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먹고 살지는 말자

                                                  김은진/유전자조작식품반대 생명운동연대 사무국장


“대충 먹자.” 끼니때가 되면 우리는 이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냉장고에 있는 것만 가지고 적당히 먹자’라든가, ‘가리지 말고 먹자’라든가, ‘간단히 먹자’라든가 등등. 하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해석은 바로 ‘주는 대로 먹자’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머니가 편식하는 어린 아이에게 하는 말이라면 나름 좋은 뜻도 되겠지만,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자주성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말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작년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유전자조작 콩을 수입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소비자단체의 요구에 “콩 자급률이 3%밖에 안 되는 형편에, 유전자조작 콩은 안 된다고 가려서 수입할 형편이 못된다”고 답변을 했다. 이걸 좀 과격하게(?) 해석하자면 ‘콩도 자급 못하는 주제에 수출하는 나라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나라의 식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기관에서 할 말은 아니지 싶은 것은 바로 이런 말의 미묘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나라를 들썩이며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한미FTA’다. 국가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농업이나 공업이나, 서비스업 모두가 같은 산업, 즉 돈 벌어들이는 생산 활동쯤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돈 벌어들일 수 있는 산업 중심으로 고민하고, 돈을 벌어들이지 못할 것 같은 산업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나 산업이란 것이 다 똑같은 산업일 수는 없다. 그 중 어떤 것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또 어떤 것은 없으면 못사는-단지 경제적으로 못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 불가능한-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이 생존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농업으로 생산되는 먹을거리이다.

미국이나 유럽, 가까이 일본이 1980년대 ‘WTO’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즈음하여 다들 자국 농업을 살리기 위한 대안 마련에 들어간 것은, 바로 이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다. 세계농업기구(FAO)도 그 즈음, 미래사회는 식량이 최대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그때 우리나라가 농업수출국을 꿈꾸며 마련한 대안 중 하나는 좀 엉뚱하게도 대규모 꽃농업이었다. 한동안 꽃농업이 발달한 유럽에서 유리온실까지 수입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경제를 도맡은 사람들은 여전히 농업도 돈 버는 산업으로 만드는 방법에만 골몰했고, 그래서 쉽게 국가경쟁력을 말하곤 한다.

그러니 국가경쟁력을 가지고 한번 따져보기로 하자. 국가경쟁력이란 그야말로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 힘의 원천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게 사람의 머리이건 손이건 발이건 간에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 국가경쟁력이란 없다. 결국 국가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사람을 키우는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육’이라는 단어에 들어간 뜻이 오로지 머리를 좋게 하거나 손기술을 뛰어나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공부만 잘하면’에서 ‘뭐든지 한 가지만 잘하면’으로 교육 목표를 바꾸고자 한 장관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식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교육만을 강조해 왔다. 물론 이런 지식이나 기술이 국가경쟁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지식이나 기술의 주체인 사람도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밥힘’이란 말은 그래서 나오는 말이다. 단순히 밥을 먹어야 하고 빵은 먹으면 안 된다거나, 밥만 있으면 반찬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 ‘밥힘’이란 것이다. 처음 잉여농산물 처리를 위해 학교급식을 시작했던 미국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학교급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최우선으로 양질의 것을 공급하도록 한 것도 바로 이런 밥힘을 알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에 관한 모든 것들은 그것이 한미FTA의 농업협상이건, 환경농업의 활성화건, 학교급식운동이건 간에 그 모든 것이 다 한 가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밥힘’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그러니 잘 먹어야 잘 살 수 있다. 대충 주는 대로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