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는 어느새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자맥질을 즐기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니 꽥! 꽥! 트럼펫 소리로 다급한 경계 음을 울린다. 새들이 일제히 물방울을 차며 날아올라 건너편 산그늘 아래로 날아간다. 언제 보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비상(飛翔)이다. 가슴이 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줄었다. 겨우 이 삼백 마리나 될까? 삼 사 년 전부터 철새들의 숫자가 줄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가히 충격적인 수치다. 작년에는 그래도 천여마리는 족히 넘었었다.

 

6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눈발 휘날리는 이 호숫가를 걷던 때의 그 경이로움이 생각난다. 호수 위를 까맣게 뒤덮다시피 한 수 천 마리의 겨울철새들, 청둥오리와 기러기 떼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물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부산하게 떠드는 모습이 꼭 초등학교 운동장에 무리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처럼 활기차고 신비로웠다.
서울 시청에서부터 꼭 65km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생태계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있어 너구리 고라니 족제비 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고 예쁜 길고양이 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었다. 꿩을 비롯해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적막하리만큼 소음(騷音)이 없어서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기에 더없이 좋았다. 더구나 우리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호수가 거실에서 강줄기처럼 고즈넉이 내려다보이니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하겠다.

 

오랜 도시생활을 툭툭 털고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 나는 날마다 새롭게 맞닥뜨리는 생생한 자연의 표정에 취해서 많은 시간을 들길과 산길 그리고 이곳 호숫가에서 보내곤 했다. 철따라 곳곳에 무리지어 피는 붉은 클로버, 꼬리조팝, 꿀풀, 물봉선, 차조기, 들국화 등 친숙한 들꽃들의 어여쁜 자태와 찔레꽃, 아카시아꽃, 칡꽃과 노란 감국(甘菊) 향기가 주는 맑은 기쁨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꽃마다 윙윙대는 벌들과 각종 나비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분방하게 숲속을 나는 새들의 지저귐,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 방패모양의 노린재, 창문 유리창에 납작하게 붙어있는 손톱만한 작은 청개구리, 군무(群舞)를 즐기는 고추잠자리 떼, 구불구불 물결치듯 도망치는 뱀, 모두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마을길이나 호숫가 숲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나서 내 옆을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동작은 얼마나 날렵하고 경쾌한지 감탄이 절로 일었다. 때론 저만큼 거리를 두고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를 쫒아 장난치듯 달려가기도 한다. 이들을 보면서 고양이가 참으로 아름답고 우아한,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선조들이 고양이와 청둥오리를 그처럼 즐겨 그림의 소재로 삼은 까닭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이 주는 기쁨과 경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3년 전의 이른 봄이었다. 호숫가 도로 옆에서 검은 고양이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로드 킬(road kill)이었다. 마을과 호수 사이에는 자동차도로가 있어 그 길을 건너 호숫가로 갈 때마다 길고양이 들이 염려스러웠는데 그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한적하던 마을 앞길에 차량통행이 많아진 때문인지 그 여름에서 가을을 지나면서 누렁이도 얼룩배기도 호랑무늬도 차례로 로드 킬로 사라져 갔다. 더 이상 수줍은 듯 거리를 두고 나를 응시하던 예쁜 길고양이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호수 옆의 넓은 아름드리 잡목 숲이 무참히 잘려 나가고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의 왼쪽 숲도 휑하니 뻘겋게 파헤쳐졌다. 주택단지로 개발된다고 했다. 호숫가 숲 속에 모여 살던 꼬리 긴 청회색 새들은 보금자리를 잃었고 진분홍 예쁜 꽃을 피우는 꿀풀의 군락지도 흙더미 속에 묻혀 버렸다.

 

지상 위의 모든 존재는 항상(恒常)하는 것이 아니라고, 무상(無常)하여 변하는 것이라고, 길고양이의 매혹적인 자태나 나무숲, 들꽃과 새들 모두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자연의 법칙이 그런 거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려 애썼다. 그럴수록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게 눈물처럼 애성이 남을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곁에서 연약하고 소중한 생명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것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간섭 때문이라는 자각이 아프기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대강(四大江) 줄기를 마구 파헤치는 무자비한 만행(蠻行)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이곳 호수에 겨울 철새들이 마음 놓고 찾아올 수 있으랴.

 

이제 곧 겨울이 되고 제야의 종이 울릴 것이다. 우리 사회가  따뜻한 가슴을 열어 가녀린 생명들을 보듬으며 조금 불편한 채로 자연을 그냥 그 자리에 놓아두면 안 되는 것일까? 꽥! 꽥! 경쾌한 트럼펫 소리를 내면서 물방울 튀기는 새들의 비상이 애잔하다. 

 

 

글_임완숙
시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