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그물눈 사랑

지리산 화계사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걸망을 매고 화계사로 올라가던 스님 두 분을 차를 태워 드렸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깜짝 놀라기에 나도 자세히 살펴보니 몇 년 전 내가 하던 참선 모임에 나오던 사법고시생이다. 그토록 진지하더니 어느 날 홀연히 출가했다고 소식만 남긴 채 사라졌던 이다. 이렇게 우연히 또 만나다니……. 이제는 제법 스님 티가 몸에 밴, 나를 찾아 길을 떠난 이여.

나를 찾는 것은 철학의 주요 질문 중의 하나이며, 불교에서도 ‘이뭣꼬(是心麽)’라는 화두가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질문 자체는 매우 관념적이고 공허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건 주위와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나 자신만으로 스스로 의미를 지닐 수 없음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이 나일뿐,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와 같거나 나를 대신할 이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개체고유성을 지니고 있다고 인정한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만족시킬 보편적인 ‘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나를 찾아온 수많은 철학자의 시도는 여전히 무위에 그쳐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하고 쉬운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태어나 주위 대상을 인식하면서부터 비로소 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즉, 주위의 타자(환경)를 통해 나라는 자의식을 갖게 된다. 나는 너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너는 누구인가’와 직결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나는 너와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주위와 관계를 맺고, 맺어가며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며 맺는 너와의 관계, 우리는 이것을 삶이라 부른다. 삶이라는 것은 내가 맺어가는 너/주위와의 관계 외에 다름 아니다. 결국, 나는 나의 삶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내가 내 주위와 맺는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나의 삶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이다. 나는 나의 삶을 통해서 나로 존재하며 그것이 나의 현존(現存)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이라는 말은 결국,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이며, 나의 삶이란 내가 맺는 내 주위와의 관계이기에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변과의 관계성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삶이 나요, 이 세상과의 열린 관계가 나라는 존재의 근거가 된다. 이렇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너라고 하는 타자(여기서 너라는 타자는 환경으로도 볼 수 있기에 생태문제의 중요성이기도 하다)이며, 거꾸로 너라는 타자도 나로 말미암아 존재할 수 있기에 이러한 관계성을 안다면 나와 네가 서로 구별되거나 서로 달리 볼 수 없다. 결국 자타불이, 이것이 진정한 나이다. 그렇기에 누가 나는 누구인가 묻는다면, ‘나의 삶이 나요,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은 내 삶 속의 당신’이라고 답할 것이고, 이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불교 가르침이나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근거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모두 연결되어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인드라망이라는 그물망(network)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삶 자체가 인연의 그물망이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그물망 구조에서 흔히 생각하듯 우리 각자는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그물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공간인 그물눈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물의 선이 아니라 공간을 보라. 나의 그물눈의 크기가 변하면 내 주변 그물눈의 크기도 변하고, 거꾸로 내 옆의 그물눈의 크기가 변하면 내 그물눈의 크기도 함께 변한다. 나는 주위에 의해 이루어지고 또한 함께 가는 것이다. 즉, 그물코가 아닌 그물눈으로 인드라망을 표현할 때 모든 존재가 지닌 주위와의 연기적 관계성과 더불어 도반, 더 나아가 내 이웃의 중요성도 잘 나타난다.

이렇게 이웃과 함께 같이 변하지 못하는 그물코라는 고정점이 아니라 그 크기가 얼마든지 변하는 그물눈이라는 유연한 공간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삶이 지닌 그물눈의 크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물눈의 크기에 따라서 전 우주를 담을 수 있기도 하고 또 어떤 크기는 제 몸 하나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을 지닌다. 따라서 그물눈의 공간이 고정되어 닫혀 있어 머무르고 있는지, 열려 있어 그 무엇도 다 담을 수 있는 유연한 크기인지 항상 깨어 살펴야 한다.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자신이 열려있는 그물눈이며, 그 크기가 전 우주를 담을 수 있음을 안다면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서로의 일정이 있던 우리는 또 인연되면 만나자는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서 기약 없이 헤어졌지만, 그날은 우주를 담을 수 있는 나를 찾아 길 떠난 도반에게, 그리고 우연으로 나타나는 중중무진 인연의 모습에 새삼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일상의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우희종(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