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인드라망 - 처음 시집온 며느리와 같은 마음으로
중묵스님 인드라망수련원(귀정사) 수련원장
깊진 않지만 제법 마을과 떨어진 山中 절에 살다보니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관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단순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욱’하는 진심(嗔心)에서 내 던진 말과 부질없는 행위로 인해서 소중하고 가까운 인연들과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게 한 일이 올 한해 유난히 많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순간들이 떠오르면 얼굴이 화끈 거린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다. 어떤 명분으로든 남을 비난하거나,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겠다. 한 순간 정신을 놓쳐 누구를 비난하거나, 좋다 나쁘다 분별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 또 조심 한다’라는 결의를 올해 초 새해 원력으로 세웠기에 더 한심하다. 중 나이가 먹어가면서 비판이나 지적에 대해 더욱 경직되게 반응하고, 내게 한정된 얕은 경험에 기반한 고집과 오기만 늘어만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아집(我執)과 성냄이 엷어지는 백련(白蓮)같은 수행자를 꿈꾸지만 아직은 요원한 것 같다.
승가(僧家)에서 수행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졌던 의식이 자자(自恣)이다. 3개월의 안거(安居)가 끝나는 전날 저녁 안거기간 함께 보낸 전 대중이 모여 율의 가르침을 지키고 그것을 깨뜨린 일이 없는가를 서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임이다.
“나는 자자(自恣)를 행하노니 나에 대해 무엇을 보고 무엇인가 듣고 또한 나에게 의심을 지니신 분이 있다면 대덕(大德)들이여, 나를 가엾게 여기셔서 가르쳐 주시오. 죄를 알면 그 허물을 제거하겠습니다.”
위 자자문을 토대로 부처님부터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안거기간 동안 자신이 미처 살피지 못한 허물을 가르쳐 주기를 대중들에게 청한다. 내 스스로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다른 수행자들에게 청한다 하여 자자(自恣)다. 수행자들이 더 진실하고 맑게 살기 위하여 작은 허물 하나라도 소홀히 방관하지 않고 정화하려는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불교 승가가 2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소중한 전통이 요즘에 와서는 점차 형식화되고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우리 승가의 현실이다. 허물을 지적받는 것을 탁마(琢磨)의 조언으로 섭수하기 보다는 자신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 또는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뻔히 보이는 동료의 허물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넘어가는 것이 요즘 자자의 모습이다. 내 스스로부터가 그렇다.
처음으로 자자에 참가했던 햇중 시절 아픈 기억이 있다. 자자에 대한 원칙에 충실하려고 수행자의 본분에 크게 어긋난 행동을 안거기간에 보인 한 선배스님의 허물을 가감 없이 지적하였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그 스님과의 관계가 서먹하고, 많이 어려웠다.
그런 경험 후 내 차례의 자자가 돌아오면 “안거 동안 제대로 살지 못하여 대중스님들을 불편하게 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참회합니다.”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반성과 참회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수행자로 올곧게 설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던 자자의식이 고역스러운 시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내 스스로의 허물과 일그러진 모습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거나 정확하게 보기 보다는 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는 습(習)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며느리가 시집을 온 그날 밤이나 그날 낮 동안에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남편과 심지어 하인이나 일꾼들에까지 아주 강한 양심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함께 살고 친숙한 덕분에 나중에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저리 가세요.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요?’라고 말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는 집을 나와 출가 한 바로 그날 밤이나 그날 낮 동안에는 비구들이나 비구니들이나 청신사들이나 청신녀들이나 승원에서 일을 돕는 사미들에게까지 강한 양심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나 함께 살고 친숙한 덕분에 나중에는 스승이나 은사에게까지 ‘저리 가세요.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요?’라고 말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처음 시집온 며느리와 같은 마음으로 머무를 것이다.’라고 이렇게 공부지어야 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지어야 한다.”
- 앙굿따라 니까야 중에서 -
늘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마음 다시 추슬러 올해 초 세웠던 원력을 더욱 깊이 새기고, 처음 시집온 며느리와 같은 마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이 해를 조심 또 조심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아직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닐 게다.
중묵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