참새가 어머니고 저 멀리 뻐꾸기가 어머니며 잠자리가 모두 어머니다. 부레옥잠이 어머니고 취나물이 어머니며 심지어 텃밭의 풀조차 어머니가 아닌가. 어머니가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들여 뽑아내려고 했던 풀조차 말이다. ‘만물이 모두 나’이기도 하지만, 지금 나에겐 ‘만물이 모두 어머니’다. 이 만물은 끊임없이 시공을 초월해서 ‘돌고 돈다’.

따지고 보면 도대체 어머니란 무엇인가. 나를 낳아준 존재, 길러준 존재, 나의 생명을 잉태하고 그 나약한 생명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올바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젖으로, 몸으로,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주신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바로 이 우주가 온통 나의 어머니가 아닌가.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불과 3주일 만에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자는 잠에’ 조용히 떠나신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많이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 속에, 삶과 죽음은 모두 하나의 생명 활동 과정임을 확신한다. 죽음이야말로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완성’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제대로 살아야 함을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더 이상 ‘자연스런 죽음’은 슬픔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눔과 환송의 과정으로, 보다 큰 생명 활동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약 3일 전, 담당 의사 선생님은 “현 상태라면 대개 ‘중환자실’로 가셔야 합니다. 중환자실로 가게 되면 인공 산소호흡기를 쓰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실건가요?”라며 우리 입장을 물었다. 아내와 나는 “중환자실로 가시면 면회도 아침 저녁 잠깐씩만 하게 되어 저희와 사실상 격리되는 것이고, 또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병원의 기계적 처방에 일방적으로 종속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1인용 병실에서 가족과 함께 남은 시간을 평화롭게 나누시다 자연스레 가시도록 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도 “저도 그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힘을 실어 주셨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다른 세상으로 ‘배웅’하면서, 비유컨대 구급차에 태워드리기보다는 천천히 함께 걷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았음을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까지 교감할 때, 슬픔과 행복을 함께 느꼈다. 그 교감의 순간들은 내게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 듣고서 가시기 직전 밤에, 어머니께 “우리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하면서 “어머니 가시더라도 어머니 말씀하신대로 다 해드릴 터이니 조금도 걱정 마십시오. 또 저도 항상 어머니 곁에 있을 터이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라고 말씀드렸다. 이에 어머니는 말할 힘이 없으신지,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평화로이 자기 삶을 ‘완성’했다. 어머니께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고향 산소 무덤가에 훌훌 뿌려다오.”라고 하셨고, 간암 판정 받고도, 또 떠나시기 직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딱 두 가지. 하나는 해마다 너희들 벌초하기 몸서리나는데 왜 매장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마도 어머니는 새처럼 훨훨 날아다니실 것이다. 심지어는 가족이나 자식들 자체가 어머니에겐 평생의 구속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종신형’의 삶. 그런 면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삶의 해방’임에 틀림없다.

나도 언젠가 내 삶을 ‘완성’할 때가 왔다고 느껴질 때, 자동차를 타고 빨리 달려가기보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편안하게 ‘배웅’받으며 천천히 걷다가 나비처럼 휙 날아가고 싶다. 그리고 가끔은 나비나 참새가 되어 돌아오련다. 생명 과정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아니 그 고난 속에서 더욱 빛을 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