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붓다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극한의 고행을 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말 그대로 피골의 상접함이었다. 앙상한 얼굴은 영락없이 허허벌판에 버려진 해골 모습이고, 움푹 들어간 눈동자는 물이 고갈되어 버린 천 년 묵은 우물 속 같았다. 가죽이 말라붙은 갈비뼈는 폐허의 서까래처럼 드러나고, 쭈글쭈글한 뱃가죽은 말라 비틀어진 조롱박과 다름이 없었다."
불상이 다양하고 무수히 많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불상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고행상이 아닐까 싶다. 비록 사진이긴 하지만 가끔씩 고행상을 바라본다. 섬뜩할 만큼 뼈에 가죽만 남은 고행상을 대할 때마다 말할 수 없이 착잡해진다.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가슴 저림이 있다.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허허로운 슬픔이 물결친다.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절절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진정 무엇이 이 친구로 하여금 저토록 자신의 목숨을 걸게 한 것일까? 도대체 이 친구로 하여금 자신의 목숨을 걸게 한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홀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분노에 찬 물음을 하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깊은 곳에서부터 더없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싯다르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 그 누가 싯다르타보다 더 행복할까 싶다. 한 인간에게 일생 동안 목숨 바쳐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일생 일대에 목숨을 걸어야 할, 뜻 있는 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자신이 뜻한 일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온 존재를 바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말고 더 좋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고행상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고행상을 떠올리고 있다. 이 친구가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일까? 이 친구가 실현하고자 하는 바람은 어떤 것일까?
싯다르타의 꿈과 우리의 꿈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이천육백여년 전 싯다르타의 바람과 오늘 우리의 바람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싯다르타 그 친구도 사람이었고 우리도 사람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천육백 년 전의 싯다르타 그 친구도 잠자고 밥 먹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듯이 마찬가지로 그 친구의 인생 고민과 우리의 인생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어도 좋을 듯하다. 싯다르타가 갈망하던 꿈과 우리가 갈망하는 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터이다. 그 고민과 꿈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간추려서 꼽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생의 존재 이유를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시도 때도 없이 삶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는 것이 옹색하고 치사하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고민거리는 거의 비슷비슷할 터이다. "존재의 이유를 알고 시원하게 살고 싶다. 자유로움과 평화로운 삶이 그립다. 아름다움과 기쁨 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 싯다르타나 우리나 원초적인 바람은 조금도 다름이 없을 터이다.
다만 한 가지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그 친구는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했고, 우리는 거머쥠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울타리를 쌓아 올림으로써 바라는 바를 실현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울타리를 철저하게 해체시킴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실상을 알고 실상의 질서에 따르는 것만이 참된 길이라고 믿었고, 우리는 자신 밖의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데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 똑같이 밥 먹고 잠자는 만큼 똑같은 꿈을 꾸어 왔으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장담하며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왔다.
지나온 세월과 이루어진 오늘의 결과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이다.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 볼 때가 된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앓아 온 인생의 고민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모두 함께 꾸던 인생의 아름다운 꿈은 어디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대답은 무척 단순하고 명확하다. 우리의 꿈은 잡히지 않는 꿈일 뿐 역사가 되지 못했다. 우리의 바람은 공허한 바람일 뿐 삶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거머쥐는 길에선 갈등과 대립의 역사만 물결쳤다. 쌓아 올리는 길에선 불안과 초조함의 삶만 도도하게 흘렀다. 자신 밖으로 찾아 나선 길에선 무지와 집착의 어두움만 깊어 갔다.
반면에 내려놓는 길에선 공존과 평화의 인생이 꽃피었다. 해체의 길에선 기쁨과 자유의 삶이 가꾸어졌다. 자신을 알고 가꾸는 길에선 싯다르타 그 친구가 완성자인 붓다로 태어나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섰다. 결론은 간단 명료하다.
우리의 꿈인 평화로운 사람, 그는 붓다이다.
자유로운 사람, 그는 붓다이다.
우리의 바람인 아름다운 사람, 그는 붓다이다.
매력적인 사람, 그는 붓다이다.
우리의 희망인 인간적인 사람, 그는 붓다이다.
행복한 사람, 그는 붓다이다.
천 년 전의 꿈이 바로 오늘의 꿈이다.
싯다르타의 바람이 그대로 우리의 바람이다.
싯다르타가 걸어간 길이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싯다르타가 부처 된 길이 오늘 우리가 부처 되는 길이다.
붓다,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붓다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반드시 간직해야 할 역사의 꿈이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바람이다. 영원히 살아 있어야 할 인생의 희망이다.
그 동안 몇 차례 멀고 먼 구도의 길을 나서는 행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생애에 대하여 공부했다. 인생의 희망을 걸고 찾아온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길은 내 양심으로 겸허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진정 부끄럽고 가슴 아팠다. 참으로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랬으나 부끄러운 구석, 아픈 구석을 숨기지 않고 들추어내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서툴고 거친 표현, 적절하지 않은 예들까지도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싹 틔우는 밑거름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많은 질책을 바란다. 횡설수설 중언부언한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어 내느라 수고하신 호미 식구들께 감사드린다.
이천일년 십일월
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