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존중과 생명 집착

-소신 공양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상(相)

불교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나 이웃종교인 중에서는 생명존중과 비폭력의 종교라는 불교의 일반적 인식으로부터 최근 있었던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하여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뉜다. 우선 자살이라는 형태에 매우 불편해하거나, 아니면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며 분신을 통해 목숨을 던지는 운동권 열사와 다를 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불교계에서 법화경에 언급된 소신공양임을 강조하는 것에 대하여 종교적 신성화를 통해 스님의 죽음을 도구화하는 것이라는 지적마저 한다.

표면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자살이고, 또 유언 내용도 사회정의와 이타적 내용으로 일반적인 운동권 열사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사회정의를 위한 마지막 저항의 수단으로 분신자살을 택한 것은 우리 근대사나 운동사에서 결코 드물지 않다. 사회 불의에 대한 이들의 분노와 항거 정신은 그 자체로 참으로 소중하고 가슴에 와 닿는 바가 많고, 그 점에서 소신공양이라는 종교적 자살과 차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살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 간단히 보아도 개인의 좌절과 절망에 의한 자살, 남은 삶의 무의미를 바라보며 생의 주인으로서 담담하게 선택하는 나이든 철학자의 자살, 사회정의를 위한 열사들의 자살, 소신공양과 같은 종교적 자살 등 그 범위는 매우 넓다.

우선 불교에서의 생명존중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죽음은 회피해야 될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이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이나 이웃종교인들의 생명존중이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생사일여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에서는 생과 사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것으로 보며, 더 나아가 그 어떤 관념에도 머무르거나 매달리지 않도록 가르친다.

각종 건강보조제와 무리한 연명치료 심지어 다른 동물의 장기까지 이용해서 죽음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생명존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오래 살기 위해 생명에 집착하는 것과 불가의 진정한 생명존중은 다르다. 불가의 생명존중은 단순한 죽음의 회피가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연기 실상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죽을 운명의 물고기를 살게끔 놓아주는 방생법회 정신의 밑바탕이 무엇인지 살펴야 하는 것과 같다.
한편,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열사들의 분신과 다른 것은 유언 내용과 분신 형태에서 나타난다. 그 내용에 있어서 사회문제만이 아니라 뭇 중생의 생명을 언급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유언의 마무리가‘최선을 다하라’는 상대방에 대한 타이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사들의 울분에 찬 항거는 사회 불의에 대한 분노이며 대립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꾸짖음이다. 그러나 스님은 꾸짖음만이 아니라 무지한 상대방에 대한 타이름이 있다. 타이름이란 이미 상대방을 포용하고 너와 나의 상생의 모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 정의를 말하면서 조용한 분신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은 과거, 현재, 미래심불가득이라는 금강경의 가르침과‘초발심시변정각’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불가의 깊은 뜻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사회적 취지의 소신공양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조용한 소신공양은 불가 수행자로서 불교의 깊은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형태가 된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떠나 관념화되어 우리를 억누르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나 종교가 삶에 바탕을 두어 너와 나의 삶을 충만하고 바람직하게 한다면 피해야 할 필요가 없다. 불교계의 소신공양에 대한 입장을 종교적 신성화라면서 비난하는 이들은 스스로 그러한 관념적 종교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예수님도 피할 수 있었던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했다. 스스로 선택한 많은 종교적 순교 역시 일종의 자살행위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스님의 소신공양은 고정관념에 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해 준 셈이다. 불행히도 불교계에서는 불교 안의 주장만이 있을 뿐 사회 일반인들의 시각에 대해서 정리된 입장 표명을 못하고 있으니 불자로써 아쉬움이 남는다. 생과 사를 한편의 구름이 피었다가 지는 것으로 보는 불교에서는 생에 집착하지도, 죽음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오직 중생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이 있을 뿐이다.

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