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겨울추위를 앞두고 절식구들이 가장 힘을 쏟았던 일이 산에서 땔감을 마련하는 울력이었다. 힘쓸 수 있는 절 식구 전부가 가파른 산에 올라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굵은 나무들과 씨름하듯 끌고, 안고, 굴리고 해서 며칠 만에 톱질할 수 있는 곳까지 옮길 수 있었다. 언제 다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여럿이 모인 사람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산책 가는 길 오는 길에 습관처럼 만행당 처마에 그득 쌓아놓은 땔감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소박한 마애불(磨崖佛)을 대하듯 더없이 여유롭고 평온해진다. 어떤 겨울이 와도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배짱과 함께.          

울력은 청정한 승가(僧家)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500년 조선조의 갖은 박해 속에서도 불교의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고, 궁벽한 산속 사찰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울력에 기초한 자립적인 삶을 꾸려가려고 했던 승가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조석예불과 공양 그리고 대중울력에 빠지지 않고 잘 참여 하거라. 이 세가지는 수행자의 기본이다. 출가인(出家人)의 살림살이는 세가지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결정된다”
출가 수행자로서 입문하는 계(戒)를 받고 어른스님들을 한분 한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그 때 스님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시던 말씀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넘쳐나니 덩달아 절집도 함께 풍족해져서 갈수록 울력이 형식화되고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울력의 기본 정신인 부지런함과 검소함, 울력에 기초한 자립적 삶의 가풍(家風)은 점차 사라지고, 전적으로 시주(施主)의 은혜에 기생하면서 더 편리하고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는 세속적 욕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을 일부 승가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실려 있는 ‘나는 마음의 밭을 간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마치 출가 수행자는 육체노동과 분리된 정신노동만 한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분위기를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승가의 운영방식을 보면 소유하고 쌓아 모으기 위한 생산노동은 아니지만 자기 삶을 자립적으로 가꿔가야 한다는 정신은 곳곳에 깃들어 있고, 이런 전통이 이어져 나타난 것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이다.

승가를 치문(緇門)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출가해서 사미계를 받게 되면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교과서 이름이 ‘치문경훈’이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출가 수행자들의 옷이 먹물을 들인 옷(黑衣)이어서 ‘검은 옷을 입은 무리’라는 뜻으로 치문이라 불리었다. 중국에서는 불교 전파 이전부터 검은 옷은 근검(勤儉)과 노동(勞動)을 의미했다고 한다.
고인(古人)들이 검은 색으로 출가 수행자의 옷을 만들어 입은 뜻을 놓치지 않는 우리 승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