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지혜와 자비일까요? 모든 존재가, 모든 현상과 결과가 서로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 연기법의 진리에 따라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비라고 하면 이를테면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것쯤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자비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것이 깨달음을 실천하는 자비행이라면 사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비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더라도, 그것이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에 맞게 행해질 때에 비로소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일반에서 이야기하는 선행일 따름이지, 깨달음의 실천인 보살행으로서의 자비행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선행은 좋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존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수행의 의미로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진실한 자비행은 중생의 고통과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수행으로 승화되어 나타납니다. 모순과 고통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수행으로 승화되어 나타나려면,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에 맞게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여야만 합니다. 이 소식을 금강경에서는 어떠한 상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주상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기법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입니다. 연기법의 정신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비라고 합니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를 바로 알고 올바로 실천하려면 반드시 연기법에 입각한 자기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에 입각한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통해서만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인 깨달음이 가능함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도법스님 / 내가 본 부처