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럴 나이나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작년부터 제자나 아는 사람의 주례 부탁을 과감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주례사는 다소 엉뚱하다. 이유인즉슨, 신랑 신부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서로에 대한 희생을 강조하는 모범적인 내용이 아니라 대뜸 각자 이기적으로 살라고 주문하는 불량스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의 요지는 대강 이렇다.

 

“(중략) 오늘과 같은 생애 최고의 날에는 신랑, 신부 할 것 없이 누구나 상대방을 위해 한 평생 동안 기꺼이 희생하고, 참고 배려하면서 살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서로 ‘내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흔히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운운하지만, 사실은 다른 하찮은 존재들과 별반 다름없이 자기의 생존 본능에 충실한, 사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의 소유자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 이른바 고부간의 갈등도 의외로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우리들은 날이 갈수록 바로 내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고려해 주어야 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삶의 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감히 말씀드리건대, 신랑 신부는 먼저 각자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 이기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나의 행복은 남편 또는 아내의 행복을 마치 나 자신의 것처럼 여길 때 비로소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 도달하게 됩니다. (중략)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와 같은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했던 일이 나중에는 결국 상대방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중략)”

 

이것은 불교윤리의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현대인들의 사고방식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 번 비틀어(?) 적용해 본 것이다. 단단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시도한 주례사가 뜻밖에도 큰 박수를 받았다. 왜일까? 그것은 탐, 진, 치 세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중생들인 우리 모두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교는 정말 위대한 큰 이야기 모음집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 닿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대상으로도 끊임없이 새롭게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허남결
동국대학교 윤리문화학과 교수.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